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도 하기 전에 ‘관세 폭탄’ 카드로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내년 1월 20일(현지 시각) 취임 당일에 중국에 추가 관세에 더해 10%의 관세를 더 부과하고,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각 2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캐나다·멕시코·중국을 합하면 미국 전체 수입의 40%에 이른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대 라이벌 중국과 함께 인접국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첫 번째 과녁으로 삼았다. 이는 곧 한국을 비롯한 어느 동맹국도 관세 폭탄 투하 지역이 될 수 있다는 신호탄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이번 발표가 고도의 협상 전략인지, 아니면 진짜 ‘관세맨’으로서 의지를 드러낸 것인지 아직은 불확실하다. 분명한 것은 그가 마음만 먹으면 자기 구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쥐고 있다는 점이다.
미 경제전문지 마켓워치는 그가 관세정책을 시행하면서 1977년 제정된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동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IEEPA는 미국의 안보·외교·경제에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이 발생하면 대통령이 의회의 동의 없이 특정 국가에 경제 제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인 2020년 중국 기술기업들의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 가능성을 이유로 틱톡·위챗 사용과 중국 앱 거래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잇달아 내렸다. 트럼프가 당시 내린 행정명령은 IEEPA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 당선인이 앞으로 이 칼을 휘두르면 피할 길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그는 이 법에 따라 의회의 승인이나 공청회, 관련 보고서 발표 등 그 어떤 사전 조처 없이 수입품에 즉각 관세를 매길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멕시코·캐나다·중국을 겨냥해 관세 카드를 동원하면 피해를 본 측이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쉽지 않다. 미국 정부를 상대로 미국 기업이나 소비자, 외국 정부와 기업이 이긴 사례가 드물다.
현재로서 해결책은 막후 협상이나 로비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보복 관세로 맞대응하는 무역 전쟁에 참전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당시에 기업이 관세 부과의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트럼프 집권 1기 당시인 2018~2019년 미 무역대표부(USTR)에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면제 신청 건수가 약 5만 건 접수됐고, 상무부에는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이 관련된 관세 면제 신청 건수가 거의 50만 건에 달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이번에도 그런 로비를 받아 관세 부과의 예외를 인정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가 집권 2기에는 더 선명한 족적을 남기려고 예외 불허 원칙을 밀어붙일 수도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의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어떻게 해서든 트럼프의 환심을 사서 관세 폭탄의 예봉을 피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다른 나라와 연대해 미국과 일전을 불사하는 것이다.
이때 한국은 한미동맹 체제로 사실상 핵보유국인 북한을 억제하고 있다는 약점이 있다. 더욱이 한국은 대표적인 대미 무역 흑자국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한국은 중국·멕시코·베트남·독일·아일랜드·대만에 이어 미국의 무역적자 순위 7위를 기록했다.
이는 곧 한·미 통상 분쟁에서 한국이 잃을 게 더 많다는 뜻이다.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한국 정부의 외교력, 기업의 로비력에 한국의 명운이 달렸다. 정부와 기업의 정교한 팀플레이가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