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산업의 성장 둔화와 정치적 불확실성이 미국 배터리 산업의 구조적 혁신을 촉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1월 30일(현지시각) 테슬라 공동창업자 JB 스트라우벨과의 인터뷰를 통해 배터리 재활용이 미국 전기차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조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스트라우벨이 이끄는 레드우드 머티리얼즈는 올해 2억 달러의 매출 달성을 앞두고 있다고 처음으로 공개했다. 회사는 중고 배터리에서 핵심 광물을 추출하는 혁신적 방식으로 연간 20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소재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는 전기차 25만 대분에 해당한다. 스트라우벨은 이를 "차세대 정유공장"이라 표현하며, 지속가능한 배터리 공급망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러한 혁신은 트럼프의 재집권이라는 정치적 변수와도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평가다.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의 사이먼 무어스 CEO에 따르면, 현재 미국 배터리 산업 투자의 92%가 공화당 지지 기반인 레드스테이트에 집중되어 있으며, 2030년까지 계획된 40개의 대형 배터리 공장 중 88%가 이들 지역에 건설될 예정이다. 이는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제조업 부활을 강조해온 트럼프의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어, 트럼프 취임 이후에도 배터리 산업 육성 정책이 급격히 전환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레드우드는 네바다 주 스팍스에 8.5억 달러를 투자해 325,000평방피트 규모의 양극재 생산시설을 건설 중이다. 2026년까지 연간 25만 대 규모의 전기차용 배터리 소재 생산을 목표로 하며, 토요타와 파나소닉 등 주요 고객사들과의 공급 계약도 확보했다. 다만, WSJ는 레드우드가 현재 재활용 소재의 상당 부분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어, 미국 내 배터리 공장들의 본격 가동 전까지는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배터리 산업에 새로운 과제를 제시한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의 배터리 3사는 미국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나, 향후 배터리 핵심 소재의 현지 조달 요건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레드우드와 같은 현지 기업의 배터리 재활용 분야 선점은 한국 기업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이에 한국 기업들은 배터리 재활용 기술 개발 가속화와 함께, 현지 재활용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로 안정적인 소재 공급망을 확보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2025년 트럼프 취임 이후에도 미국 중심의 배터리 산업 재편은 지속될 전망이다. 전기차 보조금은 축소될 수 있으나, 미국 내 배터리 생산과 공급망 구축은 '미국 제일주의' 정책과 중국 의존도 감축이라는 전략적 목표에 부합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전기차 산업은 현재의 도전을 배터리 재활용과 공급망 현지화를 통해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배터리 산업의 지형 변화를 예고하며, 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