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에서 국립공원 옐로스톤으로 가는 길목에 거대한 잭슨홀(Jackson Hole) 이란 지명이 나온다. 로키산맥의 지류인 그로스 벤터 산맥과 티턴 산맥 사이 해발 2천 미터의 고산 지대에 자리한 거대한 골짜기 마을이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미국 와이오밍주와 아이다호주와의 경계 근처에 위치해 있다. 첩첩산중의 산 동네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매년 여름 이 곳에서 통화금융정책회의를 연다. 이름하여 잭슨 홀 미팅 회의이다. 기준금리 인하와 양적완화(QE) 또는 금리인상과 양적축소(QT)등 연준의 주요한 통화금융 정책 방향이 이 회의에서 논의된다.
여기서 말하는 홀(Hole)은 큰 산골짜기를 뜻한다. 덫 사냥꾼이나 산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이다. 미국 독립 전쟁 직후 이 골짜기를 처음 발견한 데이비드 잭슨이라는 탐험가 겸 모피무역상의 이름을 따 잭슨홀 (Jackson's Hole) 이라고 부른다. 이 잭슨 홀은 골짜기의 길이가 무려 89km데 달한다. 고도는 평균 해발 2100m이다. 최저점의 높이는 1940m이다. 우리나라의 설악산이나 한라산 정상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이 외진 심산유곡 산골짜기에 까지 들어와 통화금융 정책회의를 하는 데에는 나름 사연이 있다. 미국 연준의 연례통화정책회의는 1978년부터 시작됐다. 초기의 최의는 행사를 주관하는 캔사스시티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 of Kansas City)이 위치한 미주리주의 캔사스시티에서 열렸다. 캔사스에서 잭슨홀로 옮긴 것은 1982년이다. 그때 연준 의장은 고강도 금리인상의 긴축으로 유명한 폴 볼커였다.
폴 볼커는 지미 터 대통령의 지명으로 1979년 8월6일 제 12대 연준 의장으로 임명됐다. 오일 쇼크등으로 미국이 인플레로 고통 받던 시절이었다. 폴 볼커는 취임한지 꼭 4개월째인 그해 10월 6일 기준금리를 11.5%에서 15.5%로 한꺼번에 무려 4%포인트 올리는 조치를 단행했다. 마침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모두가 쉬고 있던 휴일에 기습적으로 FOMC 회의를 소집하여 대대적인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폴 볼커의 전격적인 인상조치에 대해 당시 뉴욕증시와 언론들은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 불렀다.
폴 볼카의 매파 정책은 계속됐다. 1981년에는 기준 금리를 21.5%까지 끌어올렸다. 고금리는 무려 3년이나 지속되었다. 고금리는 미국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 특히 농민들의 타격이 심했다. 고금리로 창졸간에 빚더미에 앉게 된 미국 농민들이 대거 트랙터를 몰고 워싱턴으로 쳐들어오는 일이 벌어졌다 . 농민들은 워싱턴DC의 도심 한복판을 행진하면서 연준 건물을 봉쇄해 버렸다. 이 와중에 한 남자가 총을 들고 연준 청사에 난입해 폴 볼커를 저격하겠다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전대미문의 고금리 직격탄으로 회사가 망하자 앙심을 품고 총을 들고 쳐들어온 것이었다. 이후 폴 볼커는 항상 몸에 권총을 지니고 다녔다. 온갖 시위와 살해 위협 속에 스스로 몸을 지키기 위한 조치였다. 그만큼 고금리에 대한 저항이 거세었던 것이다,
사태가 이처럼 험악하게 돌아가자 연준의 통화정책회의도 위협을 받게 되었다. 시위대들이 연준의 통화정책회의가 열리는 캔사스시티까지 쳐들어 올 수 있다는 우려 가 증폭된 것이다. 연준은 1981년 급기야 통화정책회의의 장소를 일반인들이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어려운 산골짜기로 변경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낙점된 곳이 바로 오늘날의 잭슨홀이다. 잭슨홀 미팅은 2010년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연설을 통해 2차 양적완화(QE2) 등 중요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잭슨홀 미팅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연준 의장의 기조연설이다. 잭슨홀 미팅에서 나오는 연준 의장의 메시지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통화 정책 방향이다. 미국의 통화정책은 달러 환율과 뉴욕증시 등 금융시장에 큰 변동성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전세계의 경제계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2005년에는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장이 미국 경제의 거품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제기한바 바 있다. 이 발언 이후 2년 후인 2007년 실제로 세계 금융 위기가 도래하여 주목을 받았다.
2010년에는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책으로 양적완화 확대와 제로금리 정책을 제안했다. 2022년에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고강도 금리 인상을 계속하겠다는 발언을 해 국내외 증시와 외환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크게 출렁거렸다. 2023년에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주제로 한 기조연설에서 미국 기준 금리 인상 여부에 대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발언하면서 뉴욕증시가 크게 올랐다.
잭슨홀미팅 참석자 수는 150명 안팎이다. 숫자는 적지만 참석자 모두가 초 중량급 인사들이다. 미국 연준은 물론이고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일본은행(BOJ) 등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인다. 거물 경제학자들도 초대를 받는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글로벌 경제 상황에 대해 진단하고 금리 정책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한다. 이를 글로벌 통화정책의 정책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
요즘 세계 경제는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혼돈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침체와 스태그플레이선의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금리인하의 시작 시점과 인하의 속도 그리고 횟수를 들러싼 논쟁도 치열하다. 일본의 긴축 전망이 짙어지자 곧바로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이 불거지며 엔화가 치솟고 증시가 발작하고 있다. 우치다 신이치 일본은행(BOJ) 부총재가 "금융자본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금리 인상을 하는 일은 없다"고 진화에 나서지만 시장은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않은 분위기이다. 그런 만큼 올 잭슨홀 미팅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올해 잭슨홀 미팅의 관전 포인트는 미국이 9월에 빅컷(0.5%포인트 인하)에 나서느냐, 향후 금리를 얼마까지 내리느냐에 대한 예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를 긴장시킨 일본은행의 향후 긴축 속도와 강도도 잭슨홀 미팅 이후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잭슨홀미팅은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은에게도 매우 중요한 행사이다. 소비자물가가 4개월 연속 2%대에 들어선 가운데 가계대출과 집값은 치솟고 있다. 잭슨홀 미팅에서 파월의 입에 따라 환율과 증시 방향이 정해질 것으로 관측되면서 한은도 금리 인하 시점과 강도에 대한 방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올 잭슨홀 미팅에는 한은에서 신성환 금통위원이 참석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022년에는 잭슨홀 미팅에 참석해 '경제 및 정책 제약 조건에 대한 재평가' 주제의 일부 세션에 참석했다. 지난해에는 조윤제 전 금통위원이 참석했다.
이번 잭슨홀 미팅은 미국 연준 FOMC 금리인하의 신호를 공식적으로 발하는 중요한 이벤트가 될 수 있다. 연준이 언제부터 또 어떤 속도로 금리인하를 단행할 지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통화 금융정책의 향방이 잭슨홀 미팅에 달려있는 셈이다. 세계 경제가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는 중요한 회의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