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와 캐피털사 등 여신전문금융사는 90만1000명에 이른다. 두 업권을 합한 저소득 다중 채무자 규모만 무려 149만5000명이다. 2금융권을 통틀어 보면 취약 차주 대출액만 49조1000억 원으로 전체의 10.5%를 차지해 부실 뇌관으로 지목된다.
자영업자들이 이렇게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된 배경은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부진 등도 한몫하지만, 대부분의 영업방식이 대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식 물가 상승으로 소비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매출은 부진하고, 나가야 하는 비용이 쌓이다 보니 빚을 내, 빚을 막고, 만기가 다가오면 빚으로 상환하는 등 구조적인 문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매출이 급감한 음식·숙박·서비스업 중심으로 고금리 대출 의존이 크게 늘었다. 한국은행 보고서도 매출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소득은 정체된 반면, 대출잔액은 계속 증가해온 점을 리스크로 지적한다.
이재명 정부는 최근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정부와 금융권이 재원을 만들어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빚 탕감’을 해주자는 시도다. 빚으로 고통받은 소상공인들의 아픔을 덜어주자는 취지에 공감 못 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구조적인 해결 없이 단순히 빚만 탕감해주는 정책은 부실을 미뤄두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을 정부는 또 잊었다.
현재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보유한 빚은 코로나19 시기 ‘이자 유예·만기 연장’ 등을 통해 미뤄졌던 청구서나 다름없다. 당시에도 결국 부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는데, 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꺼내든 카드가 탕감인 셈이다. 탕감해준다 한들, 다시 빚 수렁에 빠질 것이 자명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운영 구조 자체가 빚에 의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차주에 대한 구제정책이 잘 마련돼 있는 나라도 없다.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를 통해 이자나 원금 등을 감면해주고 있고, 법원을 통해서도 파산이나 회생제도가 잘 운영되고 있다.
신복위 이용자나 법원 개인회생 이용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 역시 우리나라 회생제도가 잘 마련돼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채무조정을 받고도 빚을 갚지 못하는 차주들도 있지만, 상환기한 연장 등 재조정을 통해 충분한 대응이 가능하다.
자영업자 뇌관을 뿌리 뽑기 위해선 일시적인 탕감 정책보다는 빚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조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조만간 채무 족쇄가 풀린 자영업자들은 재차 대출 시장 진입을 시도할 게 뻔하다. 결국 악순환이다. 향후 경기가 어려워지면 또 부채가 누적될 것이고, 그때 또 세금과 금융권 재원을 모아 탕감해줄 것인가.
빚은 갚는 방향으로 가야 건강한 금융 생태계가 유지된다. 땜질 처방만으로는 리스크가 사라지지 않는다. 더욱이 대출 시장이 존재하는 한 리스크는 떠안고 가야 할 숙명이다.
우리나라는 단 한 번도 부실 자영업자에 대한 ‘질서 있는 퇴장’을 시도한 적이 없다. 자영업자 구조조정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며, 지금이야말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적절한 시점이다.
홍석경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