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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와 협상하고 타협하는 훈련이 절대 필요한 사회"

[힐링마음산책(297)] 정치 실종과 결정 장애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 2024-11-05 15:09

연극 '햄릿'.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연극 '햄릿'. 사진=연합뉴스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지난 18일 개막해 다음 달 17일까지 공연하는 '햄릿'은 이미 모든 회차 매진됐다. 이미 인기 정상에 있는 배우 겸 뮤지컬 스타인 조승우가 데뷔 24년 만에 선택한 연극이기도 하지만 원작인 '햄릿(Hamlet)' 자체가 워낙 유명하다. 1601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한,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희곡이다. 지금도 매일 밤 800여 개 도시에서 '햄릿'이 공연 중이라는 통계도 있다니 그 유명도를 알 수 있다.

예술작품이 수 세기에 걸쳐 계속 공연된다는 것은 그만큼 큰 감동을 준다는 의미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가장 심층적인 심리를 건드려 준다는 의미다. 연극 '햄릿'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햄릿' 중에 가장 유명한 대사는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이다. 햄릿은 죽은 아버지 유령에게 숙부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이렇게 되뇌면서 많은 갈등을 하게 된다. 최근 사람들도 햄릿의 그림자 안에 있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사소한 일에도 많은 갈등을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 증상들을 햄릿의 이름을 따서 ‘햄릿증후군’이라고 부르며 현대인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주요 키워드가 되고 있다. 햄릿의 비극의 원인은 사는지 죽는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고뇌하는 ‘우유부단(優柔不斷)’함이다.

‘우유부단’은 결단을 단번에 내려야 할 때 갈팡질팡하며 고민만 하고 스스로 주관적인 결단을 하지 못해 결단을 상습적으로 유보하거나 끝내는 다른 이의 선택이나 명령에만 따르게 되는 수동적인 태도를 일컫는 용어다. 혹은 어떤 특정 결단을 내려놓고 그렇게 하려던 도중 다른 사람이 돌연 말을 바꿔버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일 때 ‘결정 장애’ 혹은 ‘선택 장애’라고 부른다. ‘결정 장애’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것을 표현하는 용어다. 예를 들면, 선택지가 많은 중국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고를 경우 대부분의 사람도 처음에는 망설여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모든 결정 앞에서 망설이고 다른 사람에게 미루거나 따르게 되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한 번은 대학생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하는지 ‘인생 계획’을 짜보도록 했다. 대부분 학생들이 나름대로 성실하게 자신의 앞날에 대해 고민하고 계획을 짰다. 하지만 몇몇 학생의 대답에 필자는 깜짝 놀랐다. 이들의 대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금까지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도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면 성공하겠지요”였다. 이 대답을 듣고 너무나 놀랍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다. 명색이 대학생인데 앞으로도 엄마가 하라는 대로 살겠다니! 대표적인 선택 장애 증상이다.

또 한 번은 한국 문화의 핵심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조금 오래됐지만 마이클 베이 감독이 1998년에 연출한 미국 영화 '아마겟돈'에서 지구를 향해 돌진해오는 소행성과 충돌하면 지구가 멸망할 위기 앞에서 결국 소행성에 우주선을 보내 그것을 파괴하기로 결정했다. 파괴 전문가들이 두 우주선을 타고 소행성으로 향하는데, 그 이름이 하나는 ‘독립(Independence)’이고, 또 하나는 ‘자유(Freedom)’였다. 즉 미국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려고 하는 소중한 가치는 독립과 자유라는 것이었다. 대학생들에게 만약 우리가 지구를 지키기 위해 2대의 우주선을 보낸다면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고 싶은지 알아보도록 했다. 그리고 제일 많은 학생들의 호응을 얻은 이름을 찾아낸 학생에게는 소정의 시상(施賞)을 하기로 했다. 일주일 후 제일 호응을 많이 받은 이름을 보고 필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이름은 ‘엄마가 보고 있다’와 ‘아빠가 보고 있다’였다. 물론 시상이고 뭐고 없었고 야단을 치고 끝냈지만 오랫동안 뒤끝이 개운하지 않았다. 이것이 한국을 지고 나갈 미래 주인공들의 의식 수준이라니!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지도층 인사들의 행태를 보면 젊은이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된다. 특히 정치인들의 결정 장애도 젊은이들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하나도 덜하지 않은 상황들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2년의 임기를 마무리하고 지난 9월 13일 퇴임했다. 이 총장은 이날 대검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지금은 사회 여러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검찰과 사법에 몰아넣는 가히 ‘소용돌이의 사법’ 시대”라며 “유리하면 환호하고 불리하면 침 뱉어 검찰을 악마화하는 현상이 심화됐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검찰이 세상사 모든 일을 해결해줄 ‘만능키’라고 여기는 사람들과 검찰을 ‘악마화’하는 사람들, 양측으로부터 받는 비난과 저주를 묵묵히 견디고 소명 의식과 책임감으로 버텨온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 총장은 “한쪽에서는 검찰 독재라 저주하고 한쪽에서는 아무 일도 해낸 것이 없다고 비난한다. 한쪽에서는 과잉 수사라 욕을 퍼붓고, 한쪽에서는 부실 수사라 손가락질한다”며 “소용돌이의 사법 시대”라고 했다. 또 “만약 그 일이 상대 진영에서 일어났다면 서로 정반대로 손가락질하며 평가했을 일을 오로지 유불리에 따라 험한 말들을 쏟아내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라고도 했다. 또한 그는 “극단적 양극화에 빠진 우리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면 고함과 비난, 조롱과 저주, 혐오와 멸시가 판을 친다”며 “이해관계에 유리하면 환호해 갈채를 보내고, 불리하면 비난하고 침을 뱉어 검찰을 악마화하는 현상이 심화됐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안타깝고 책임을 통감한다”며 이임사를 마쳤다. 검찰총장을 마치는 소회가 오죽 착잡했으면 관용차를 이용하지 않고 부인이 운전하는 자가용을 타고 퇴장했을까?

그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떠나 안타깝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자책했지만, 이 현상이 어디 검찰총장 한 사람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현상이겠는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의대 준비반' 과외를 시작하는 어린이들이 후에 성장해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현재 우리나라 정치계는 바야흐로 법조인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마디로 ‘법조인 전성시대’다. 대통령부터 시작해 여당 대표도 법조인, 야당 대표도 법조인, 직전 대통령도 법조인이다. 국회의원과 장차관 중 법조인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제22대 국회의원 중 총 61명(지역구 55명, 비례대표 6명)이 법조인이다. 지난 20년간 치러진 6번의 총선 가운데 이번 선거에서 가장 많은 법조인 출신 당선자가 배출됐다. 법조인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똑똑하고 제일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수재들이다. 그리고 이런 수재들이 정치권에 유입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반길 일이다. 이들이 정의 편에 서서 자신이 몸담고 살아온 법의 정신으로 국정을 이끌어 나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이들이 청소년들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선택 장애를 보인다면 이것은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크게 근심할 일이다. 정치권에서 보이는 선택 장애 증상의 첫 번째는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툭하면 검찰과 사법부로 달려가 시시비비를 가려 달라고 떼를 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는 형제들이 다투면서 자기들끼리 해결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달려가 고자질하는 모습과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정치는 상대가 있다. 그리고 이 상대는 대개의 경우 자신과 의견을 달리한다. 의견을 달리하는 상대와 만나 대화하고 타협하고 서로 인정하는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정치 행위의 핵심이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결정을 내릴 능력이 없는 사람이 의견이 다른 사람과 타협하고 조율하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비난을 쏟아부으면서도 또 검찰로 달려간다. 그리고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또 비난한다. 이런 문제로 오죽 시달렸으면 검찰총장이 이 사실을 폭로하면서 회한에 찬 이임사를 하겠는가?

정치인들이 선택 장애 행동을 보이는 또 하나는 국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의 제정에 있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리더 즉 대장만을 해바라기처럼 쳐다보는 것이다. 리더의 의견이 마치 자신의 의견인 것처럼 찬성 일변도의 행태를 보이는 것도 전형적인 선택 장애 증상이다. 지역구 주민들의 삶을 제일 먼저 챙기겠다고 선거 때는 철석같이 약속하지만 일단 당선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장에게 달려가 찰싹 달라붙는다. “민주 제단에 한 몸 바치겠다”는 거창한 각오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최소한 결정 장애 증상만은 보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말도 있듯이 매일 언론에 보도되는 유명 정치인들의 행태는 바로 청소년들이 보고 배우는 교과서가 된다.

정치인만 결정 장애를 보이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소·고발을 많이 하기로 유명하다. 우리의 고소·고발 건수는 연평균 50만 건 안팎이다. 이는 우리보다 두 배 넘는 인구를 가진 일본보다 건수로만 40배가 넘는다. 당사자끼리 타협하지 못하고 고소·고발을 남발하며 검찰로 달려가는 행태는 전형적인 선택 장애 증상이다. 이제는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선택하고 결정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 상대와 협상하고 타협하는 훈련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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