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의 양대 산맥 독일과 프랑스가 나란히 침체 조짐을 보이면서 유럽 전역에 경제 위기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ING 은행이 21일 발표한 경제분석 보고서는 프랑스 경제가 심각한 하강국면에 진입했음을 경고하며,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이미 취약해진 유럽 경제의 새로운 위기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 GDP의 17%를 차지하는 프랑스의 11월 기업환경지수는 96으로 전월 대비 1포인트 하락하며 장기 평균을 하회했다. 특히 서비스업, 도소매업, 건설업 등 주요 산업 전반에 걸친 기업심리 위축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올림픽 특수로 3분기에 0.4% 성장했던 GDP는 4분기에는 0.1% 역성장이 예상되며, 2025년 성장률은 2024년 1.1%에서 0.6%로 급격히 둔화될 전망이다.
2025년에는 기업 투자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크며, 가계 소비 역시 실망스러운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인플레이션 급락으로 가계 구매력이 일시적으로 개선되었으나, 향후 노동시장 약화와 실업 우려 증가로 인해 가계 저축률이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프랑스 정부의 공공지출 삭감과 세금 인상을 포함한 긴축 재정정책은 내수 위축을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여기에 주요 무역 상대국의 경기 둔화와 관세 인상 가능성까지 겹치며 수출 여건도 악화일로를 걸을 것으로 보인다.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독일과 프랑스의 동반 침체 가능성이다. 이미 기술적 침체에 진입한 독일과 함께 EU의 양대 축인 프랑스의 경기하강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EU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될 수 있다. 특히 연간 8000억 유로 규모의 수입시장을 보유한 프랑스의 내수 부진은 역내 교역 위축으로 이어져 EU 전체의 경기하강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2024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하면서, 대서양 동맹의 균열과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인한 교역환경 악화가 우려된다. 특히 트럼프의 NATO 지원 축소 가능성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맞물려 유럽의 안보·경제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경기침체를 넘어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과 글로벌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러한 유럽의 복합 위기는 글로벌 경제 질서 재편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EU의 경제력 약화는 미중 경쟁 구도에서 유럽의 입지를 좁히고, 인도-태평양 지역으로의 글로벌 경제 중심 이동을 가속화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게 기회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한국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전략적 포지셔닝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EU의 경제력 약화로 인한 글로벌 밸류체인 재편 과정에서 한국은 첨단산업 분야의 새로운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EU와 미국이 추진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전략 속에서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핵심 산업에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다. 이미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이들 산업에서 유럽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확대하고, 기술 협력을 심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EU의 경기침체가 단기적으로는 수출 감소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 관리도 중요하다. 신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을 활용한 시장 다변화와 함께, 내수시장 활성화를 통한 경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결국 EU의 위기는 글로벌 경제 질서의 대전환을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새로운 경제 질서에서 핵심적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종합적인 국가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