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 미국·일본 등 주요국이 반도체 산업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지원하면서 산업생태계를 뒤흔든 결과다.
일본 정부가 3년간 반도체 기술개발과 설비투자에 지원한 자금만 GDP의 0.71% 수준인 3조9000억 엔 규모다. 미국의 반도체 지원 예산은 GDP의 0.21%지만 금액으로 따지면 일본의 2배에 이른다.
독일은 GDP의 0.41%를, 프랑스도 5년간 GDP의 0.2%를 반도체에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자금을 투입하며 공급망 확보에 나서고 있다. D램 경쟁력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한국만 글로벌 공급망 경쟁에서 밀려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메모리 제조에서 1위라는 지위에 만족하며 지낸 세월만 10년이다. 미세 첨단 공정에만 집중한 나머지 인공지능(AI)이나 전력용 반도체 등으로 다변화할 기회를 놓친 셈이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일본·대만 간 공급망 합종연횡에도 빠졌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은 기업의 투자로만 이루어지기 힘들다. 정부의 투자 지원과 기업의 정교한 계획이 합쳐져야 가능하다.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먹거리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정파를 초월한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반도체 지원 특별법 제정과 예산 지원에서 보여준 여야 협력에 박수를 보낸다.
총 2800억원 규모의 한국산업은행 반도체 사업 지원 예산을 유지하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3년간 26조원 반도체 산업 종합지원 프로그램을 구체화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빅테크 기업을 성장시킨 동력도 알고 보면 정부의 혁신 조달 시스템 덕분이다. 아이폰을 국방부에서 구매해 주는 등 정부가 혁신 기술과 산업의 마중물 역할을 한 사례도 있다.
트럼프 2기 정부도 자국 중심의 미래 첨단산업 생태계를 확보하려 할 게 분명하다.
우리도 첨단산업에 과감한 규제개선과 지원을 해야 한다. 미래는 핵심적인 산업의 패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도 결정될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