유럽의회가 최근 빅테크 기업의 망 사용료 부담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국내에서도 망 사용료 입법화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이 가운데 20일 한국을 방문한 테드 사란도스 넷플릭스 공동 CEO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지난 13일(현지시간) 유럽의회는 '대규모 트래픽 발생기업'의 공정기여를 위한 정책안 마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표결에서는 전체 630표 중 찬성 428표, 반대 147표, 기권 55표로 찬성의 비중이 63%에 이르렀다.
결의안은 '2022 경쟁 정책 연례 보고서'에 담긴 내용으로 해당 보고서에는 EU가 현재 추진 중인 '2030 디지털 컴패스(디지털 전환을 위한 로드맵)'를 달성하고 고품질 연결성을 확보하기 위해 통신망의 경제적 지속 가능성이 필수적이라고 언급돼있다.
이어 이를 위해 대규모 트래픽 발생기업과 통신사업자 간 협상력 비대칭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U의 통신망 구축 및 지속 투자를 위해 빅테크 기업들이 함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EU가 이 같은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유럽의 망 사용료 법제화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미 EU집행위원회(EC)는 지난달 19일 '기가비트 인프라법' 제정을 위한 의견수렴을 마치고 본격적인 입법 절차에 착수했다.
'기가비트 인프라법'은 유럽 전역에 5G 통신과 10기가 인터넷 등 유무선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공정성을 기반으로 둔 새로운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다. 업계에서는 EU가 올 하반기 중 '기가비트 인프라법'을 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유럽 내에서도 일부 국가의 반발이 있는 만큼 더 많은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픈넷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는 "유럽 대형 통신사들이 인터넷에 요금을 부과하려는 계획에 우려를 표한다"며 "인터넷 사용료를 부과하는 것은 인터넷 생태계를 큰 위험에 빠뜨리고 유럽 소비자와 기업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 외에 미국과 브라질, 베트남 등에서도 망 사용료 법제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소송전을 포함해 정치권과 관련 업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면서 법제화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발의된 망 사용료 관련 법안도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망 사용료 입법화에 있어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소송전이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2019년부터 시작된 양측의 갈등은 최근까지 망 사용료 감정방식에 대해서도 이견차이를 보이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2심에서 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대법원까지 갈 사안이라며 결론이 나는 데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가운데 20일부터 한국을 방문하는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CEO가 망 사용료와 관련해 어떤 입장을 낼지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테드 CEO는 21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면담을 갖고 22일 콘텐츠 투자 전략에 대해 국내 언론에 소개하는 간담회를 진행한다.
앞서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 시장 활성화를 위해 4년간 3조2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당시 대통령실도 나서서 정부의 투자 성과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테드 서랜도스 CEO가 한덕수 총리와 면담에서 망 사용료에 대해 언급할 경우 정부가 우호적으로 반응을 가능성도 있다. 국무총리실은 양측이 콘텐츠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은 "넷플릭스는 세계 어디에서도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며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플러스가 CDN을 통해 망 사용료를 내는 건 기업에 따라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한국의 입법 과정을 존중한다"며 "법에 따라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정부는 망 사용료 법제화와 관련해 국제 동향을 살피겠다는 입장이다. 김준모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국회에 발의된) 7개 법안과 국제 동향 등을 고려해 정책적 입장을 정해서 국회 논의와 발맞춰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테드 서랜도스 CEO 방한과 별개로 29일에는 티에리 브롱당 EC 집행위원이 한국을 찾는다. 브롱당 위원은 차기 EC 집행위원장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브롱당 위원은 산업통상자원부, 과기정통부 장·차관급 인사와 면담을 진행한다. 이 자리에서 망 사용료 법제화 공조가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여용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d093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