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직후 단행할 대규모 불법 이민자 추방이 이뤄지면 미국 노동 시장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쳐 심대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CNN은 11일(현지 시각) 트럼프 당선인 정부가 불법 체류 외국인을 몰아내고, 합법 이민도 대폭 규제하면 다수의 미국인과 기업이 재정적인 부담을 떠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불법 체류 외국인은 지금까지 노동 시장을 떠받치고,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으며, 연방정부의 세수 확보에 도움을 주었다고 이 매체가 강조했다. 초당적으로 운영되는 미 의회예산국(CBO) 분석에 따르면 미국이 현재의 이민정책을 유지하면 이들 외국인 노동자로 인해 국내총생산(GDP)이 매년 0.2%씩 향후 10년간 늘어난다. 오는 2034년까지 이들의 기여로 GDP가 2%포인트 올라가게 된다.
이는 곧 트럼프 당선인이 불법 체류 외국인을 추방하면 미국 경제는 그만큼 성장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CNN은 현재 미국에 불법 체류 외국인이 1100만 명가량 거주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들의 범죄 행위나 그 기록을 문제 삼고 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범죄 경력 외국인 불법 이민자는 120만 명가량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전체의 8%에 불과한 수치다.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면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른다. 기업이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노동자를 구하려면 인건비 부담이 그만큼 증가하고, 생산 비용이 올라가면 이를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에 소비자의 부담이 커진다.
특히 불법 이민자의 노동력 의존도가 높은 농업, 건설업, 서비스업이 심대한 타격을 입는다. 뉴햄프셔 대학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 정부가 대규모로 불법 체류 외국인을 추방하면 인플레이션이 0.5%포인트 정도 올라간다.
미국 내 일자리도 줄어든다. 불법 이민자 추방과 신규 이민 규제로 인구가 감소하면 소비가 줄고, 노동 시장이 타격을 입는다. 이때 기업은 인건비 증가를 우려해 고용을 줄인다. 소비가 감소하면 기업은 해고를 늘린다.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는 2025년에 이민자 숫자가 순감소를 기록하면 1개월에 평균 10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인 노동자의 임금도 줄어든다. 기업이 외국인 대신 내국인을 고용하면서 인건비 증가를 우려해 임금을 깎으려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뉴햄프셔 대학 조사에서 2008~2015년 45만4000명가량의 불법 이민자가 추방됐고, 이 기간에 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0.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세수도 줄어들고, 사회보장 재정에도 손실이 발생한다. 미국이민위원회(American Immigration Council)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불법 체류 외국인이 미국 세수에 468억 달러(약 65조5600억원)를 기여하고, 사회보장연금 재원에 226억 달러, 노인의료보장 체제인 메디케어에 57억 달러를 기여했다. 불법 체류 외국인이 지방정부의 세수에도 293억 달러를 보탠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외국인을 추방하는 데는 비용이 든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지난 2016년에 이들 외국인을 체포·감금한 뒤 추방 절차를 끝낼 때까지 1인당 평균 1만900달러가 들었다고 밝혔다. 이 비용이 최근에는 더 늘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이민세관단속국 국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톰 호먼이 '국경 차르(border czar)'로 2기 행정부에 합류할 것이라고 전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이 '국경 차르' 인선을 조기에 발표함으로써 그가 취임 직후 불법 이민자 추방에 착수할 것임을 예고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첫날 가장 먼저 할 일로 불법 이민자 추방을 꼽았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