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매파적’ 금리 인하 이후 19일(현지시각)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화가 두드러진 강세 흐름을 보이면서 자국 통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한 신흥국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차기 행정부에서 예상되는 감세 및 관세 인상 정책 등으로 인플레이션 위험이 고조된 가운데 연준이 내년 금리 인하 속도 조절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자 달러 매수세가 한층 강화됐다.
지난해와 올해 초까지 시장을 휩쓸었던 화두인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에 시장이 다시 움찔하면서 채권 시장에서는 미국 국채 수익률이 급등했다.
기준물인 10년물 미국 국채 수익률은 4.5%를 돌파하며 7개월 만에 최고치로 상승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국채 수익률도 급등하면서 수익률 곡선 전반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외환 시장에서는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지수가 2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화는 한국 원화 등 신흥국 통화에 대해 특히 초강세 흐름을 보였다. 이날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1453원대로 떨어지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이후 15년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한국 원화는 올해 달러 대비 12% 넘게 절하되며 아시아 신흥국 통화 중에서도 최약체 흐름을 보였다.
이날 인도 루피화는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고,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4개월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신흥국 통화지수도 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가 신흥시장의 통화 가치 및 자본 흐름에 악영향을 미쳐 해당국의 통화 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 압력 증대 및 시장 변동성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날 한국을 비롯해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주요 신흥국 외환 당국은 자국 통화 방어를 위해 강력한 구두 개입과 달러 매도를 병행했다.
한국 외환당국은 또한 국민연금공단과의 외환스와프(FX Swap) 거래 한도를 기존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히는 등 시장 안정을 위한 수급 조절에도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브라질 헤알화도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고 중앙은행이 달러를 내다 판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와 태국 중앙은행은 과도한 변동성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HSBC의 프레드 노이먼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에 “더 매파적인 연준이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손을 묶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아시아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외환 개입이 연준의 매파적 성향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지의 통화정책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삭소의 차루 차나나 수석 투자 전략가는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자국 통화 절하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지만, 단기적으로 이를 완전히 되돌릴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고수익 아시아 통화가 캐리 트레이드로 어느 정도 지지를 받았지만, 현재 높은 변동성은 이 전략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