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최고 권력자가 바뀌었다. 일본 의회는 자민당 소속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를 제102대 총리로 선출했다. 기시다 후임으로 이시바가 왔다. 이시바가 총리로 등극하자 도쿄 증시와 외환 시장 등 일본의 금융시장이 한때 크게 요동쳤다. 한동안 잘나갔던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특히 주목을 끈 것은 일본 엔화의 강세였다. 이시바가 자민당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총재로 확정된 직후 일본 엔화의 가치가 돌연 급등세로 돌아섰다.
일본 엔화 가치의 급격한 급등은 그동안 일본 밖으로 나가 있던 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한꺼번에 일본으로 환류하는 이른바 엔 캐리 청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단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글로벌 금융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 뉴욕증시는 물론 달러환율·국채금리·국제유가·금값 그리고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등 가상 암호화폐도 이시바 총리가 몰고 올 수 있는 엔 캐리 청산 쇼크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시바는 중의원에서 12번 내리 당선된 중진이다. 방위성 대신, 농림수산성 대신 그리고 자민당 간사장 등 요직을 역임했다. 그럼에도 자민당의 오랜 실력자 아베 전 총리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당내에서는 비주류로 통했다. 그동안 네 번이나 총재 선거에 나섰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아베 전 총리와의 대결에서는 모두 졌다. 우여곡절 속 무려 5수 끝에 이번에 드디어 2024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국회 의결을 받아 제102대 일본국 내각총리 대신으로 취임한 것이다.
이시바는 일본에서 보기 드문 기독교 신자다. 기독교에서도 개신교, 즉 프로테스탄트다. 일본의 주류 종교는 이른바 신토(神道)다. 그다음은 불교다. 신토와 불교가 전체의 90%를 훌쩍 넘어선다. 개신교 비율은 전체 인구에서 0.37%에 불과하다. 그만큼 독특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외증조부인 가나모리 미치토모는 목사였다. 일본 초기 개신교 교회의 핵심이었다. 외조부와 어머니도 개신교 신자였다. 이시바는 18세 때 일본 기독교단 돗토리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후 50여 년간 개신교 품에서 신앙 생활을 계속해 왔다. 조상 중에는 과거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연루돼 투옥된 사람도 있다.
이시바는 1957년 2월 4일생이다. 일본 정부 건설 담당 관료였던 이시바 지로(石破二郞)의 아들로 태어났다. 도쿄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바로 다음 해인 1958년 4월 돗토리현 지사가 되어 이사하는 바람에 돗토리현에서 주로 성장했다. 이시바의 어머니는 국어 교사였다. 1979년 게이오기주쿠 대학 법학부 법률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쓰이 은행(현재의 미쓰이스미토모 은행)에 입사했다. 이시바는 도쿄도 주오구에 있는 혼마치 지점에서 근무했다.
1981년 아버지 이시바 지로가 세상을 떠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83년 미쓰이 은행에서 퇴직해 다나카 가쿠에이가 수장인 '목요 클럽'의 사무국에서 근무했다. 이후 1986년 제3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돗토리현 전현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나이는 28세였다. 전국 최연소 국회의원이었다. 1992년 미야자와 내각에서 농림수산성 정무차관을 맡았다.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자민당 당적을 유지한 채 무소속 자격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선거에서 자민당은 2위로 추락해 야당으로 전락했다.
이시바는 농업·수산업 분야에 정통해 그 분야를 통해 자신의 기반을 쌓아왔다. 그러면서도 국방에 관심이 많다. 2002년 고이즈미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에 임명되어 입각했다. 방위청 장관 재임 기간 동안 테러 방지를 위한 법률 제정, 육상·항공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2008년 출범한 아소 내각에서 농림수산성 대신에 임명됐다.
이시바는 2012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다. 아베 신조에게 밀려 낙선했다. 2018년에도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섰으나 아베에게 패했다. 총재직을 둘러싸고 아베의 경쟁자이자 최대의 적이 된 것이다. 아베가 주창한 아베노믹스에 대해서도 가장 강력한 비판자였다. 바로 이 점에서 뉴욕증시와 일본 도쿄증시에서는 이시바의 총리 취임은 곧 "아베노믹스의 종말"이라고 보고 있다. 이시바는 경제 성장보다는 재정 재건을 중시하는 재정 재건론자로 꼽힌다. 이시바는 그동안 입법 활동을 하면서 '재정 건전화'를 헌법에 명기할 것을 제안했다. 양적 완화로 돈을 풀고 마이너스 금리로 경기 부양에 올인하던 아베와는 기본 노선이 매우 다르다.
이시바총리가 자민당 총재에 당선된 직후 일본 도쿄증시가 급락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특히 일본도 금리 인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여러 번 해왔다. 이러한 노선에 비추어 이시바가 앞으로 총리로서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에 앞장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일본 엔화 가치가 급등한 것이다. 이시바는 주식과 채권으로 번 돈에 대해서도 별도의 과세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금융투자소득세의 적극적 도입론자인 셈이다. 일본 도쿄증시는 이시바의 금투세 추진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표명하고 있다. 재정 건전화 차원에서 소비세와 법인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러 차례 표명해왔다. 이른바 '이시바노믹스'는 이처럼 기본 골격부터 각종 정책에 이르기까지 아베노믹스와 큰 차이가 난다. 아베노믹스의 반대가 바로 이시바노믹스라고도 할 수 있다.
이시바는 아베노믹스를 평가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아베노믹스는 한마디로 주주와 대기업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서 "국민의 소득이 얼마나 올라갔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일갈했다. 누가 정권을 잡든 앞으로는 국민의 소득을 늘려야 한다. 대기업, 주주, 경영자, 그리고 도쿄(수도권)의 이익이 일반 국민과 중소기업, 지방으로 이어질 것이란 (낙수효과)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는 이시바노믹스의 방향에 관한 질문에는 "지금까지 아베노믹스의 성공은 도쿄, 대기업, 남성을 중심으로 전개돼 왔으나 이제 이런 식의 경제정책은 한계에 다다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잠재력이 있으나 이제껏 중심에 서지 못한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 서비스업, 고령자, 여성, 지방, 그리고 농업·어업·임업 등 1차 산업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이시바노믹스다.
그는 또 재정과 금융 정책 방향과 관련해서는 "아베노믹스로 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진 것은 아니다"라면서 "교육, 청년, 결혼과 육아 등 그간 배분하지 않았던 분야로 재정의 중심을 조금 옮겨가고 싶다"고 밝혔다. 재정 확대 및 금융 완화도 큰 폭의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시바는 총재 선거 기간 중에 “물가를 생각하면 지나친 엔저는 좋지 않다”며 엔고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일본의 메이저 언론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흐름을 지지하고 부자 증세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목소리를 내어온 그간 이시바의 행적에 비추어 이시바노믹스와 아베노믹스는 정면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베노믹스는 가고 이시바노믹스가 왔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