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중국을 잇는 하늘길이 크게 바뀌고 있다. 러시아 영공 통과 제한으로 유럽 항공사들이 중국 노선에서 철수하면서 중국 항공사들의 시장 지배력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인천공항을 거점으로 하는 한국 항공사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금융매체 카이신은 지난해 12월 17일(현지시각) 보도에서 러시아의 유럽 항공사 영공 통과 제한으로 유럽-중국 노선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다고 전했다. 루프트한자는 프랑크푸르트-베이징 노선에서 매 비행당 55만 달러의 손실이 발생해 운항을 중단했다.
영국항공은 런던-베이징 노선을 2025년 11월까지 운항하지 않을 방침이며, 버진아틀랜틱도 런던-상하이 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또한, EU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해 12월 10일(현지시각) 이 공백을 중국 항공사들이 빠르게 채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3년 11월 말 일주일간 중국-유럽 간 총 855편의 항공편 중 84% 이상을 중국 항공사들이 운항했다.
에어차이나는 32개 노선에서 하루 53편을 운항하며 2019년 수준을 16% 웃돌았고, 특히 이탈리아와 영국 시장에서는 중국 항공사들의 점유율이 95-100%에 이르러 사실상 독점 구도가 형성됐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중국 간 교역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3년 7390억 유로 규모였던 양측 교역에서 중국 항공사들의 운항은 늘었지만, 항공편 선택의 폭이 줄어들면서 실제 물류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유럽 기업들이 선호하는 자국 항공사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시간에 맞춘 효율적인 수출입에 제약이 생기고 있다. 신선식품과 의약품 같은 시간에 민감한 품목은 중국 항공사들의 스케줄과 노선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져 적시 배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 항공업계는 정부 차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KLM의 마리안 린텔 CEO는 "중국 항공사들과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U 집행위원회가 국제노선 경쟁 연구를 약속했으나,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윌리 월시 사무총장은 실질적 대책 실행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천공항이 새로운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 유럽 기업들이 중국 항공사 대체 노선을 찾는 가운데, 인천공항은 러시아 영공 우회가 불필요해 비행시간과 비용 면에서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핀에어의 헬싱키-베이징 노선은 러시아 우회로 비행시간이 4시간 늘었지만, 인천공항 경유 시 총 비행시간을 2시간 이상 단축할 수 있다.
이런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했다. 대한항공은 2024년 여름부터 국제선 운항을 팬데믹 이전의 96% 수준으로 확대하고 프리미엄 서비스를 강화해 고수익 승객 유치에 나섰다.
특히 유럽 주요 도시와 중국 2선 도시를 연결하는 환승 노선을 강화해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부다페스트 노선을 주 4회로 증편하고 장가계, 정저우 등 중국 내 신규 노선을 개설한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국 항공사들의 시장 지배력 강화가 새로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운임 상승과 서비스 수준 저하가 우려되며, 중국의 항공 정책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도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EU 교통위원회는 "항공 노선 불균형으로 양측 교류의 주도권이 한쪽으로 기울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일부 유럽 정치인들은 이러한 상황이 유럽의 대중국 협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 항공사들은 이러한 기회를 활용하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유럽과 중국의 긴장이 고조될 경우 제3국 항공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으나, 동시에 중국의 견제나 유럽의 새로운 규제 가능성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