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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악마의 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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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인류의 기술 문명을 일으킨 현대 과학의 아버지로는 아이작 뉴턴이 우선 손꼽힌다. 뉴턴은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는 스스로 끌어당기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뉴턴에 따르면 질량이 있는 두 물체 사이의 중력은 각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또 두 물체의 떨어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에 '관성의 법칙', '힘과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결합해 행성의 타원 운동은 물론 지상계와 천상계의 여러 모든 역학 구조를 수학적으로 설명했다. 오늘날 우리가 우주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은 뉴턴 덕이다. 뉴턴은 또 빛과 색깔에 대한 비밀도 모두 풀었다. 코페르니쿠스로부터 1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변화들은 뉴턴이라는 하나의 수렴점을 거쳐 근대 과학이라는 통일된 체계로 태어났다. 그런 면에서 뉴턴은 명실상부한 근대 과학의 아버지인 셈이다.
그 뉴턴이 오늘날 글로벌 화폐 시스템의 뿌리인 금본위제도의 창시자라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뉴턴은 1699년부터 무려 30년 동안 영국의 조폐 장관으로 재직했다. 뉴턴이 돈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화폐 변조와 위조 때문이었다. 당시 유럽 사회는 금화와 은화를 주로 사용했다. 문제는 그 금화와 은화의 테두리를 깎아내 금과 은을 빼가는 사실상 절도 행위가 만연했다는 점이다. 동전의 테두리를 미세하게 깎아내 금속 가루를 모아 이득을 취하고, 깎인 동전은 그대로 시장에서 유통시키는 이런 행위를 경제학의 세계에서는 '동전 깎기(Coin Clipping)'라고 부른다. 도량형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그 시절 누군가 금화와 은화의 테두리를 깎아내 금과 은의 부스러기를 떼어 가도 가려낼 방법이 없었다. 너도나도 테두리 부분을 갉아내다 보니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금화와 은화는 형체가 쭈그러들었다. 잔존 화폐도, 실제 보유가치도 저마다 들쭉날쭉했다. 훼손 정도가 심해져 화폐의 신용도가 뿌리째 흔들릴 정도였다. 이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해 달라고 과학자 뉴턴을 조폐 장관으로 부른 것이다.
뉴턴은 조폐 장관으로 취임한 뒤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기존의 손상된 금화와 은화를 모두 거둬들이고 새 화폐를 찍어냈다. 뉴턴이 새로 찍어낸 금화와 은화의 테두리에는 촘촘한 줄이 새겨져 있었다. 누군가 모서리를 깎아내면 테두리 줄에 그 흔적이 남도록 한 것이다. 과학자의 기술 혁신으로 동전 깎기 범죄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신의 한 수였다. 오늘날의 동전은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줄무늬만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뉴턴의 이 줄무늬는 위조 방지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테두리에 일정한 개수의 톱니를 정교하게 새기는 공정은 비용이 많이 들고 기술적으로도 어려워 아무나 위조할 수 없었다. 손끝의 촉감만으로 동전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오늘날에는 시각장애인에게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당시 영국에서는 금화와 은화의 교환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큰 쟁점이었다. 금화와 은화를 함께 사용하던 시절이었던 만큼 그 교환 비율에 따라 사람마다 희비가 엇갈렸다. 금 보유량이 많았던 측과 은 보유량이 많았던 측 상호 간에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렸다. 수시로 싸움이 일어나 화폐 거래가 마비될 정도였다. 뉴턴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정 교환 비율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금과 은의 매장량과 유통량 그리고 과학기술적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금과 은의 가치를 측정하고 그 가치 비율에 따라 교환 비율을 책정했다. 그런 시도는 그전에도 물론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누가 그 비율을 정할 것인지, 이른바 가치 비율을 정하는 주체의 공정성 시비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뉴턴이라는 존재가 빛을 발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로 평가받던 뉴턴이 과학의 잣대라는 이름으로 정한 교환 비율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금화와 은화의 공정 교환 비율이 바로 이때 처음 정해졌다. 1717년의 일이다.
뉴턴이 처음 정한 영국의 금-은 교환 비율은 1:15.21이었다. 금 1온스를 은 15.21온스와 같은 가격으로 정한 것이다. 이 조치로 인해 금 가격은 온스당 3파운드 17실링 10.5펜스 (£3 17s 10½d)로 확정됐다. 이 가격은 이후 약 200년 동안 영국의 기준 금값으로 유지됐다. 뉴턴이 정한 영국에서의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은 영국을 뺀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많이 달랐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할 때 영국의 법정 교환 비율은 은보다 금을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가치로 쳐주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은화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 돈을 녹여 다른 나라로 빼돌리기 시작했다. 영국보다 더 높은 가치를 쳐주는 나라로 은을 가져가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독일과 프랑스 사람들은 자국의 금화를 녹여 영국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자 그레셤의 법칙은 바로 이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국에서는 은이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 유럽의 금은 영국으로 몰려들었다. 영국은 의도치 않게 금화와 은화를 함께 통용시키던 금-은 복수통화 본위제에서 금본위제로 넘어가는 '역사적 변화'를 겪게 된다.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후인 1816년 화폐법을 제정해 공식적으로 금본위제를 선포한다. 이 법을 통해 파운드화의 가치를 일정량의 금에 고정하며 세계 최초로 법적 금본위제를 채택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금본위제도다. 1821년 파운드화의 금 태환, 즉 화폐를 금으로 바꿔주는 제도를 공식 도입하면서 영국은 전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되었다. 영국과 무역하던 국가들이 하나둘씩 금본위제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금을 지구촌의 중심 통화로 만든 이도 따지고 보면 아이작 뉴턴이다. 금본위제의 글로벌 확산으로 금값은 더 치솟게 된다. 그즈음 신대륙에서 은광이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은은 금에 비해 그 비중이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금본위제는 제1차 세계대전 중 각국이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해 지폐를 남발하면서 중단됐으나 2차 대전 후 브레턴우즈 체제로 다시 살아났다. 1944년 영국 대신 미국이 달러를 금에 고정($35=1온스)하면서 금본위제를 부활시킨 것이다.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하면서 금본위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금의 가치는 여전히 은을 압도하고 있다.
요즈음 은값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025년 연중으로 보면 은값은 무려 180% 올랐다. 금값의 연간 상승률 74%보다 크게 높다. 전 세계적으로 풀린 돈이 주식·채권·비트코인과 금을 거쳐 은도 폭발시키고 있다. 한동안 소외됐던 은이 역사의 무대로 다가오는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31일 현재 금값과 은값의 시장 교환 비율은 1:60.17이다. 300여 년 전 뉴턴이 정했던 영국의 공정 교환 비율인 1:15.21과 비교해 보면 금보다 은이 상대적으로 덜 오른 편이다. 문제는 '악마의 금속'이라는 별명이다. 은은 금보다 시장 규모가 작아 적은 자본으로도 시세 조종이 용이한 편이다. 변동성이 극심해 투자자들을 파멸로 이끄는 경우가 많아 '악마의 금속'이란 별명을 얻은 상태다. 1980년 세계를 흔든 미국 석유 재벌 헌트 형제의 투기 사건이 특히 유명하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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