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渡辺) 부인의 변심 "엔캐리 청산" 뉴욕증시 "엔 캐리 청산 공포" 일본은행 기준금리 기습 인상 ...연준 FOMC "인하"

그녀가 온라인 외환거래로 큰돈을 벌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때 일본의 금리가 사실상 제로였다는 사실이다. 일본 경제는 1985년 9월 22일 이른바 플라자 협정 이후 오랫동안 디플레 상태에 빠져 있었다. 마이너스 성장 속에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불황이 이어졌다.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침체 터널이었다. 그 시절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기준금리는 마이너스로 내려갔다. 가계 대출금리는 제로 수준에 수렴했다. 마음만 먹으면 이자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구조였다. 일본 엔화도 계속 떨어지기만 했다. 무이자로 돈을 빌려 그 돈으로 달러와 유로화 등 강세 통화로 바꿔놓으면 가만히 앉아서도 환차익을 누릴 수 있었다. 좀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일본에서 조달한 무이자 자금을 달러 등으로 환전한 다음 뉴욕증시 주식 또는 국채를 사들였다. 주식이나 채권이 오르면 시세 차익에다 환차익까지 누릴 수 있다.
탈세로 고발된 일본 도쿄의 가정주부도 바로 이 같은 방식으로 4억 엔이나 벌어들였던 것이다. 한 가정주부의 탈세 고발 사건은 일본을 넘어 국제사회에도 큰 뉴스가 됐다. 그 여인의 성씨가 와타나베였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그 사건을 보도하면서 와타나베 부인이라는 표현을 처음 썼다.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일본에서 저금리 자금을 들고 국제무대로 나가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통칭 '와타나베 부인'으로 부르게 됐다. 일본에서 가장 많은 성은 사토(佐藤)’다. 그다음이 스즈키(鈴木)·다카하시(高橋)·다나카(田中) 등의 순이다. 와타나베(渡邊)는 5위다. 가장 흔한 성이 아니면서도 와타나베 부인이 엔캐리 트레이드의 대명사가 된 데에는 이코노미스트지의 보도가 기폭제가 됐다. 와타나베 부인의 투자를 뉴욕증시에서는 흔히 엔캐리 트레이드라고 부른다. 엔화를 들고 세계를 누빈다는 점을 강조해 '들고 다닌다'는 뜻의 '캐리'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요즘에는 가정주부나 개인뿐 아니라 일본의 외환투자 전체를 와타나베 투자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일본 초저금리 환경을 활용해 엔화를 빌려 고금리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행위 모두가 엔캐리 트레이드인 셈이다.
요즘 뉴욕증시 등 세계 금융시장은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공포에 떨고 있다. 일본의 금리가 올라가고 엔화가 평가절상 조짐을 보이면서 그동안 글로벌 시장에 나와있던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중 상당수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고 있다. 일본 돈이 한꺼번에 빠질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 금융시장에서는 이미 엔캐리 청산의 발작이 오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가 줄고 있는 것이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자극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일본은 금리를 올리고 있는 데 반해 미국은 금리인하 기조다. 두 나라 금리 방향의 디커플링 추세가 짙어지면 격차가 더 축소돼 '엔화 강세'가 굳어진다. 이는 엔화와 연계된 자금의 이탈을 가속화해 금융시장을 격랑에 빠뜨릴 수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엔캐리 트레이드 수익률 변화와 청산 가능 규모 추정’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엔캐리 자금 잔액은 506조6000억 엔으로 추정된다. 미국 돈으로는 3조4000억 달러, 우리돈으론 4600조 원 내외다. 이 돈이 한꺼번에 일본으로 돌아간다면 그야말로 발작이 일어날 수 있다. 물론 당장에 엔캐리 트레이드가 급격하게 청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일본의 금리정책이나 해외 자산의 투자수익률 등에 따라 엔캐리 트레이드가 생각보다 크게 움직일 수 있다.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참패했다. 이시바 정권이 외면받은 가장 큰 요인은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3%나 올랐다는 점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일본이 금리를 빠르게 올릴 수 있다.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이번 달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는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가 최근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과 관련해 금리인상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우에다 총재는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인터뷰에서 추가 금리인상에 대해 "데이터가 가정한 대로 변해 간다고 하는 의미에서는 가까워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뉴욕증시 트레이더들은 이번 달 BOJ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61% 정도로 보고 있다. 한 달 전의 2배 수준이라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통보한 가운데 달러·엔 환율은 최근 147엔대까지 반등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7~8월과 같이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이슈에 따른 급격한 엔화 강세를 금융시장이 대비해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2024년 엔화 강세가 나타났던 배경을 근거로 들며 올해도 유사한 환경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일본 엔화는 △ 완화적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 매파적인 일본은행(BOJ) △ 미국 경기 우려 확대 등이 맞물리며 강세로 돌아선 바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최근 또 목격되고 있다.
미국 연준은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더라도 9월 이후에는 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신호를 낼 수 있다. 연준이 곧 FOMC에서 완화적인 금리 동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BOJ도 올해 물가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며 금리인상을 시사하고 있다. 올해 1~5월 일본의 신선식품을 제외한 CPI의 전년 대비 평균 상승률은 3.3%다. BOJ의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가 2.2%인 점을 고려했을 때 이번 BOJ 금융정책결정위원회(금정위)에서 물가 전망치가 상향될 수 있다. 선물시장에서는 이미 엔화 강세에 베팅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일본의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가 지난 15일 약 17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한꺼번에 모두 청산하지는 않겠지만 와타나베 부인의 해외 투자 잔고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과 스테이블코인 지니어스법 시행으로 가뜩이나 변수가 많은 시점이다. 엔캐리 청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