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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트럼프 MAGA 관세폭탄과 "플라자 합의"

김대호 연구소장/ 경제학 박사

기사입력 : 2024-12-02 10:05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소장 전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소장 전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복판인 센트럴파크 남동 방향 입구 쪽에 플라자 호텔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17년 전인 1907년에 지어진 매우 유서 깊은 호텔이다. 미국의 역사를 움직인 수많은 이벤트가 이곳에서 진행됐다. 매릴린 먼로, 존 F. 케네디, 앤디 워홀, 리처드 닉슨, 제임스 베이커, 다케시타 노보루 등 그야말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세계적 명사들이 이 호텔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했다. 비틀스와 마크 트웨인은 아예 플라자 호텔에서 살았다.

할리우드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던 크리스마스 영화 '나 홀로 집에(Home Alone 2)'를 촬영한 무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미국 47대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가 단역 배우로 등장한다. 가족 일행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어린 주인공 '케빈 매컬리스터'에게 플라자 호텔 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멋진 신사가 바로 젊은 시절의 트럼프다. 트럼프 당선인은 영화 촬영 당시 플라자 호텔의 소유주 겸 경영총책 CEO였다. '나 홀로 집에' 영화를 찍을 때 플라자 호텔을 무대로 제공하면서 그 대가로 영화 출연을 한 것이다. 트럼프의 대중 공략의 홍보 마인드는 그때부터 유별났다.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다섯 나라 재무장관 회의가 열렸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선진 5개국의 재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금은 선진 7개국 모임인 G7 또는 20개국 모임인 G20이 해마다 열려 재무장관들이 수시로 만나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만남이었다. 회의를 소집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레이건 대통령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맡고 있던 베이커가 주도했다.
이날 플라자 호텔 협상은 시작부터 분위기가 싸늘했다. 말이 좋아 협상이지 미국의 압박은 우격다짐과 협박이었다. 미국 측은 일본 통화가치의 절상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미국이 일본 물건을 계속 사주는데 일본은 미국 물건도 안 사주고 수출만 해서 경상수지 악화가 심각하다는 것이 회담의 요지였다. 일본 측 재무대신과 일본은행 총재는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당시 미국 경제는 재정적자에 무역적자가 더해진 이른바 ‘쌍둥이 적자’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이미 미국을 추월한 지 오래였다.

미국 경제의 그늘이 짙어진 시작점은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10월 16일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매월 원유생산을 전월 대비 5%씩 감소하겠다고 발표한다. 1차 석유파동의 시작이었다. 이어 1978년엔 이란 내 이슬람 혁명을 계기로 OPEC이 다시 유가를 올리면서 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1973년 석유파동 전 유가는 배럴당 3달러2센트였다. 1978년 이란이 석유생산을 감축했고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마저 감축에 들어가면서 국제유가가 폭등했다.

두 차례의 오일쇼크는 전 세계적인 인플레를 야기했다. 원윳값 상승으로 물가가 폭등한 것이다. 베트남전쟁 비용 출혈로 어려움을 겪던 미국의 피해가 특히 컸다. 1970년부터 10년 동안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해마다 15%씩 뛰었다. 그야말로 인플레 아비규환이었다. 폴 볼커가 이끌던 미국 연준은 인플레를 잡는다면서 연이어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금리인상은 경기침체를 가져와 미국 경제는 물가 폭등 속에 실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그 어려운 시절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레이건이다. 1980년 공화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레이건은 혼돈에 빠진 미국 경제를 다시 살려내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레이건이 그때 만든 슬로건이 그 유명한 MAGA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영문 구호 'Make America Great Again'에서 앞 글자만 따 구호로 축약한 것이 MAGA다. 레이건은 바로 이 MAGA를 앞세워 당시 세계적인 인권 대통령으로 명성이 높았던 현역 지미 카터를 꺾는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인플레 고통에 신음하던 유권자들이 인권 대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일으켜 세우겠다는 레이건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1980년 레이건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과정은 2024년 대선에서의 트럼프와 흡사하다. 코로나 팬데믹 때 유동성을 과다하게 풀어 인플레를 야기하고 그 물가를 잡겠다며 초고강도 자이언트 스텝의 금리인상을 단행해 국민들의 원성을 샀던 바이든-해리스 정부의 행태가 19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정부와 많이 닮았다. 또 인권 또는 낙태와 같은 형이상학적 이데올로기보다 경제부터 살리자는 트럼프의 MAGA 실용주의에 미국의 유권자들이 표를 몰아준 것도 비슷하다. 그런 면에서 2025년부터 전개될 트럼프노믹스는 1980년대 레이건이 펼친 레이거노믹스와 기본 궤를 같이하고 있다.

레이건 정부가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 선진 5개국 재무장관 회의를 소집한 것도 레이거노믹스의 'MAGA 구현'을 위한 것이다. 레이건은 출범 이후 인플레를 잡는다면서 '강달러 정책'을 폈다. 고금리와 고관세 정책으로 달러 강세를 유도했던 것이다. 그 덕에 물가는 어느 정도 잡았다. 문제는 달러 강세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법인세 인하와 세금 감면으로 재정적자도 심각해졌다. 무역과 재정이 한꺼번에 거덜 나는 '쌍둥이 적자'가 온 것이다.
이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레이건 정부가 꺼낸 카드가 환율이었다. 미국에 대해 엄청난 규모의 흑자를 내고 있던 일본으로 하여금 엔화 가치를 끌어올리도록(엔화 환율 하락 유도) 함으로써 일본 기업의 수출을 줄이고 수입은 늘리도록 하자는 구상이었다. 무역은 환율에 매우 민감하다. 엔화의 환율이 하락하면 일본에서 해외로 수출해 벌어들이는 엔화 기준의 실질 수입이 감소한다. 일본 기업들로서는 수출 메리트가 줄어드는 것이다. 반면 일본의 수입물가 부담은 엔화의 환율이 약세일 때 더 줄어든다. 이런 메커니즘 때문에 엔화의 평가절상, 즉 엔화 환율의 인위적 하락은 일본의 무역과 경상수지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 반대 관계에 있는 미국으로서는 엔화의 절상이 일본과의 교역에서 적자를 줄일 수 있는 좋은 카드가 되는 것이다.

미국의 구상은 선진 5개국이 공동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를 평가절상시키기로 합의하자는 것이었다. 일본과 독일은 처음에 강력하게 반발했으나 미국이 그리하지 않으면 '관세 폭탄'을 터뜨리겠다고 위협하자 압력에 굴복하고 만다. 경제학계에서는 그 결정을 회의 개최 장소의 이름을 따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라고 부른다. 플라자 합의가 체결되자 전 세계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매도가 봇물을 이루었다. 그 결과 달러 가치가 빠르게 떨어졌다. 미국은 이후 신경제 현상으로 불리는 고성장을 지속했다.

플라자 합의 쇼크로 일본과 독일은 오랫동안 경제 불황을 겪었다. 특히 1980년대 초중반까지 4~5%의 견실한 성장을 지속했던 일본은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 현상으로 인해 자동차 등 일본 주력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이 감소했다. 엔화 절상으로 일본의 소비가 늘어 결과적으로 국제수지가 급격히 악화됐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플라자 합의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레이건의 MAGA 후계자를 자처하는 트럼프로서는 제2의 플라자 합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 플라자 합의보다 더 무서운 MAGA 폭탄이 터질 수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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