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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스태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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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전 고려대 교수
스태그플레이선의 공포가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침체를 뜻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물가의 연속적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이다. 경제 침체와 물가 상승이 함께 나타나는 현상을 흔히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1965년 영국의 재무장관 아이안 맥리오드(Iain Macleod)가 최초로 사용했다.
통상적으로 경기가 좋아지면 모두들 소비와 투자를 늘리게 된다. 소비와 투자 지출의 증가는 물가상승 압력을 야기한다. 반대로 경기가 둔화되면 소비와 투자가 줄어들게 된다. 지출이 감소하면 물가 가 하락 압력을 받게 된다. 경기 수준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지표는 실업률이다. 경기가 좋아지면 이 실업률이 낮아진다. 실업률이 낮을 때 물가는 올라간다. 반대로 실업률이 높아지면 물가는 내려가는 속성이 있다. 실업률과 물가는 이처럼 적어도 단기에 있어서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를 학문적으로 입증한 경제학자가 바로 올번 윌리엄 필립스(Alban William Pillips)DLEK.

영국의 경제학자였던 필립스는 1958년 세계적인 경제학술지인 이코노미아(Economica)에 발표한 논문에서 1861년에서 1957년 사이의 영국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명목임금상승율과 실업률 간에 역(-)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필립스에 따르면 실업률이 낮은 해에는 임금상승율이 높은 반면 실업률이 높은 해에는 임금상승율이 낮았다. 1960년대에 들어 립시 등 여러 경제학자들이 각국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등에서도 실업률과 물가의 관계가 안정적인 역의 관계임을 입증됐다. 이후 새뮤얼슨과 로버트 솔로가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에서도 역의 관계가 성립함을 발견했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필립스 곡선 또는 필립스 곡선의 이론으로 부르게 됐다. 그래프의 세로축에 인플레이션율(물가상승률), 가로축에 실업률을 두면 우하향하는 곡선이 되는데, 이는 여러 나라의 시대별 자료에 대한 실증 연구를 통해 명목 임금상승률이 높을수록 실업률이 낮게 나타나는 반비례 관계임을 보여준다.

필립스 곡선의 이론은 케인즈 학파의 재정금융 정책에 전폭적으로 수용됐다. 케인즈 학파는 필립스 곡선에서 말하는 실업률과 물가의 역함수 관계를 토대로 경제적 후생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재정통화정책의 모델을 만들어 났다. 케인즈 경제학이 재정의 역할 확대를 주장할 수 있었던 학문적 근거가 바로 필립스 곡선에 있었다. 실업률과 물가가 역 비례의 안정적 함수 관계로 작동했기에 이를 기초로 재정을 역할을 과감하게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필립스 곡선은 케인스 경제학의 기초 토대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대공황 때 루즈벨트 대통령이 전개한 뉴딜 정책이 그 대표 예이다. 필립스 곡선에 기반을 둔 케인즈 경제학은 한동안 세계의 경제학을 평정했다.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의 역관계, 즉 필립스 곡선이 영원히 유효할 것으로 알았다.
1973년 제1차 석유 파동이 터지면서 필립스 곡선은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와 실업률이 동시에 급등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이 상황에서 케인즈 경제학은 재정을 더 늘릴수도 줄일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았다. 인플레와 실업률의 동시 폭발상황에서 오르는 실업률을 떨어뜨리기 위해 재정 지출을 확장하자니 이미 올라있는 물가가 더 폭발했다.그렇다고 물가를 잡기 위해 재정지출을 축소하면 실업률이 더 악화됐다. 필립스 곡선에 기반한 케인즈 경제학의 수요관리 정책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생산 비용의 급증은 물가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생산을 위축시켜 실업을 양산했다. 공급망의 균열이나 자원 무기화 같은 외부 충격 앞에서 케인즈 경제학의 수요관리 정책은 오히려 침체를 가속화하는 독약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10년 넘게 장기화된 결정적 이유는 '기대 인플레이션'의 안착에 있었다.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대중의 공포가 실제 임금 인상 요구와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고착화된 것이다. 당시 미국 연준(Fed)은 물가와 경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였다.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올렸다가, 실업률이 치솟으면 다시 금리를 낮추는 '가다 서다(Stop-and-Go)' 식의 대응은 시장의 신뢰를 잃게 했다. 경제 주체들은 정부가 물가를 잡을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인플레이션 심리를 더욱 공고히 했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중앙은행의 일관된 신뢰와 단호한 의지가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이다.

시카고 학파로 유명한 경제학자 프리드먼이 스태그플레이션이 생겨나는 구조적 원인을 규명했다. 이 때 새로 나온 개념이 자연실업률(natural rate of unemployment)이다. 프리드먼은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적응적 기대를 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단기에는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율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므로 필립스곡선이 우하향해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사이에 역의 관계를 가진다고 보인다. 프리드먼은 그러나 장기에는 인플레이션율을 정확하게 예측하게 되므로 인플레이션율과 관계없이 실업률은 자연실업률 수준에서 고정되고 필립스 곡선은 수직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자연실업률은 노동시장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취업자와 실업자의 수가 변하지 않는 상태의 실업률을 말한다. 스태그플레이션 상태는 서로 상반되는 해결책을 가진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오르고 있는 만큼 디플레이션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현상으로 여겨진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노동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하며, 똑같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1979년 연준 의장에 취임한 폴 볼커는 기준금리를 연 20%까지 끌어올리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이 고강도 긴축으로 '인플레이션이라는 용을 잡는' 데 성공했으나, 극심한 경기 침체와 기업 파산이라는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볼커의 결단은 우리에게 고통 없는 회복은 없다는 냉혹한 진실을 일깨워준다.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단계에서 대중의 고통을 우려해 선제 대응을 미룰수록, 훗날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의 배후에는 오일 쇼크라는 지정학 대격변이 있었다. 공급 측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에너지 안보 확보와 자원 공급망의 다변화가 통화 정책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만이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근본적인 탈출구임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또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가가 상승 압력을 받는 가운데 경기가 침체하면서 실업률이 오르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짐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 만으로 사태를 수습하기 어렵다. 또 한번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 .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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