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3일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중학고등학교(이하 교토국제고)가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일본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이었다. 매년 여름 고시엔 구장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1915년 창설된 이래 올해 106회째를 맞는 일본의 대표적인 고교야구대회다. 이번 우승에서 더욱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 교토국제고의 교가였다. 놀랍게도 교가는 우리나라 말이었다. 아마도 이번 우승 전에는 교토국제고의 존재 자체도 아는 국민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교가가 우리말인 것을 아는 분은 정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승한 후 선수들이 도열하여 눈물을 흘리며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부르는 노래가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도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이라니! 고시엔은 매 경기 후 승리팀 교가가 연주된다. 이번 대회에서 6차례 고시엔 구장에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고 일본 공영방송 NHK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정말 기쁘고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문화심리학을 공부하는 필자는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 교토국제고는 한국말 교가를 바꾸지 않았을까? 안팎으로 한국말 교가를 일본어로 바꾸자는 압력이 거세지 않았을까? 교토국제고는 2024년 현재 전체 학생 수가 137명인데, 이 중 일본인이 116명이라고 한다. 전체 학생의 85%가 일본인이다. 더군다나 교토는 약 1000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지금도 일왕(日王)의 정식 즉위식은 교토에서 행할 정도로 일본 중의 일본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 아직도 한국말로 교가를 부르는 학교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더군다나 교토국제고의 전교생 가운데 남학생은 68명뿐인데, 그중 61명이 야구부원이라고 한다. 야구부원 중 한국계는 오직 3명뿐이며, 이들 모두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다. 야구부원 중 유일한 한국 국적자인 가네모토 유고(金本祐伍)군조차 교토국제고 입학 전까지 자신이 한국 국적이라는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또한 교토국제고 야구부 학생들 상당수가 교가의 의미를 모른다고 한다. 고시엔 구장에 응원하러 온 2800명 응원단도 대부분 교토 주민과 학생이었다. 더욱이 이 학교의 수업은 일본 교과과정에 따라 일본어로 진행되고 한국어와 한국 역사·지리는 별도 과목으로 다뤄진다.
실제로 이번 우승을 이끈 고마키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수년 전부터 교가 변경을 건의해 왔으나 학교 측이 이를 묵살해 왔다”고 강도 높게 공개 비판했다. 고마키 감독은 교토국제고가 일본어, 영어, 한국어 교육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만큼 교가도 3개 국어를 섞어 새로 짓자고 요구하고 있다. 교토국제고의 스카우트인 이와부치 교사 역시 고마키 감독을 지지하면서 시대 변화에 맞게 K팝 형식으로 교가를 완전히 새로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단다.
경우를 바꿔서 생각해 보자.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약 1000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 일본계 국제학교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 학교의 야구부가 유서 깊은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한 후 일본말 교가를 불렀다고 하면 어떨까? 그리고 매 경기 승리 후 6차례나 대표적인 TV 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널리 퍼져나갔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더구나 재학생의 85%가 한국인이고, 수업 자체가 우리말로 진행되고 일본어와 일본 역사와 지리는 별도 과목으로 다뤄지는 학교다. 비록 설립 기원을 따져보면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교로 세워졌지만, 광복 이후 운영의 주체가 한국인이고 수업에 사용되는 언어가 한국어인 경우, 그래도 일본어 교가를 계속 부르고 있을까?
가정(假定)은 가정일 뿐이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을 통해 확실하게 입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필자의 가정으로는 벌써 바꿨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이다. 일본 문화는 전통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학창 시절에 역사 선생님이 한국의 도자기 장인(匠人)의 가문이 없어졌다고 몹시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도자기를 굽는 기술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졌는데, 일본은 대를 이어 그 기술을 전수해 도자기 명문가가 이어져 내려온다고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장인들은 자신의 가업을 자식에게 전수하지 않아 그 명맥이 끊어졌다.
이런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일본에는 대를 이어 내려오는 ‘라면의 명가(名家)’들이 있어 관광객들이 그 집을 찾아가 식사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일부러 그 집에 가서 라면을 먹기 위해 그 도시를 찾는 관광객도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전통의 명가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비록 부모 대에서는 독특한 맛으로 명가를 이루었을지라도 자식들에게 라면집을 물려주려는 부모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인 이누미야 요시유키(犬宮義行) 교수는 도쿄에 있는 명문 히토쓰바시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이 대학은 소수 정예 교육을 지향하는 국립대학이다. 1993년 한국으로 유학 온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에서 문화심리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국내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또한 부인이 한국인이어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직접 경험한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도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누미야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학문적으로 비교하고, 그 근원을 찾아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문가다.
그는 2017년 양국의 문화를 비교 연구한 '주연들의 나라 한국 조연들의 나라 일본'이라는 훌륭한 저서를 출간했다. '한일비교의 문화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이누미야 교수는 같은 동양 문화권에 속하는 두 나라는 유사한 면도 많지만, 문화심리를 비교하면 꽤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 이유를 그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핵심적 차이인 ‘문화적 자기관(自己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문화적 자기관은 ‘각 문화 내에서 공유되고 있는 전형적인 인간관’을 의미한다. 그는 두 나라의 자기관의 차이를 비유적으로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즉 한국인은 주연(主演) 맡기를 선호하고, 일본인은 조연(助演) 맡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주연을 맡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일본인은 조연이라서 주변을 통해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를 결정한다. 영웅을 대하는 자세도 다르다. 한국인은 자신이 영웅이 되길 바라며 영웅들의 성장을 배우려고 하지만, 일본인은 영웅을 숭배의 대상으로 바라본다고 한다. 일본이 다신(多神)을 숭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인은 ‘주체성’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향을 주는 것을 지향하지만, 대조적으로 ‘대상성’ 성향을 가진 일본인은 있는 그대로를 수용(受容)하기를 바란다. 일본인들은 예측이 가능한 안정된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느낀다. 예측 가능성은 다른 말로 하면 '안정된 상태'다. 결국 일본인들의 매뉴얼 의존 경향, 규칙 강박, 안정성 추구, 예측 가능성 추구, 보수적 경향은 모두 사실상 동의어로 볼 수 있다.
주체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영향력을 미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현상을 유지하기보다 현상을 바꾸는 것을 좋아한다. 변화가 없는 곳에서는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지향하게 된다. 권력은 다른 사람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힘이다. 권력을 가지고 있어야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힘을 가지면 자꾸 현상을 바꾸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현상을 주도했다고 느끼고 남에게 과시하려고 한다.
대조적으로 일본에서는 변화를 지키는 것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총리를 정하는 여당 자민당 총재를 뽑는 선거에 출마한 고이즈미 신지로(43) 전 환경상이 결혼 후에도 각자의 성을 유지하는 ‘선택적 부부별성(夫婦別姓)’에 찬성했다가 지지율 하락을 겪고 결국 선거에서 패배했다고 언론이 전한다. 일본은 무조건 부부 한쪽의 성을 따르도록 하는 ‘강제적 부부동성’을 택하고 있는데 이 전통을 바꾸려고 하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결혼하면 부인이 남편의 성으로 바꾸는 서구에 대한 동경이 강했던 메이지 시대 민법에 넣은 조항이라는데, 이제는 부인이 결혼 후에도 성을 바꾸지 않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는 서구보다 더 강력하게 이를 고수하고 있다.
사실, 고시엔 구장에서 열리는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 열광하는 일본이 바로 전통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얼마나 강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고교 야구가 인기 정상을 달리며 성황리에 개최되는 시기가 있었다. 각 지방을 대표하는 맹주들이 동대문에 있던 야구장에 모여 모교와 고향의 명예를 걸고 분투하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고교 야구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다. 요즘에는 선수와 가족 이외에는 고교 야구 시합이 있는 야구장에 가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인 것이다. 전통을 고수하는 것과 과감히 전통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는 차이이다.
문화는 한 집단이 주어진 환경에 가장 효율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두 집단의 문화를 자신의 가치관으로 판단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5000년 세월을 강대국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형성한 것이 주체성 자기를 키우는 것이었다. 변화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에서는 결국 누가 변화를 주도하는지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적합한 변화를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이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한 경험을 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교토국제고의 우승을 계기로 한국어 교가를 음미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교가 전문은 다음과 같다. “(1절)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도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2절) 서해를 울리도다 자유의 종은/ 자주의 정신으로 손을 잡고서/ 자치의 깃발 밑에 모인 우리들/ 씩씩하고 명랑하다 우리의 학원// (3절) 해바라기 우리의 정신을 삼고/ 문명계의 새 지식 탐구하면서/ 쉬지 않고 험한 길 가시밭 넘어오는 날/ 마련하다 쌓은 이 금당// (4절) 힘차게 일어나라 대한의 자손/ 새로운 희망길을 나아갈 때에/ 불꽃같이 타는 맘 이국땅에서/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 되자.”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