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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MAGA '분노의 경제학'과 조지아 사태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겸 주필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겸 주필 /전 고려대 교수
요즘 미국에서 가장 뜨는 키워드는 단연 MAGA다. MAGA는 'Make America Great Again'의 앞 철자를 딴 약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이다. 줄여서 흔히 MAGA라고 한다. 미국을 USA 대신 아예 MAGA 공화국으로 부르기도 한다.
MAGA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의 전유물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다. 그러나 알고 보면 MAGA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그 기원은 베트남 전쟁의 늪에 빠져 미국 경제가 어려워진 196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MAGA가 워싱턴 정치판에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이다. 당시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선 로널드 레이건의 슬로건이 바로 MAGA였다. 그때 미국은 고물가의 와중에 실업자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른바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일본 경제가 미국을 제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것도 바로 이때였다. 실제로 맨해튼의 초고가 빌딩이 도미노처럼 연이어 일본 자본의 손으로 넘어갔다.

수많은 미국 사람들이 좌절하고 있을 바로 그때 레이건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일으켜 세우겠다는 MAGA 비전을 제시했다. 경제난 속 미국의 유권자들은 MAGA에 그야말로 열광했다. 캘리포니아 시골 배우 출신이었던 정치 신인 레이건은 MAGA를 앞세워 인권 대통령으로 정평이 난 당대 최고의 정치 거물 지미 카터를 꺾고 일약 대통령에 올랐다. 1981년 백악관을 장악한 레이건은 MAGA를 실천에 옮긴다. 법인세를 낮추는 방식으로 기업의 자금 부담을 덜었다. 반도체에 대해 엄청난 관세 폭탄을 때리면서 반도체 주권을 되찾았다. 또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 엔화를 급격하게 평가절상시킴으로써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레이건의 이런 MAGA 실천 플랜을 경제학계에서는 흔히 '레이거노믹스'라 부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에게 패했다. 예상치 못한 충격의 패배였다. 선거 패배 직후 극성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건이 터지면서 정치 위기에 봉착했다. 엡스타인 성추행의혹 사건에도 연루됐다. 트럼프는 그 절체절명의 시기에 '구원투수'로 수지 와일스를 영입했다. 와일스는 1980년 대선에서 레이건 캠프의 MAGA 프로젝트 실무를 담당한 인물이다. 워싱턴 정가의 MAGA 대모인 셈이다. 와일스는 2016년 선거 때도 트럼프 캠프에서 일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MAGA 프로젝트를 가동했었다. 와일스가 MAGA 브랜드를 트럼프 소유의 특허로 등록한 게 바로 이때의 일이다. 와일스는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의 총사령관으로 발탁되면서 MAGA를 아예 전면에 내세웠다. MAGA는 우선 상실감에 빠진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한다. 그런 다음 그 분노를 정치 세력으로 집결시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물론 트럼프가 있다.

MAGA주의자들은 미국 경제가 붕괴한 이유를 해외 기업의 부당한 무역 공세 탓으로 보고 있다. 제조업 붕괴로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미국 내 불법 이민자들이 빼앗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후 일자리 부족과 엄청난 물가고에 신음하는 미국인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성공한 비즈니스맨 출신의 트럼프 MAGA는 메시아의 굿 뉴스인 것이다. MAGA는 결과로는 '신의 한 수'가 됐다. MAGA는 바이든의 민주당과 진보 정치에 불만을 느낀 수많은 미국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동력이 됐다. MAGA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트럼프의 추문 의혹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도 MAGA와 함께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와일스는 MAGA를 단순한 정치 구호를 넘어 망해가는 미국을 함께 구해내자는 혁명의 이데올로기 경지로까지 끌어올렸다.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캠페인을 막후에서 이끈 수지 와일스 공동선대위원장을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트럼프에게 MAGA는 선거 때 잠깐 하다가 팽개치는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다. 트럼프의 지지 기반은 MAGA로 똘똘 뭉쳐져 있다. MAGA가 없는 트럼프 2기는 상상할 수 없다. MAGA는 트럼프의 모든 부정부패 혐의와 도덕 추문 의혹을 잠재울 유일한 무기이기도 하다. MAGA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 재건이다. 해외 투자 유치와 불법 이민자 박멸은 위대한 미국 경제 건설을 위한 핵심 열쇠다. 외국 기업들로 하여금 직접 미국 땅에 들어와 투자하도록 함으로써 미국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나아가 미국 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일본에 5500억 달러, 한국에 3500억 달러의 현금 투자를 요구한 것이 그 대표 예이다. 그러면서 통화 스와프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또 불법 이민자를 추방함으로써 그동안 이들에게 빼앗긴 일자리를 미국인들에게 돌려주자는 것도 MAGA의 핵심 사업이다.

지난 4일(현지시각)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미국 조지아 엘라벨의 현대차 전기차 공장을 급습해 족쇄를 채우기 위해 근로자들을 세워놓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4일(현지시각)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미국 조지아 엘라벨의 현대차 전기차 공장을 급습해 족쇄를 채우기 위해 근로자들을 세워놓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현대차-LG엔솔 조지아 공장에서 수백 명 한국인 직원들을 영장도 없이 무더기로 체포한 것도 따지고 보면 MAGA의 이민자 때리기 정서와 맞닿아 있다. 트럼프는 2기를 출범하면서 1년 내 100만 명의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겠다고 밝혔다. 목표대로 하자면 한 달에 8만3333명씩 쫓아내야 한다. 하루 평균 2777명을 잡아내야만 1년 100만 명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현대차-LG엔솔 건설 현장에서 체포돼 한국으로 돌아온 근로자 중 적지 않은 수가 합법 체류 신분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죄도 없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체포·구금해 놓고도 ICE는 지금 이 시각까지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ICE의 한국인 체포·구금에 대해 할 일을 했다면서 불법 행위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 현대차 조지아 공장의 외국인 근로자 체포·구금은 이민자 추방이라는 MAGA의 이데올로기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외국 기업들로 하여금 미국 현지 투자를 늘리도록 독려하는 것은 MAGA의 중요한 목표다. 그렇다면 현대차 조지아 공장과 같은 외국인 투자 기업이 현지 공장 건설을 더 빨리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합법 체류 신분의 근로자까지 체포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바로 이 대목에서 MAGA의 모순 또는 내부 충돌이 드러난다. 오늘날 미국의 MAGA 세력 중에는 외국 기업 투자 유치파와 이민자 단속파가 섞여 있다. '미국을 위대하게'라는 총론에는 같은 생각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서는 이처럼 큰 차이가 있다. MAGA의 내부 분열이다. 트럼프의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근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상호 모순이 발생하는 이유는 MAGA라는 것이 충분한 검증을 거쳐 과학으로 증명된 완성된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MAGA는 대선 과정에서 그저 한 표라도 더 얻고 보자는 얄팍한 상술일 뿐이다. '분노의 경제학'은 또 다른 분노의 희생자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우방국들의 가슴에는 피멍이 들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주필 겸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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