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지난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2.9% 상승함으로써 3년 4개월 만에 2%대로 내려갔으나 인플레이션 둔화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더 심각한 악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최근 “인플레이션이 2%대로 내려감에 따라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물가와의 싸움이 사실상 끝났다”면서 “이제 전체 경제의 건강 문제가 위협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고금리, 고물가 사태 장기화로 노동 시장 수요가 둔화하고, 소비가 위축될 수 있으며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활동 둔화와 실업률 상승 등이 모두 미국 경제의 건강을 해치는 핵심 요인이고, 미국 유권자들이 현 정부에 비난의 화살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곧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가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고용 지표가 7월에 이어 8월에도 악화한 것으로 나타나면 시장은 연준이 9월 17~18일 개최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 금리를 통상적인 0.25% 포인트가 아니라 0.5% 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기대할 것이라고 폴리티코가 지적했다. 연준이 금리 인하 폭을 올리는 ‘빅 스텝’을 밟으면 이는 실업률 급증과 경기 침체를 막으려는 고강도 처방이어서 미국의 경제 상황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이 이끄는 정부와 민주당은 줄곧 미국 경제가 고물가, 고금리 사태 속에서도 신규 일자리의 지속적인 창출 등으로 순항하고 있다고 강조해 왔다. 연준이 기준 금리를 0.5% 포인트까지 낮춰야 한다면 정부와 여당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해리스 부통령은 최근 노스캐롤라이나 랄리에서 열리는 유세에서 경제 정책 청사진을 제시했다. 뉴욕 타임스(NYT)는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정부의 경제 정책을 대체로 계승하면서 물가 억제와 대기업의 과도한 시장지배력 제어에 더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이번에 경제 정책의 초점을 바이든 대통령이 집중했던 일자리 창출과 미국 제조업 강화에서 물가 억제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NYT가 전했다. 특히 해리스 부통령이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가격을 올린 대기업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함으로써 비난의 화살을 기업 쪽으로 돌릴 것이라고 이 매체가 전망했다.
그렇지만, 해리스 부통령이 경제 정책의 세부 사항을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을 계획이다. 이는 바이든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증폭시키지 않으면서 현 정부 정책에 반대해 온 경제계의 지지를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NYT가 지적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자녀 세액공제 확대, 법인세와 고소득층 소득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자 유급 휴가 확대 등을 공약으로 제시할 계획이다.
미 노동부는 7월 미국 CPI가 전년 동월 대비 2.9% 상승했고, 전월과 비교해선 0.2% 상승했다고 밝혔다. 소비자물가 연간 상승률이 2%대에 진입한 것은 지난 2021년 3월(2.6%) 이후 3년 4개월 만에 처음이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년 동월 대비 3.2%, 전월 대비 0.2% 각각 상승했다. 근원 CPI 연간 상승률은 지난 3월 3.8%를 보인 이후 4개월 연속 내림세를 지속하며 지난 2021년 4월 이후 최저치로 내려갔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