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배터리 셀 제조업체인 노스볼트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유럽 태생 배터리 업체가 파산보호를 신청한 것은 지난해 영국 브리티시볼트 이후 두 번째다. 높은 진입장벽, 전기차 시장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등에 대응하지 못한 결과다. 미국,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2012년, 2018년 무너진 것에 이어 유럽 업체까지 문을 닫으면서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의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노스볼트는 지난 21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스웨덴 현지 매체가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타개책 하나로 파산보호 절차를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나흘 만이다. 현 경영진인 페테르 칼손 노스볼트 최고경영자(CEO)도 파산에 따른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유럽 태생 배터리 셀 제조업체가 무너진 것은 지난해 브리티시볼트 이후 2번째다. 노스볼트는 2016년 설립된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 전 임원인 피터 칼손이 설립한 배터리 셀 제조업체다. 올해로 설립된 지 8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폭스바겐, BMW, 볼보 등 주요 완성차 업체와 공급 계약을 맺으며 전 세계 배터리 시장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높은 성장성을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를 받아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CATL 등과 본격 경쟁할 수 있는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노스볼트가 파산보호라는 선택을 한 것은 재무 구조가 악화했기 때문이다. 갚아야 할 부채는 많았지만, 보유한 현금은 적었다. 노스볼트가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노스볼트의 가용 현금은 일주일 동안 운영할 수 있는 자금 수준인 3000만달러(약 421억6500만 원)에 불과했다. 반면 빚은 58억 달러(약 8조1519억 원)에 달했다. 여기에 추가 투자 유치 실패도 기름을 부었다. 특히 노스볼트 주식 2.8%를 보유해 주요 주주 중 하나였던 독일 BMW가 6월 22억 달러(약 3조 원) 규모의 배터리 구매 계약을 철회한 것이 컸다. 해당 물량은 삼성SDI에 갔다.
업계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했다고 평가한다. 2012년 미국 배터리 업체 A123시스템즈, 에너원 파산, 2018~2019년 중국 배터리 업체 난징 인롱 뉴에너지, 루그로우, 옵티엄나노에너지 연이어 문을 닫은 바 있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높은 기술력으로 진입장벽이 높은 배터리 산업에서 기술력이 부족한 기업들이 하나씩 정리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도 초반에는 플레이어(기업)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몇 개 없다. 배터리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한국 업체에 반사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스볼트가 배터리를 공급 또는 예정이던 물량이 국내 배터리 업체에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노스볼트가 시장 점유율이 매우 낮아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판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자가 사라지면 남아 있는 기업들에 이익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며 "하지만 노스볼트가 실제로는 양산에 돌입하는 등 결과는 좋지 않아 기존 업체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노스볼트에 슬러리 등을 공급하고 있는 동진쎄미켐 관계자는 "(회사) 사업에서 이차전지 사업 규모는 미미하다"고 밝혔다.
김정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h13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