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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반도체 열전 (60) 솔리다임... 최태원의 승부수

인텔+SK하닉 합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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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을 뉴욕증시에 분리 상장시키겠다는 보도가 나와 반도체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SK하닉이 솔리다임 분리 상장을 맡을 주관사 선정작업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솔리다임의 뿌리는 글로벌 반도체의 원조이자 제국이었던 미국 인텔(Intel)에 닿아 있다.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제왕이었으나, 메모리 반도체에서도 독보적인 기술적 자산을 축적해 왔다. 특히 낸드플래시 셀을 수직으로 집적하고, 셀 하나에 4비트의 정보를 저장하는 QLC(Quadruple Level Cell) 기술과 기업용 스토리지 펌웨어 및 컨트롤러 설계 기술에서 인텔의 엔지니어링 역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2010년대 후반, 인텔은 파운드리와 주력 CPU 사업의 경쟁력 약화라는 내우외환에 직면했다. 현금 확보와 선택과 집중이 절실했던 밥 스완 당시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비주력 자산 정리에 착수했고, 2020년 10월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매각하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인수의 주체로 나선 곳은 바로 최태원 회장과 박정호 부회장이 이끌던 SK하이닉스였다. 인수 대금은 90억 달러(당시 한화 약 10조 3,000억 원). 대한민국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 규모의 초대형 딜이었다.

D램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으나, 낸드플래시 부문에서는 4~5위권에 머물며 상대적 열세를 면치 못했던 SK하이닉스로서는 단숨에 글로벌 낸드 2위로 도약하고,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북미 빅테크 엔터프라이즈 시장의 문을 열 수 있는 전략적 승부수였다. 2021년 말, 주요국 규제 당국의 승인을 거쳐 1단계 인수 절차가 완료되면서 인텔 낸드 사업부는 마침내 ‘솔리다임’이라는 사명으로 새롭게 닻을 올렸다. 솔리다임은 단단함을 뜻하는 ‘솔리드(Solid)’와 혁신의 틀을 의미하는 ‘패러다임(Paradigm)’의 합성어로, 메모리 산업의 새로운 표준을 세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거대한 포부로 출범한 솔리다임의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출범 직후인 2022년 하반기부터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역사상 유례없는 ‘다운턴(하강 국면)’에 진입했다. 코로나19 팬데믹 특수가 급격히 꺼지며 스마트폰, PC 등 IT 기기의 수요가 급감했고, 서버 고객사들마저 재고 조정에 들어가며 낸드플래시 가격은 폭락을 거듭했다. 인텔이라는 거대 조직에서 분리되어 독자 경영 시스템을 안착시키는 과정에서의 문화적 충돌, 공급망 재편의 혼선도 가중되었다. 인수 당시 거액의 차입금을 동원했던 SK하이닉스에게 솔리다임의 실적 악화는 치명타로 돌아왔다.

솔리다임은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수조 원대의 천문학적인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10조 원을 들여 골칫덩이를 떠안았다",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설상가상으로 인텔 출신의 초대 경영진이 물러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이 단행되는 등 회사는 뼈를 깎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암흑기 속의 집념: QLC 기술이라는 필살기


패색이 짙어 보이던 그 암흑기 속에서도 솔리다임의 연구진과 엔지니어들은 한 가지 기술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용량 QLC 낸드 기반 eSSD’였다. 당시 데이터센터 시장의 주류는 셀 하나에 3비트를 담는 TLC(Triple Level Cell) 기반 SSD였다. TLC는 속도와 내구성 면에서 우수하지만, 저장 밀도를 비약적으로 높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QLC는 동일한 면적에 TLC 대비 33%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어 원가 경쟁력과 고용량화에 유리했으나, 셀 간의 간섭 현상으로 인해 데이터 쓰기 속도가 느리고 수명이 짧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대다수의 메모리 제조사들이 QLC를 엔터프라이즈 서버용으로 채택하기를 망설인 이유였다.

솔리다임은 인텔 시절부터 축적해 온 플로팅 게이트(Floating Gate) 아키텍처와 정교한 알고리즘의 자체 컨트롤러, 펌웨어 최적화 기술을 통해 QLC의 내구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해 나갔다. 솔리다임 엔지니어들은 데이터 읽기 위주의 워크로드에서는 QLC가 TLC 못지않은 성능을 발휘하면서도 압도적인 저장 밀도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모기업인 SK하이닉스 역시 단기적인 실적 부진에 흔들리지 않고 솔리다임의 R&D 역량을 보존하며, 고용량 eSSD 라인업 구축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이 뚝심 있는 R&D 투자는 훗날 불어닥칠 기술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완벽히 준비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AI의 폭발과 드라마틱한 반전


2023년 말부터 본격화된 생성형 AI 혁명은 스토리지 시장의 판도를 단숨에 뒤흔들었다. 오픈AI의 챗GPT를 필두로 한 거대 AI 모델의 훈련과 추론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데이터가 요구되었다.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증설에 나섰으나, 곧 심각한 물리적 한계에 부딪혔다. 바로 데이터센터의 상면 공간(면적) 부족과 막대한 전력 소모 문제였다.

더 이상 무한정 공간을 늘리거나 전력을 끌어올 수 없는 상황에서 해법은 자명했다. "더 작은 공간에 더 적은 전력으로 압도적인 용량을 저장하는 장치." 그 때 시장에서 유일하게 즉시 대규모 공급이 가능한 초고용량 제품이 바로 솔리다임의 61.44TB(테라바이트) QLC eSSD였다. 솔리다임의 제품은 기존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 대비 설치 공간을 5분의 1 이하로 줄이고, 전력 소비량 역시 극적으로 감축시켰다. 데이터 입출력 병목에 시달리던 엔비디아 GPU 기반 AI 가속기 클러스터에 솔리다임의 QLC eSSD는 대체 불가능한 핵심 부품으로 급부상했다.

그간 TLC에 안주하며 QLC 전환을 늦추었던 경쟁사들은 허를 찔렸다.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앞다투어 솔리다임의 문을 두드렸다. ‘사려는 사람은 줄을 섰는데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 열린 것이다.

흑자 전환과 ‘초고용량 eSSD 1인자’의 대관식


솔리다임의 실적은 2024년을 기점으로 극적인 수직 상승을 그렸다. 수년간 지속되던 수조 원대 적자의 늪을 단숨에 탈출해 흑자 궤도에 올라섰고, 솔리다임의 폭발적인 매출 성장은 SK하이닉스 전체의 실적 퀀텀 점프를 견인하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시장조사기관들의 데이터는 솔리다임의 독보적인 위상을 여실히 증명했다. 특히 고부가가치 시장인 QLC 기반 엔터프라이즈 SSD 시장에서 솔리다임은 글로벌 점유율 1위를 확고히 굳히며 2위권과의 격차를 크게 벌렸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솔리다임은 122TB에 달하는 차세대 초고용량 eSSD 개발 및 양산 로드맵을 선도적으로 제시하며 기술적 진입 장벽을 한층 더 높였다. 이제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초고용량 eSSD는 솔리다임"이라는 등식이 공식화된 것이다. HBM으로 D램의 패권을 쥔 SK하이닉스가, 낸드 부문에서는 자회사 솔리다임을 통해 eSSD의 패권을 쥐는 이른바 ‘AI 메모리 천하통일’의 구도가 완성된 순간이었다.

솔리다임의 궤적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사에서 보기 드문 드라마이자 깊은 울림을 주는 교훈이다. 인텔이라는 거인의 그늘에서 태어나, SK라는 승부사의 손에 넘겨진 뒤 겪어야 했던 처절한 시장의 냉대와 적자의 터널. 그러나 기술적 본질에 천착하며 시장이 외면하던 기술을 끝끝내 완성해 낸 엔지니어들의 집념, 그리고 다운턴의 공포 속에서도 장기적 안목으로 버텨낸 경영진의 뚝심이 어우러져 마침내 기적 같은 역전극을 일궈냈다.

AI 시대는 이제 막 개막했을 뿐이다. 앞으로 다가올 AI 에이전트, 자율주행, 피지컬 AI의 시대에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데이터의 축적과 처리가 요구된다. 솔리다임이 증명해 낸 것은 단순한 실적 반등이 아니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기술의 미래를 정확히 읽고 묵묵히 씨앗을 뿌린 자만이, 거대한 파도가 닥쳤을 때 정상에 설 수 있다는 반도체 산업의 영원한 진리다. 솔리다임이 써 내려가는 'SSD 1인자'의 신화는 오늘날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최전선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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