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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양적긴축(QT) 중단과 케인스 유동성 함정

[김대호 진단] 양적긴축(QT) 중단과 케인스 유동성 함정/글로벌이코노믹 경제연구소 소장 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진단] 양적긴축(QT) 중단과 케인스 유동성 함정/글로벌이코노믹 경제연구소 소장 전 고려대 교수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는 케인스라는 경제학자를 떠올리게 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흔히 불황의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다. 세계 경제가 대공황의 악순환에 빠져 허덕일 때 ‘새로운 경제학’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데 크게 기여한 천재 경제학자다. 케인스는 1883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이튼 스쿨을 거쳐 케임브리지의 킹스칼리지에서 수학했다. 졸업 후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총독부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대학에 돌아와 금융론을 연구했다. 앨프리드 마셜의 후계자로서 아서 세실 피구와 함께 케임브리지 학파의 쌍벽을 이루었다.
케인스가 경제학자로서 이룬 가장 큰 업적은 기존 경제학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트렸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 이래 오랫동안 당연한 것으로 전해 내려오던 이른바 세이의 법칙을 넘어선 것은 가히 혁명이었다. 세이의 법칙이란 하나의 상품이 만들어지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것이 자신의 가치와 똑같은 크기만큼 다른 상품들을 위한 시장을 제공한다는 이론이다. 판로설(販路說)로 불리기도 한다. 프랑스의 경제학자인 장바티스트 세이가 펼친 주장이다. 오늘날 대다수 경제학 백과사전들은 세이의 법칙을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Supply creates its own demand)”로 요약하고 있다. '일단 만들어만 놓으면 팔린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는 오해다. 실제 의미는 상품을 공급하려면 원료의 수요가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고전학파의 가정에서는 생산이 그만큼의 소득을 동시에 창출하므로 총수요의 일반적이고 지속적인 부족은 생기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라는 말은 세이 본인이 직접 한 말은 아니다. 훗날 케인스가 세이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집약하면서 만든 표현이다. 세이의 주장은 '우리 모두는 본인이 생산한 것을 가지고 남들이 생산한 것을 구매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의 값어치는 우리가 생산한 것의 값어치와 같고 그러므로 생산 능력이 높을수록 수요도 높다'라는 것이었다. 바꿔 말하면 생산 능력이 수요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세이의 법칙은 오랜 세월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절대 변하지 않는, 항상 옳은 당위로 간주돼 왔다. 세이의 법칙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곧 바로 이단으로 간주됐다.

세이의 법칙에 따르면 공급 확대와 생산 능력의 증대가 경제발전의 요체다. 실제로 오랫동안 인류는 확대 팽창의 방법으로 번영을 이루어왔다.
1930년대 대공황이 터지면서 세이의 법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의 경제 공황은 너무 빠른 공급 확대가 수요를 크게 앞지르면서 생겨난 구조적 모순이 도화선이 됐다.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이미 생산한 재화가 제대로 팔려나가지 않음으로써 야기된 모순이었다. 세이의 법칙에 기초를 둔 기존의 고전파 경제학으로서는 수요 부족의 함정에서는 그야말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속수무책이었다. 그 절체절명의 시기에 케인스가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을 발표했다. 케인스는 이 책에서 기존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시장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유효수요이론을 제시했다. 공급보다 수요를 더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케인스의 일반이론은 세이의 법칙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때마침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케인스의 유효수요이론을 대폭 수용한 뉴딜정책을 추진해 공황 탈출에 상당한 성과를 보였다. 케인스 경제학의 유용성이 입증된 것이다. 이때부터 케인스는 불황의 해결사로 불렸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케인스를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7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부동산 버블로부터 야기된 최악의 금융위기다. 부동산 버블로 부동산 가격이 굉장히 높아지자 신용불량자에게 주택담보대출을 막 퍼주다가 발생한 대참사다. 수많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대공황보다 더 심각한 위기였다. 미국은 위기 극복을 위해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낮추었다. 통화량을 대폭 늘려 그 돈으로 부실에 빠진 기업과 금융기관을 지원한 것이다. 문제는 유동성 함정이었다. 기준금리를 0 수준까지 떨어뜨리고 돈을 왕창 풀었음에도 그 돈이 경제 현장에서 제대로 돌지 않아 위기 극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케인스 경제학이 또 한번 소환됐다.

케인스는 일찍이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 이론을 설파한 바 있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통화를 주입해도 이자율을 떨어트리거나 통화정책을 강화할 수 없을 때의 상황을 뜻한다. 유동성 함정은 사람들이 미래의 디플레이션을 예상하거나 총수요가 부족할 때 또는 전쟁 상황에서 주로 발생한다. 일반적인 유동성 함정의 특징은 이자율이 0에 가깝거나 통화공급의 변동이 물가변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케인스 이후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유동성 함정에 대항하기 위한 방안을 찾았다. 돈 파티킨과 로이드 메츨러는 영국의 경제학자 아서 피구의 이름을 딴 피구 효과를 제시했다. 유동성 함정에서는 금리인하 대신 직접 통화량을 살포하자는 구상이었다. 오랜 디플레로 '잃어버린 20년의 늪'에 빠진 일본 중앙은행이 2001년 마이너스 금리 속에서 추가 금리인하 없이 직접 돈을 풀기 시작했다. 전 세계 금융 역사상 피구 모델을 처음 실천에 옮긴 역사적 실험이었다. 경제학계에서는 이를 양적완화(QE)라고 이름을 지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위기에 빠진 미국이 2008년 이를 본떠 양적완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미국은 이때부터 2021년까지 무려 4차례에 걸쳐 QE를 단행했다. 그 바람에 2007년 9000억 달러였던 연준의 대차대조표 잔고가 7조7000억 달러까지 늘었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것이다. 그 돈은 인플레와 통화가치 폭락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다급해진 미국 연준은 2022년부터 양적완화로 풀린 돈을 다시 거둬들이는 이른바 양적긴축(QT)을 시작했다. QT는 연준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를 시장에 다시 내다 팔거나 만기 도래한 국채를 연장 없이 현금으로 상환받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QT가 단행될 때마다 뉴욕증시에서는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발작 현상이 있어왔다.

미국 연준이 2025년 12월로 QT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거나 파는 방식으로 돈을 풀거나 거둬들이는 직접 개입을 2008년 이후 무려 17년 만에 종료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양적완화(QE)로 부풀려진 연준의 대차대조표 잔고가 여전히 과잉으로 흘러넘치고 있는 만큼 통화정책 '비정상의 정상화'에는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 번 무너진 경제를 되살리는 데는 이처럼 엄청난 비용이 든다. 처음부터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지 않도록 사전 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케인스의 유동성 함정이 우리에게 주는 주는 교훈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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