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 출범에 맞춰 캐나다가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의 틀을 벗어나 멕시코를 배제한 채 미국과 새로운 양자 무역 협정을 추진하려 한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그의 경제팀 고위 관계자들은 트럼프 당선인과의 어려운 무역 협상에 대비해 멕시코를 배제하는 카드로 그의 환심을 사려한다고 WSJ이 전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불법 이민자 월경과 마약 반입을 차단하지 않으면 멕시코산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밝혔었다. 또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중국산 전기차 등에는 200%까지 관세율을 올리겠다고 했다.
미국, 멕시코, 캐나다는 오는 2026년 USMCA 이행 사항 검토를 앞두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 측은 USMCA 재협상 가능성까지 검토하고 있다. 세 나라가 합의하지 않으면 이 협정이 폐기될 수 있다.
캐나다 지도자들은 USMCA가 중국산 자동차나 부품 회사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우회 수단으로 이용될 것으로 우려한다.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최근 브라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만나 중국의 협정 악용 가능성 문제를 제기했다. 트뤼도 총리는 이날 기자 회견에서 “우리가 중국의 멕시코 투자를 실제로, 진지하게 우려하고 이 문제를 셰인바움 대통령에게 언급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트뤼도 총리의 주장이 내년 총선을 앞둔 수사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멕시코는 트럼프 당선인 정부 출범해 대비해 자동차 부품 등에 대한 중국산 수입 규모를 줄이고 현지 생산을 늘리기로 했다. 엘우니베르살과 엘피난시에로 등 멕시코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멕시코 정부는 USMCA 규정에 맞춰 자국 기업들이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나 부품의 수입을 축소하고, 현지 생산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전날 기자 회견에서 "우리가 멕시코 기업 또는 멕시코에 진출한 미국·캐나다 기업과 함께 현지 생산을 늘리는 계획을 수립했고, 멕시코는 중국의 우회 진출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트뤼도) 총리가 협정에서 멕시코를 배제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고, 그는 우리가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분명한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과 껄끄러운 관계였으나 최근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캐나다에서 미국에 대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75%(연 약 6000억 캐나다달러, 약 600조 원)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 양국 간 무역 규모는 하루 36억 캐나다달러(약 3조6000억 원)에 달한다. 또 매일 40만 명이 양국 국경을 오가고 있으며 약 80만명 가량의 캐나다인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트뤼도 총리는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과 통화에서 USMCA 협정에 대해 논의했다.
USMCA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해 2020년 발효됐다. USMCA는 6년마다 협정 이행 사항을 검토하게 돼 있고, 오는 2026년에 첫 시점이 도래한다. 현 USMCA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멕시코에서 생산된 차량에 대해 무관세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로 부상한 비야디(BYD)가 멕시코에 공장을 설립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트럼프 당선인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BYD가 멕시코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면 USMCA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지난 8월 중국산 전기차에 100%,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동맹국의 중국산 전기차 정책에 보조를 맞추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멕시코산 자동차에 최대 200%까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공언함에 따라 멕시코의 자동차 산업이 위기를 맞았다. 기아차 등 미국 시장을 겨냥해 멕시코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이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 수 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