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지수펀드(ETF)의 해외 주식 투자 순자산이 올해 들어서만 22조원 이상 급증하면서 국내 주식 순자산을 크게 뛰어넘었다.
국내 증시가 반등 기미를 찾지 못하는 사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 확정으로 미국 주식시장에 대한 선호도만 빠르게 올라가면서 ETF가 해외 간접투자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글로벌이코노믹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국내 ETF 중 해외 주식에 투자한 ETF의 순자산 규모는 지난 19일 기준 44조7241억원을 기록해 한국 주식 ETF 순자산(36조1373억원)을 압도적으로 넘어섰다.
해당 분석에서 레버리지 상품은 비교 대상에서 제외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올 들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점에 ETF 시장의 해외·국내 주식 순자산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국내 ETF의 해외 주식 순자산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22조6853억원에 불과해 38조4250억원에 달했던 국내 주식보다 15조7397억원이나 적었다.
이후 올 들어서는 매달 증가 곡선을 그리면서 현재는 해외 주식 순자산이 국내 주식 순자산을 뛰어넘었다. 해외 주식과 국내 주식의 순자산 격차는 19일 기준 8조5868억원이다.
특히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이 확정된 이달 6일부터는 이 추세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국내 주식 순자산을 단숨에 따라잡았다.
또한 올 들어 19일까지 해외 주식 순자산 규모는 22조387억원 불어났다.
이와 반대로 국내 주식 순자산 규모는 같은 기간 동안 2조2887억원이 감소했다.
권병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달 8~14일 일주일 동안 미국의 주식형 ETF에만 430억 달러(약 60조원)가 유입될 정도로 글로벌 자금이 쏠리고 있다"며 "반면 국내 ETF 시장에서는 은행·조선주를 중심으로 차익 실현 자금이 빠지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ETF 시장에서 해외와 국내 주식 선호도가 크게 엇갈리는 것은 최근 글로벌 증시 자금 대부분이 인공지능(AI), 전기차 등 최첨단 사업을 이끄는 미국 거대 기술기업(빅테크)에만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외국인 투자가들이 하반기 들어 수출 의존도와 미국 행정부 정책 민감도가 높은 한국 시장을 철저히 외면하는 현상도 ETF 지형을 뒤흔드는 주요인이 됐다.
증시 전문가들은 사실상 국내 ETF의 최대 기초자산인 삼성전자가 최근 한때 '5만전자'가 무너질 정도로 경쟁력을 잃은 점도 국내 주식 투자 심리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또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하반기 내내 한국거래소의 코리아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지수를 추종하는 ETF 준비에만 매진하느라 국내 주식 관련 히트 상품을 전혀 선보이지 않은 점도 투자자들이 해외에만 관심을 두도록 부추겼다고 봤다.
한편, 올 들어 이달 19일까지 ETF 순자산 1조원 이상 해외 주식형 순위를 보면 10개 종목 중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ETF가 6개 자리를 차지했다. 사실상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했다.
1위부터 TIGER 미국S&P500, TIGER 미국나스닥100, TIGER 미국테크TOP10 INDXX, TIGER 미국필라델피아반도체나스닥 등 4위까지 모두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차지했다.
그 외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미국S&P500TR, KODEX 미국나스닥100TR이 각각 5위와 9위 자리를 차지했고,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미국S&P500TR, ACE 미국나스닥100이 각각 8위와 10위 자리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은 국내 증시가 탈출구를 찾지 못하면서 ETF 시장이 해외 주식 투자 수단의 성격을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명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올해 선진국 증시는 19%, 신흥국은 10% 정도 올랐고 중국·일본·대만·인도 모두 성과가 좋았는데 한국 시장만 유독 크게 부진했다"며 "수출 증가율이 둔화하면서 코스피의 주당순이익(EPS)이 내년에도 하반기부터 조정을 받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김성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0328syu@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