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정가와 외교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파격적인 인선에 움찔하고 있다. 경력이나 전문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충성심으로 무장한 채 자기 말을 무조건 떠받드는 왕당파 친위대를 그가 구축해 나가고 있다.
외교·안보 진용은 거의 갖춰졌다.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국무장관으로 낙점을 받았다. 국방부 장관에는 폭스뉴스 앵커 피트 헤그세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에는 존 랫클리프 전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내정했다. 또 국가정보국 국장에는 털시 개버드 전 하원의원이 발탁됐다. 유엔 주재 대사로는 엘리스 스터파닉 하원의원이 선택받았다.
트럼프 당선인이 극우 성향의 맷 게이츠 하원의원을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하자 워싱턴 정가는 패닉에 빠졌다. 게이츠는 공화당 내 극우 성향 모임인 ‘프리덤코커스’의 핵심 멤버다. 그는 지난해에 연방정부 예산안을 놓고 민주당과 타협했다는 이유로 케빈 매카시(공화당) 하원의장 해임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가 하원의원이 되기 전 변호사로 잠깐 일한 게 법무 관련 경험의 전부다.
게이츠 내정자는 2008년 음주 운전으로 체포됐고, 2017년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는 현재 하원 윤리위원회로부터 불법 약물 사용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게이츠를 선택한 이유는 법무부를 개조하기 위해서다. 그는 게이츠 지명 사실을 공개하면서 “사법 시스템의 무기화를 종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슈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메릭 갈런드 현 법무장관이 임명한 특별검사에 의해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와 기밀자료 유출·보관 혐의 등으로 형사 기소를 당했다. 그가 이제 그런 법무부를 상대로 대대적인 보복에 나섰다.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는 예비역 육군 소령 출신으로 군사 분야 정책 경험이 전혀 없다. 미군 수뇌부와 예비역 장성 등은 헤그세스의 등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그는 군이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며 자기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해 왔다. 그러니 소령 출신을 수장으로 모시면서 한번 당해보라는 메시지다.
개버드 국가정보국장 발탁도 마찬가지다. 그는 정보기관 근무 경력이 없고, ‘친러시아·친시리아’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인물이다. 그는 올해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민주당 출신 정치인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외교·안보와 법무부 등 핵심 요직에 ‘문외한’을 앉히는 목적은 ‘파괴’와 ‘보복’이다. 그는 정부 곳곳에 좌파 성향으로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기득권 집단인 ‘딥스테이트(deep state)’가 포진해 있다고 믿고 있다. 이들을 연방정부에서 축출하고, 정부 조직도 최소한으로 슬림화하려는 것이다. 트럼프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발탁하고, 관료주의 해체, 규제 철폐, 지출 삭감 임무를 맡긴 것도 기존 정부 조직 해체 구상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정치권이나 언론의 ‘부적격’, ‘무자격’ 인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전통이나 관행을 따르다가 미국 행정부가 관료주의의 깊은 늪에 빠졌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유권자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그가 이끄는 공화당은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을 차지했다. 이제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트럼프 당선인이 기존 질서의 해체에 나섰다. 대외 정책도 마찬가지다. 미국 우선주의에 방해가 되면 동맹관계든, 공급망이든 다 깨려고 한다. 그는 이것이 ‘국민의 명령’이라고 우긴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