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비롯한 조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폐기하면 중국이 전기차, 태양광 등 관련 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지배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존스 홉킨스대 연구팀 조사에서 기후변화 관련 법을 폐기하면 미국이 800억 달러(약 112조 원) 가량의 투자 유치 기회를 잃게 되고, 중국 등 다른 나라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나타났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WSJ은 “트럼프 당선인이 관련 산업 분야에서 발을 빼면 중국의 선도적인 지위가 더욱 강화돼 중국을 통제하기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비야디(BYD) 등 중국산 전기차를 비롯해 중국산 스마트폰이나 태양광 패널 사용을 점점 더 늘리고 있어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려다 오히려 고립될 수 있다.
이 신문은 “미국이 청정에너지 분야 기업들이 직면한 도전은 미국에 국내 공급망을 구축하는 초기 단계에 있다는 점이고,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 관련 장비 가격이 치솟을 것”이라고 전했다. WSJ은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는 자본 집약적이어서 대출 비용 부담이 크다는 점이 또 하나의 제약 요인”이라고 짚었다.
미국에서 다수의 전문가는 트럼프 당선인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IRA를 전면 폐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이 법에 따라 다수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연방과 지방 의회의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을 지지하고 있다고 이 매체가 강조했다.
그렇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전기차 또는 연안 풍력 발전 프로젝트 등과 관련해 기업과 소비자가 세금 공제 혜택을 쉽게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정부 보조금이나 대출금 지급을 중단함으로써 관련 기업에 불확실성을 조성할 수 있다고 WSJ이 지적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정부가 트럼프 당선인 정부가 출범해도 IRA 시행을 중단하지 못하도록 임기 내 관련법 집행을 서두르고 있다. 알리 자이디 백악관 국가 기후 고문이 최근 미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와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공화당이 바이든의 기후변화 법률을 되돌려 놓기를 희망하지만, 이미 청정에너지 전환 정책의 모멘텀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자이디 고문은 바이든 정부가 향후 몇 개월 동안 이 법 시행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폴리티코는 바이든 정부가 IRA와 반도체 지원 및 과학법(칩스법)에 따라 수천억 달러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왔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아직 집행하지 않은 도로·교량·댐 등의 사업으로 전용하겠다고 밝혔었다.
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등을 없애려면 의회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행정명령을 통해 지급 요건을 더 까다롭게 바꿀 수 있다.
중국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전에도 이미 글로벌 핵심 기술 분야의 선도 국가로 부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블룸버그 산하 블룸버그인텔리전스·블룸버그이코노믹스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13개 핵심 기술 영역 중 전기차·리튬배터리, 무인항공기(UAV), 태양광 패널, 그래핀(차세대 나노 신소재의 일종), 고속철 등 5개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중국이 선두는 아니지만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된 분야로는 LNG 수송선, 제약, 대형 트랙터, 공작기계, 로봇,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7개였고, 세계 수준에 뒤진 분야는 상업용 항공기 1개에 불과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