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국가 경쟁력의 새로운 척도로 부상하며 글로벌 패권 지형도를 재편하고 있다. 스탠퍼드대학교 인간중심 AI 연구소(HAI)가 21일(현지 시각) 발표한 '글로벌 AI 바이브런시 툴 2024' 보고서는 36개국의 AI 생태계를 42개 지표로 분석하며, 국제 질서의 새로운 변화를 포착했다.
미국의 AI 패권은 압도적이다. 2023년 AI 분야 민간 투자액 672억 달러는 2위 중국(78억 달러)의 8배를 웃돈다. 구글의 제미나이(Gemini), 오픈AI의 GPT-4, 메타의 라마(LLaMA) 등 혁신적 AI 모델들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머신러닝 모델 개발에서도 미국(61건)은 중국(15건)을 압도했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스타트업 생태계와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 풀은 미국의 AI 주도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중국은 차별화된 전략으로 추격전을 펼치고 있다. AI 특허 출원 수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으며, 바이두의 어니(ERNIE), 알리바바의 통이(Tongyi) 등 자체 AI 모델 개발에도 성공했다. 14억 인구의 방대한 데이터와 정부의 전폭적 지원은 중국만의 강점이다. 특히 안면인식, 감시기술 등 특화 분야에서는 이미 미국을 앞서고 있다는 평가다.
AI 경쟁의 다극화도 뚜렷해지고 있다. 영국은 구글 딥마인드를 보유한 강점을 바탕으로 2023년 AI 안전 정상회의를 주도하며 규범 형성을 선도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첨단 AI 연구소 설립과 글로벌 인재 영입에 10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며 중동의 AI 허브로 도약하고 있다. 인도는 방대한 IT 인력을 무기로,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연합(EU)의 AI 규제 프레임워크를 주도하며 각자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도전도 주목된다. 종합 7위는 의미 있는 성과지만, 질적 도약을 위한 과제도 분명히 있다. 삼성전자의 AI 반도체 개발(5년간 47조원 투자),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카카오의 KoGPT 등 기업들의 혁신은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도 2024년 AI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수준의 AI 유니콘 기업 부재와 전문 인재 확보난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AI 발전이 가속화되며 새로운 도전 과제도 대두된다. 생성형 AI의 확산은 저작권, 데이터 프라이버시, 윤리적 딜레마, 일자리 대체 등 복합적 과제를 제기한다. 바네사 팔리 HAI 리서치 책임자는 "기술 혁신과 윤리적 규범의 조화가 AI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단순한 기술력을 넘어 종합적 역량이 관건이다. 막대한 투자 여력, 우수 인재 확보, 혁신적 스타트업 생태계, 윤리적 규범 정립이 모두 필요하다. 각국은 자국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차별화 전략을 추구하면서도 AI 기술의 올바른 발전을 위한 국제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AI가 열어갈 새로운 시대의 승자는 이러한 복합적 과제를 가장 슬기롭게 해결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