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관세 맨’을 자처한다. 집권하면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에는 60% 이상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그는 또 멕시코산 자동차에는 2000% 관세를 때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가 미국·멕시코·캐나다(USMCA) 자유무역 협정을 이용해 멕시코에서 만든 전기차를 미국으로 수출하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하겠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자신의 초강경 대외 무역 정책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자 신바람이 났다. 트럼프는 15일(현지 시각) 일리노이 시카고에서 열린 '시카고 이코노믹 클럽' 대담에서 “내게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관세이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라고 말했다. 그는 "관세를 올리면 기업이 미국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했다. 그는 집권하면 멕시코산 수입차에 100%, 200%, 20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해리스는 트럼프의 보편 관세가 ‘전 국민 매상세’, ‘트럼프 매상세’, ‘트럼프 테킬라 세금’이라고 반박한다. 관세를 올리면 수입품 가격이 올라 미국 소비자가 그 부담을 떠안으니 매상세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해리스는 관세가 선거 쟁점이 되지 않도록 ‘로키(low key)’ 자세를 취한다. 해리스는 관세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미국 유권자 다수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대선의 승패가 갈릴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유권자들이 트럼프의 관세 공약에 환호한다.
로이터와 입소스가 지난달 중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6%가 보편 관세와 대중 추가 관세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블룸버그와 모닝컨설트가 지난 9월에 실시한 조사에서도 경합주 유권자의 다수가 트럼프의 보편 관세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는 자국 산업 보호 장치다. 값싼 수입품 범람으로 미국의 공장이 문을 닫아 일자리를 잃은 러스트 벨트 노동자 계층 유권자는 고율 관세로 수입품 범람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본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철강 노조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US스틸은 이번 대선의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다. 트럼프뿐 아니라 해리스도 US스틸 매각에 반대했고, 조 바이든 정부가 최종 승인을 대선 이후로 미뤘다.
미국 주요 언론과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몰고 올 파장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애덤 포센 소장은 투자가 감소하고, 수출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며, 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 비중이 작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초당파 비영리기구인 '책임 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는 20% 보편적 관세가 10년간 4조 달러 세금 인상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는 “가격 상승, 주식시장 타격, 세계 각국과의 경제적 불화를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대외 무역 정책은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의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관세 위협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쥐고 있다. 그것은 1977년 제정된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이다. IEEPA는 미국의 안보·외교·경제에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이 발생하면 대통령이 의회의 동의 없이 특정 국가에 경제 제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초박빙 양상이다. 이런 때일수록 특정 유권자를 겨냥한 정책이나 공약이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 트럼프가 관세에 꽂혀 있어 한국산 수입품에도 10~20% 관세가 붙는 일이 곧 현실이 될 수 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