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통화정책 정상화 기대로 치솟던 엔화 값이 이시바 총리가 한달만에 식물총리로 전락하면서 곤두박질치고 있다.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연립 여당인 자민·공명당이 다수당 지위를 잃은 데다 국내 정치 불안으로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도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시장에서는 일본 내 정치 혼란에 따른 엔화 약세 압력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어 원·엔 환율(100엔당 원화)이 다시 800원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30일 하나은행이 고시하는 원·엔 재정환율은 이날 오후 3시 30분(286회차) 기준 100엔당 901.5원을 기록했다.
지난 7월 10일 856.19원까지 내렸던 원·엔 환율은 같은 달 31일 BOJ가 정책금리를 0.25%까지 인상을 결정하자 8월 6일 951.9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달 1일 이시바 총리 취임 이후 900원 초반대로 주저 앉으면서 '엔저 현상'이 재연되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 27일 열린 중의원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2009년 이후 처음으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엔저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총선에 실패한 집권 여당이 경기 부양기조를 전환하기 쉽지 않을 뿐더러 내년 7월 참의원 선거까지 오히려 경기부양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 때문이다.
집권 자민당이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BOJ이 당분간 금리를 올리기 어려워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방미 중인 지난 2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금리 인상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일단 시간적인 여유는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당초 이시바 총리 취임으로 부양정책 기조가 전환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총선 결과에 따라 재정부양책이 한층 강화될 여지가 커진 데다 이시바 총리 역시 경기부양차원에서 기존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총선 이후 추가 엔화 약세를 예상하는 이유로 우선 이시바 총리의 조기 퇴진 가능성에 정치적 불확실성을 들 수 있다. 이시바 총리 조기 퇴진 시 BOJ의 긴축기조 전환 속도가 더뎌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엔화 하락으로 엔테크족(엔화+재테크족)의 엔화 매수세가 강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800원대에 엔화를 사들였던 투자자들은 900원 이상으로 오르자 환차익을 보기 위해 매도에 나섰는 데 다시 엔화의 심리적 저점으로 여겨지는 800원대에서 재매수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엔화 약세 압력이 장기간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 내 정치 리스크도 한달 안에 총리 선거를 마무리 한 뒤 완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현재 나타나는 엔화의 하방 압력은 올해 말부터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다.
신윤정 교보증권 연구원은 "현재 엔화 변동성이 커진 것은 분명하지만 대내외 약세 요인들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단기적이며 엔화 자체의 모멘텀이 존재한다점에서 엔화의 절상 기조는 유효하다는 판단이다"면서 "일본 내 정치 리스크도 한달 안에 총리 선거를 마무리 한 뒤 완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현재 나타나는 엔화의 하방 압력은 올해 말부터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