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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스테이블 코인 "뉴욕증시 역대급 유동성 폭탄" …트럼프 달러 패권과 시뇨리지 효과

"지니어스 법"과 시뇨리지(seigniorage) 효과 "지니어스법 곧 하원 통과"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겸 주필 /경제학 박사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겸 주필 /경제학 박사
중세시대 유럽은 영주가 이끌어 갔다. 왕이 없지는 않았으나 일반 서민들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각 지역마다 영주가 있어 그 동네를 이끌어 갔다. 영주는 영지(領地)를 소유한 주인을 말한다. 7세기부터 유럽에서 게르만족의 관습인 종사제(從士制)에 따라 지역의 유력자들이 지역사회 주민을 장악하며 이를 주요 권력기반으로 하여 나타난 호족이 그 근원이다. 왕과 황제 등 군주가 이들을 공식적인 정부 조직의 일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이른바 중세 봉건사회가 성립된다.
유럽은 서로마제국 붕괴 이후 수백 년간 혼돈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프랑크 왕국의 통일로 조금씩 질서를 잡아나갔다. 프랑크 왕국의 통일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힘으로 완전히 정복한 것이 아니라 회유와 포섭을 병행해 굴복시킨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현지 유력자의 권리를 전부 뺏지는 못하고 일종의 계약관계로 존재했다. 이들 대부분이 중세 내내 제후 중 제일 독립성이 높은 세력들인 공작이다. 프랑크 왕국의 중앙 행정력은 높지 않았다. 더구나 프랑크 왕국의 분할상속 전통 탓에 왕의 후계자들이 서로 땅을 갈라 먹는 데에만 몰두하면서 각 지방에 대한 통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사라센과 마자르족 그리고 바이킹 등 외세의 공격도 현지에서 알아서 막아내야만 했다. 중세 영주들의 힘은 갈수록 세졌다.

중세 영주들이 군사를 양성한 경제적 기반은 바로 장원(莊園)이었다. 로마제국 시절의 빌라(Villa) 혹은 라티푼디움(Latifundium)이 장원으로 발전한 것이다. 장원을 소유한 현지 유력자들은 자신의 가솔들을 사병으로 부려서 현지의 방위를 담당하게 했다. 이것이 지방권력으로 이어졌다. 중앙은 그냥 이들에게 현지 관료직을 맡기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겼다. 프랑크 왕국-신성로마제국 시대 동안 행정관 개념으로 파견되었던 백작들 역시 그 지위를 세습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방행정관이던 백작은 해당 지역의 경제적 기반들과 결합해 영주로 발전한다.

중세 초기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중앙이 통제하는 일원적인 제도도 존재하지 않았다. 게르만족의 부족적 관습법, 로마제국의 보편법 그리고 가톨릭 교회에서 행사하는 교회법이 동시에 존재했다. 지역 영주들은 이러한 법들을 통해 자기 영지에서 예속민에 대해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 봉건사회의 특성상 영주의 권리는 지역마다 크게 달랐다. 프랑크 왕국의 법제가 느슨하게 이어진 독일과 왕의 손이 닿은 북 프랑스 그리고 대다수가 자유토지인 상태를 유지한 저지대, 자치도시들이 형성된 이탈리아 북부 등의 영주제도가 많이 달랐다. 그중에서 특히 프랑스 영주들은 화폐 발행권을 일찍부터 활용해 왔다. 돈을 스스로 찍어 그 돈으로 지역의 경제를 통괄하는 것이다.
돈을 찍어내면 화폐의 발행자에게는 엄청난 이득이 발생한다. 화폐를 발행하면 그 화폐의 액면가치에서 실제 발행비용을 뺀 만큼의 이익이 생긴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시뇨리지(seigniorage) 효과라고 한다. 주조차익(鑄造差益) 또는 화폐발권차익이라고도 부른다. 화폐의 발행 과정을 보면 화폐의 액면가에 비해 제조 비용은 훨씬 적게 든다. 그 차액만큼의 이익이 생기는 것이다. 시뇨리지라는 말은 원래 중세 프랑스 지역의 봉건 영주를 칭하는 세뇨르(seignoir)에서 유래했다. 중세시대 프랑스 지역의 영주는 이 시뇨리지 효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중세시대 자신의 성내에서 화폐 주조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을 갖고 있던 봉건 영주들은 금화에 불순물까지 섞어 시뇨리지 효과를 극대화했다. 중세 프랑스 영주가 곧 시뇨리지와 동의어가 된 이유다.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국가는 발권력을 보유한다. 발권력은 시뇨리지 효과를 수반한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낼수록 시뇨리지 효과로 정부에 쌓이는 돈이 늘어난다. 많은 국가들이 재정적자 상황에서 돈을 더 찍어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축통화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그 시뇨리지 효과가 더욱 커진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영국(파운드화)이 기축통화국 역할을 했다. 전쟁으로 영국의 파운드화 준비금이 줄어들면서 기축통화의 패권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오늘날에는 미국만이 기축통화국으로서 국제적 시뇨리지 효과를 누리고 있다. 시뇨리지는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의 실질가치에서 발행비용을 제한 차익이다. 화폐의 액면가에서 화폐 제조비용과 유통비용을 뺀 차익으로, 중앙은행이 갖는 독점적 발권력에 의해 발생한다. 정부의 재원이 되는 시뇨리지의 연간 총액은 ‘유통통화량×시장이자율-(제조비용+유통비용)’으로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작비용 1달러가 소요되는 100달러짜리 지폐를 찍어내면 시뇨리지는 99달러에 이른다. 미국 연준은 1달러의 비용으로 99달러의 이익을 얻게 된다.

이 시뇨리지가 가장 활발한 곳이 바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스테이블코인 육성에 발 벗고 나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전 세계에 대량 유통시킴으로써 시뇨리지 효과를 대폭 늘려보겠다는 심산이다. 그동안의 달러 시뇨리지는 주로 미국과 그 수출입 당사국에 국한됐지만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날 수 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본격적으로 침투하는 나라에서는 그동안 그 나라가 가져왔던 발권 시뇨리지 효과까지도 미국에 몽땅 넘어갈 수 있다.

미국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위해 지니어스 법(Genius Act)까지 만들고 있다. 이미 상원을 통과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100% 고유동성 자산 준비금 △월별 감사 △준비금 재사용 금지 △연방 감독 등을 규정한다. 이는 서클이 자발적으로 시행하던 기준과 일치한다. 지니어스 법은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운영에 대한 규제 체계를 명시해 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규제 체계를 명확히 한 것이 특징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통화감독청(OCC) 등의 연방기관별 규제 해석 및 주정부 차원의 규제 범위 등이 상이한 데서 비롯된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혼란을 정리했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은 가치가 고정된 자산에 연계된 결제용 스테이블코인(payment stablecoin)이다. 지니어스 법에 따라 허용된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은 증권법상 증권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코인은 허가받은 발행자만 발행할 수 있다. 이외의 발행자가 미국 내에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것은 불법이다. 스테이블코인은 1대1의 비율로 미 달러화 혹은 연준 예치금, 단기 국채, 레포(REPO), 머니마켓펀드(MMF) 등의 유동성 자산을 준비금으로 반드시 예치해야 한다. 준비금은 또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그만큼 공신력이 높아질 것이다.
지니어스 법의 보호를 받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다른 나라의 통화주권을 위협할 수도 있다. 거대한 태풍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대응은 안일하기만 하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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