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로 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자본 유출과 인플레이션 악화 등 다중고에 시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 시각) “아시아 국가들이 트럼프 당선인의 수입품에 대한 관세 위협에만 노출돼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달러 강세로 인플레이션이 올라 아시아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골머리를 앓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또 트럼프 당선인과 무역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WSJ가 전했다.
트럼프의 당선 이후 달러화는 지속적인 강세를 보인다. 그가 공약한 대규모 관세 부과, 감세, 이민자 추방 등이 이뤄지면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이 올라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 미국의 금리가 높으면 투자금이 미국으로 몰리고, 다른 나라 화폐 가치가 하락한다. 이때 금리 인하 사이클에 들어간 아시아 국가 중앙은행들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을 비롯한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에는 60%의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약했다. 그가 중국산 제품에 이런 관세율을 적용하면 중국과 밀접한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이 '부차적 피해(collateral damage)'를 입게 된다고 WSJ가 짚었다.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의 대미 수출이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아시아 국가들의 대미 수출 비중이 2018년 10월에 11.7%였으나 올해 10월에는 14.7%로 증가했다.
달러화 대비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 이들 국가의 수출 경쟁력이 강화되고, 이에 따라 트럼프 당선인 정부가 부과하는 관세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아시아 국가에서 대규모 자본 유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중국에서 부동산 시장 붕괴, 경제 성장 둔화 등으로 심각한 자본 유출이 있을 수 있다고 WSJ가 분석했다.
트럼프 당선인 집권 1기 당시인 2018~2019년 미·중 무역 전쟁으로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가 10%가량 하락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이번에는 집권 1기보다 더 광범위하게 중국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려고 한다. 이때 위안화 가치는 집권 1기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하락할 수 있다.
달러화 대비 아시아 국가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자본 유출과 동시에 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진다. 아시아 국가들이 에너지와 식품 등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물가가 치솟을 수 있다. 이때 아시아 국가 중앙은행은 물가 불안을 우려해 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양하기 어렵게 된다.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 국가들은 내년에도 지속해서 금리를 내릴 계획이다. 여러 아시아 국가가 현재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어 자국 화폐 가치가 너무 급하게 떨어지면 외환시장에 개입할 여력이 있다. 그렇지만 이때에도 미국과의 금리 차이 등을 이유로 아시아 지역에서 자본 유출이 심화할 수 있다. JP모건체이스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이후 달러 강세 기간에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주가는 평균 13% 하락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