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승자를 가릴 임시주주총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한 영풍·MBK파트너스가 우위를 점한 가운데 현 경영진인 최윤범 회장 측이 이사회 이사 수 19명 제한 등을 임시주총 안건으로 확정하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모습이다. 외국인 투자 의혹 등 MBK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정부에서 MBK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한 치 앞을 모르는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 임시주총은 2025년 1월 23일 열린다. 9월 13일 영풍 측이 고려아연 공개 매수에 나서겠다고 밝히며 본격화한 경영권 분쟁이 1차 분수령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이날 기준 지분 경쟁에서 앞선 곳은 영풍 측이다. 최근까지 장내 매수를 통해 지분을 늘려온 영풍 측은 고려아연 지분 46.71%(자사주 제외 의결권 지분 기준)를 확보했다. 최 회장 측은 우호 지분을 포함하면 약 34%, 이를 제외하면 약 20%다.
임시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신주 배정 등의 권리를 행사할 주주를 정하기 위한 주주명부 폐쇄는 20일 이뤄졌다. 단순히 확보한 지분만 본다면 영풍 측이 과반에 가까운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영풍 측이 신임이사 14명을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켜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는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사회 과반 장악을 통한 경영권 확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업계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아직 한 치 앞을 모르는 싸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최 회장 측이 이사회 이사 수 최대 19명 제한,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임시주총 안건으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모두 영풍 측 경영권 확보 계획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안건들이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시 1주당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각 주주에게 부여하는 제도다. 2명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를 보유한 주주는 2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특정 인물에게 2표를 몰아줄 수도 있다. 영풍 측이 제안한 이사들이 최대로 선임이 되더라도 과반을 차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MBK를 둘러싼 여러 논란들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고려아연으로서는 유리하다. 경영권 분쟁 초반 기술 유출 의혹에 이어 최근에는 외국인 투자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MBK는 국내 법인이지만, 김병주 회장은 미국 국적을 가졌기 때문이다. MBK가 외국인으로 인정될 경우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고려아연을 인수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이에 대해 MBK는 "MBK파트너스는 국내 법인이고 내국인인 윤종하 부회장, 김광일 부회장이 의결권 기준으로 공동 최다출자자"라며 "김 회장은 20% 미만의 지분을 가진 4대 출자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비밀유지계약 관련 의혹도 있다. 현재 고려아연 측은 이와 관련 조사를 위한 진정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상황이다.
정부가 MBK의 고려아연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MBK에는 부담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특정 산업은 20~30년 정도 길게 보고 해야 하는데 실제로 5~10년 안에 사업을 정리해야 하는 금융자본이 우리 산업자본을 지배하게 됐을 때 분리 매각 등으로 중장기적으로 주주 가치 훼손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하며 MBK의 고려아연 인수 추진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에릭 스왈웰 미국 하원의원도 미 국무부에 공식 서한을 보내 고려아연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자칫 MBK가 고려아연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이에 따른 기술 유출 등을 우려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영 실적 등 객관적인 수치만 보더라도 누구에게 경영권을 맡기는 게 나을지는 답이 이미 나와 있다"고 말했다.
김정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h13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