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가상화폐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친비트코인 대통령'을 자처하는 트럼프의 당선에 힘입어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3년 만에 3조 달러를 돌파했다.
비트코인 선물과 옵션 시장에서는 연말까지 비트코인 가격이 10만 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베팅이 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갈등, 미·중 무역 갈등 등 첩첩산중의 현안에 직면한 상황에서 가상화폐 정책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11일(미국 동부시간 기준) 미국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24시간 전보다 11.47% 급등한 8만9642 달러(약 1억2555만원)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8만9000 달러 선을 넘어섰다.
비트코인 가격은 대선 직전 6만8000 달러대에서 횡보하다가 트럼프 당선 이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대선 다음 날인 6일 7만 달러, 10일 8만 달러를 차례로 돌파한 데 이어 이날 9만 달러에 육박하며 수직 상승했다.
이더리움, 솔라나 등 다른 주요 가상화폐들도 동반 상승했다. 시가총액 2위 이더리움은 6.12%, 솔라나는 5.13% 각각 상승했다. 특히 트럼프의 선거운동을 도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지하는 도지코인은 20.19% 폭등하며 눈길을 끌었다.
가상화폐 데이터 제공업체 코인겟코에 따르면 전 세계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3조 달러(약 4203조 원)를 돌파했다. 이는 지난 2021년 11월 초 이후 3년 만이다.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미 대선일인 지난 5일 이후 약 25% 급등했다.
비트코인 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비트코인 현물 ETF의 총운용자산 규모가 금 현물 ETF를 넘어섰다.
팩트세트 데이터에 따르면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운용하는 비트코인 현물 ETF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IBIT)의 총운용자산은 지난 8일 기준 약 343억 달러(약 48조 원)로, 금 ETF '아이셰어즈 골드 트러스트'(IAU)의 330억 달러(약 46조2000억 원)를 웃돌았다.
지난 한 주 동안 IBIT에는 약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지난 1월 ETF 출시 이후 지금까지 순유입된 자금은 270억 달러(약 37조8000억 원)에 달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1월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을 승인했고, 같은 달 11일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가 뉴욕증시에서 거래를 시작했다.
가상화폐 시장의 뜨거운 분위기와는 달리, 트럼프 당선인이 가상화폐 정책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갈등이 지속되고 중국과의 무역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가상화폐는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행정부의 가상화폐 규제 완화 논의가 SEC 등 금융규제 기관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가상화폐에 친화적인 인사들을 금융 규제 요직에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선 작업은 아직 초기 단계이고 후보자 명단도 유동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유세 기간 동안 가상화폐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지난 7월에는 "미국을 지구의 가상화폐 수도이자 세계의 비트코인 슈퍼파워로 만들겠다"며 가상화폐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또한 "미국 정부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100% 전량 보유하는 것이 내 행정부의 정책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며 연방정부가 보유한 21만 개의 비트코인을 언급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비트코인 대통령 자문위원회를 설치하고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특히 가상자산에 대한 강경한 규제로 비판받아온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을 해임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트럼프 당선인의 친가상화폐 정책 기조가 현실화될 경우 가상화폐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띌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직면한 여러 과제들을 고려할 때 가상화폐 정책이 얼마나 속도감 있게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이태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j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