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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임금보다 물가 더 뛰는데 소비는 증가…집·AI까지 동원

5개월째 물가 상승률이 임금 추월…주택자산·대출·푸드뱅크·챗GPT 활용해 생활수준 유지
지난해 12월 9일(현지시각) 미국 미시간주 캐팩의 한 이동식 푸드뱅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식료품을 나르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해 12월 9일(현지시각) 미국 미시간주 캐팩의 한 이동식 푸드뱅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식료품을 나르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에서 물가 상승률이 5개월째 임금 상승률을 웃돌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지출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생활비 부담이 커지자 미국 가계가 주택에 쌓인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 투자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하는가 하면 푸드뱅크를 이용해 식비를 줄이고 인공지능(AI) 챗GPT를 활용해 싼 식료품을 찾아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 여력을 확보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물가가 임금보다 빠르게 오르는 상황에서도 미국 소비자들이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자원과 방법을 동원하면서 지출을 이어가고 있다고 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 정부가 지난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미국의 소비는 자동차, 의류, 음식점 등을 중심으로 증가하며 1년여 만에 가장 빠른 증가세를 나타냈다.

미국에서는 지난 3월 이후 물가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을 계속 앞서고 있다. 일반적으로 실질 구매력이 줄어들면 소비가 둔화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 미국에서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톰 바킨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기업들의 실적과 관할 지역의 기업·소비자들을 통해 이런 움직임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킨 총재는 “상황이 조금 더 빠듯해지고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을 압박해도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방식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며 “소비자들의 대응 능력에 놀랐다”고 말했다.

◇식료품 32% 뛰었는데 소비는 계속

미국 가계가 체감하는 생활비 부담은 상당하다.

지난 2020년 초 이후 미국의 식료품 가격은 32% 올랐으며 쇠고기 다짐육 가격은 파운드당 평균 7.16달러(약 9800원)로 사상 최고 수준에 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의 경기 호황과 관세, 이란 전쟁 등 잇따른 가격 충격이 미국 가계를 압박했다. 여기에 지난 3월부터는 임금 상승률까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휘발유 가격도 전국 평균 갤런당 4달러(약 5500원)를 넘어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틀랜타 북부 교외에 사는 엘리자베스 젠타일 부부는 식료품 유통업체 크로거의 주유 할인 혜택을 최대한 활용한다.

가족 차량 두 대를 주유기 양쪽에 세운 뒤 한 차량의 주유가 끝나면 주유기를 배우자에게 넘겨 한 번의 거래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갤런당 최대 1달러(약 1360원)의 할인혜택을 두 차량에 함께 적용한다.

높은 물가는 소비자 심리도 짓누르고 있다. 미국 소비자 심리는 올해 초 기록한 사상 최저 수준 부근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블룸버그가 최근 기업들의 분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 소비자들의 재정 상태는 이런 압박에도 다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월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일부 고객이 더 싼 상품으로 옮겨가고 할인제품이나 자체브랜드(PB) 상품을 찾는다고 밝혔다. 반면 올리브가든 등을 운영하는 다든 레스토랑의 최고경영자(CEO)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자사의 외식 체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챗GPT에 영수증 넣어 가격 비교…한 달 14만원 절약

소비자들이 지출을 유지하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는 선구매 후결제(BNPL)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지역 연방준비은행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BNPL 이용은 2021년 이후 매년 약 20%씩 증가했다.

애틀랜타 교외 덜루스에서 교사로 일하는 케니 마브리(38)는 AI를 생활비 절감에 활용하고 있다.

그는 식료품점 영수증을 챗GPT에 입력해 크로거와 샘스클럽 가운데 어느 매장에서 사는 것이 더 저렴한지 비교한다. 매장 진열대 전체를 사진으로 찍어 챗GPT에 보여주고 가장 가격 경쟁력이 높은 제품을 찾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마브리는 챗봇의 도움과 가격 비교 습관을 통해 한 달에 약 100달러(약 14만원)를 절약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그는 “이제는 가격을 보고 ‘정말 이것을 사야 하나, 다른 곳에서 더 싸게 살 수 있나, 직접 만들 수 있나’를 생각할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며 “다섯 식구를 먹여 살리면서 1달러라도 최대한 활용하려 하면 이런 작은 결정들이 쌓인다”고 말했다.

일부 가계는 푸드뱅크까지 활용한다.

미국 최대 규모의 식품 배급기관인 휴스턴 푸드뱅크의 브라이언 그린 대표는 주택이나 임대료 지원은 받기가 매우 어렵지만 식품 지원은 상대적으로 이용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푸드뱅크에서 식료품을 공급받아 절약한 돈을 주거비 등 다른 필수 비용에 사용하는 가계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흠집 수리도 포기…6년 넘는 대출 급증

가계가 지출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모습은 자동차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미국 자동차 차체수리업계에서는 생활비 부담이 커진 소비자들이 차량에 흠집이나 찌그러짐이 생겨도 수리를 미루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동차 보험료가 크게 오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자동차수리전문가협회의 에런 슐렌버그 전무는 “소비자가 사고 이후 직접 부담해야 하는 자기부담금이 2000달러(약 273만원)에 달하는 경우도 더 이상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신차 가격이 평균 5만달러(약 6822만원)에 이르면서 자동차 대출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 8월 자동차 대출 가운데 상환기간이 6년을 넘는 비중은 31.3%로 관련 통계에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포인트 높아졌다.

에린 키팅 콕스 오토모티브 수석 애널리스트는 “소비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동차 전체 가격보다 매달 내야 하는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이 월 납입액에 맞추려면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생각한다”며 장기대출 증가가 놀라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부유층은 투자자금·주택자산까지 꺼내 쓴다

상대적으로 자산이 많은 미국인들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가치가 크게 오른 투자자산과 주택을 활용하고 있다.

JP모건체이스 인스티튜트 보고서에 따르면 투자계좌에서 입금보다 인출액이 더 많은 사람들의 비중은 2019년 이후 두 배로 증가했다.

고령층과 고소득층이 이런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지만 투자자산을 소비에 사용하는 현상은 연령과 소득 계층 전반에서 나타났다.

연구진은 젊은 층에서도 투자자산을 지출 재원으로 활용하는 비중이 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주택 가격 상승으로 자산이 늘어난 주택 보유자들은 집에 쌓인 자산도 활용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따르면 주택자산을 담보로 한 신용한도대출(HELOC)은 2분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4% 증가해 2017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7%를 웃도는 상황에서 과거 훨씬 낮은 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소유자들이 집을 옮기는 대신 기존 주택에 계속 돈을 쓰는 흐름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제프리스 애널리스트들은 분석했다.

반면 저소득층에서는 개인 부채 의존이 커지고 있다.

‘노 키드 헝그리 텍사스’가 의뢰한 최근 조사에서는 텍사스주 부모 가운데 39%가 식료품 구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테네시와 조지아주의 블루리지산맥 일대 4개 카운티에서 영업하는 코퍼베이신 연방신용조합도 대출 수요 급증을 경험하고 있다.

이 신용조합은 고객의 급여 직접입금 내역 등을 바탕으로 최대 2000달러(약 273만원)를 자동 대출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용 수요가 늘었다.

제시카 그로스틱 코퍼베이신 연방신용조합 CEO는 “사람들이 실제 청구서를 내기 위해 현금이 절박하게 필요한 경우가 있다”며 “무서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물가가 임금보다 빠르게 오르는 상황에서도 미국 소비가 유지되는 배경에는 소비자들이 할인과 AI를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투자자산과 주택자산, 장기대출과 개인부채까지 동원하고 있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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