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달러 환율은 지난 5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압승을 거둔 데다 공화당이 의회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는, 이른바 ‘레드 스윕(공화당 싹쓸이)’에 성공한 뒤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일(현지시각) 뉴욕 시장에서 유로·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0.56% 하락한 1.0536달러에 거래됐다. 지난 5일 대선 결과 확정 이전 달러 대비 1.09달러대에서 거래된 유로화는 최근 2주 동안 3% 넘게 하락했다.
유로화는 지난 14일 거래에서는 2023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1.05달러를 내주며 1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관세 불확실성
모든 수입품에 10%의 보편 관세와 중국산 제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의 구상과 감세, 이민 제한 정책 공약 등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달러 강세를 견인하고 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제임스 라일리 수석 시장 이코노미스트는 지난주 투자자 노트에 "트럼프의 승리 이후 유로화가 다른 통화보다 더 큰 타격을 입었고 이러한 상황이 곧 개선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내년 말까지 유로화가 달러 대비 등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라일리는 연준이 금리 인하 속도를 더 늦추면서 달러 가치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는 데 반해 유럽중앙은행(ECB)은 수출 둔화에 따른 경제 타격으로 더 완화하는 통화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많은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관세가 합법적으로 시행될 수 있는지, 단순한 협상 도구로 사용될지 혹은 반영구로 유지될지, 특정 국가나 상품이 면제될지 여부 등이 모두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도이체방크의 조지 사라벨로스 외환 리서치 글로벌 책임자는 정책 불확실성이 높다면서 "핵심 요인은 정책 변화의 규모와 속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의 정책이 유럽이나 중국에서 상쇄할 만한 정책 대응 없이 전면적이고 신속하게 시행된다면 유로화가 1유로=1달러의 등가를 깨고 0.95달러 또는 그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투자자 메모에서 “이러한 오버슈팅(일시 폭락)은 교역 가중 달러 가치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 이코노미스트들의 모델링에 따르면, 미국이 유럽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이에 따른 보복 조치가 이뤄질 경우 유로화가 달러 대비 등가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2025년 외환 전망에서 트럼프의 관세와 재정 개혁 전망으로 인해 달러화가 ”더 오랫동안 강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은행은 글로벌 무역 불확실성에 대한 유럽연합의 취약성, Fed가 금리 인하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동안 ECB가 금리를 계속 인하하는 등의 요인을 고려해 달러 강세 장기화를 전망했다.
지정학 위험 고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 1000일째를 맞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점도 유로화에는 부담 요인이다. 이번 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사실상 핵 대응에 나설 것을 경고하자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며 유로화의 하락 압력이 가중됐다.
유로화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해인 2022년 하반기 달러화에 대해 마지막으로 1달러 미만까지 하락했다. 당시 경기 침체 우려와 전쟁 변수, 에너지 위기가 유로존을 휩쓴 가운데 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가세하면서 유로화의 가파른 하락을 견인했다.
라보뱅크의 제인 폴리 외환 전략 책임자는 CNBC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긴장이 계속 고조된다면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며 유로·달러 환율의 하락이 가속화할 것"이라면서 "유로화가 달러 대비 등가 아래로 하락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