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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엉터리 물가지수... 케빈워시 PCE 통계조작과 게리먼더링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주필 겸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주필 겸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미국의 9월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 PCE가 발표됐다. PCE 물가 지수는 미국의 중안은행이 연준이 금리인상 등 금융통화정책을 수립할 때 기초로 삼는 아주 중요한 지표이다.
통화정책의 성패는 지표의 일관성과 정직성에서 출발한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결단의 배후에는 언제나 의심할 수 없는 객관적 데이터라는 대전제가 자리해야 한다. 지표가 정책 당국자의 입맛에 따라 자의적으로 재단되는 순간, 중앙은행이 시장과 맺어온 신뢰의 사회적 계약은 일거에 파기된다. 2026년 가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이끄는 케빈 워시(Kevin Warsh) 의장을 둘러싸고 불거진 ‘PCE 물가지수 개편 논란’은 단순한 학술적 방법론의 수정을 넘어섰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공공연히 ‘통계 조작’이자 ‘물가 지표의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라는 통렬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 왜곡의 최전선에 바로 ‘절사평균(Trimmed Mean)’이라는 정교한 통계적 칼날이 놓여 있다.

‘게리맨더링’이란 특정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기형적으로 획정하는 정치적 왜곡을 일컫는다. 1812년 매사추세츠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가 샐러맨더 도마뱀 모양으로 선거구를 쪼개 붙인 데서 유래한 이 단어가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막강한 발권력을 지닌 세계 금융의 심장 연준 한복판에서 호출되는 현실은 충격적이다. 워시 의장이 추진하는 PCE 물가지표 개편과 절사평균의 정책 준거화가 바로 그 악명 높은 선거구 쪼개기와 본질적으로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연준이 금리 결정의 확고한 나침반으로 삼아온 지표는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이 집계하는 근원 PCE(Core PCE) 지수였다. 식품과 에너지라는 일시적 가격 변동성이 극심한 두 축을 기계적으로 제외하고, 경제 저변에 흐르는 지속적 인플레이션 압력을 측정하겠다는 취지였다. 반세기에 걸쳐 축적된 이 단일하고 확고한 룰 덕분에 글로벌 금융시장은 연준의 다음 행보를 확률적으로 예측하고 자산을 배분해 왔다.
워시 의장은 취임 직후부터 이 확립된 룰을 흔들었다. 기존 근원 PCE가 50년 전의 낡은 유물에 불과하며, 현실 체감 물가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치켜든 핵심 무기가 바로 ‘절사평균 방식의 재정의’와 ‘품목 확산도(Breadth)’다.절사평균의 논리는 겉보기에 대단히 합리적이고 세련되어 보인다. 199개 세부 품목 중 당월에 가격이 가장 극단적으로 치솟거나 곤두박질친 상·하위 품목들을 일정 비율(예컨대 상위 24%, 하위 31%)로 기계적으로 잘라내 버리고, 그 중간에 남은 품목들의 가중평균만으로 ‘진짜 기저 물가’를 측정하겠다는 것이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이 산출해 오던 이 실험적 보완 지표를 이제 연준의 핵심 정책 준거로 격상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통계학의 기본을 아는 경제학자들과 시장 참여자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절사평균이야말로 가장 합법을 가장한 ‘통계적 마사지’이자 자의적 가위질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첫째, ‘광범위한 물가 상승(Incipient Inflation)’의 은폐와 왜곡이다. 관세 인상이나 공급망 병목 등으로 다수 품목의 가격이 일제히 우상향할 때, 가장 강하게 튀어 오른 핵심 품목들은 ‘단기 이상치(Outlier)’라는 딱지가 붙어 절사평균 바구니에서 맨 먼저 잘려 나간다. 국민 대다수가 마트와 주유소, 병원에서 매일같이 체감하는 가격 폭등 품목들이 정작 통계 계산에서는 ‘소음(Noise)’으로 치부되어 지워지는 셈이다. 반대로 경기 침체기에는 급락하는 품목들을 잘라내 물가가 여전히 높은 것처럼 착시를 만든다.

둘째, 경계선 긋기의 자의성이다. 도대체 상위 몇 퍼센트를 자르고 하위 몇 퍼센트를 남길 것인가. 그 절사 비율의 칼자루를 정책 당국자가 쥐는 순간, 통계는 객관적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정책 의도를 관철하기 위한 요술 방망이로 전락한다. 야당 표가 몰린 선거구를 가위로 오려내 사표(死票)로 만들듯,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은 품목을 ‘극단값’이라는 핑계로 싹둑 잘라내면 연준이 원하는 안정적인 수치가 마법처럼 도출된다. 만약 더 매파적인 명분이 필요하다면 하위 절사 비율을 늘려 물가가 안 잡힌 것처럼 둔갑시킬 수도 있다. 이것이 물가의 게리맨더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더욱 엄중하고 경악스러운 대목은, 이 위험천만한 통계 개편이 먼 훗날의 실험적 구상이 아니라 바로 이번 ‘2026년 9월 공식 통계 발표분’부터 이미 전격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은 9월 말 발표를 기점으로 새로운 PCE 산출 체계를 적용함과 동시에, 2021년 1분기부터 2026년 1분기까지 지난 5개년의 과거 시계열 데이터 전체를 소급 수정하여 뜯어고쳤다. 9월부터 당장 바뀐 잣대로 인플레이션을 재단하고, 과거 5년 치의 기준선까지 사후적으로 뜯어고친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채점 결과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난 5년간 치른 시험의 정답표와 배점 기준을 사후에 일괄 조작한 것과 다를 바 없다.

통계학에서 시계열의 연속성은 생명과도 같다. 과거의 잣대와 현재의 잣대가 달라지는 순간, 월가와 글로벌 금융시장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계량 모델과 자산 배분 프레임워크는 일시에 붕괴한다. 연준의 지표를 신뢰할 수 없게 된 채권 시장은 텀 프리미엄을 가파르게 끌어올리고, 글로벌 자본은 달러 자산에 전례 없는 ‘불확실성 프리미엄’을 요구하게 된다. 케빈 워시는 인플레이션을 정밀 타격하겠다는 계량적 엔지니어링을 내세우고 있으나, 그가 난도질한 것은 통계 수치 몇 개가 아니라 연준이 100년 넘게 쌓아 올린 ‘기관의 정직성’ 그 자체다.

중앙은행 총재의 책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투명한 평면 거울이어야지, 자신이 보고 싶은 상(像)을 왜곡해 투영하는 볼록거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완고하다면 고통스럽더라도 그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정공법으로 시장과 소통해야 마땅하다. 199개 세부 품목을 이리저리 오려 붙이고, 절사평균의 장막 뒤에 숨어 9월 통계부터 과거 5년 치 시계열까지 뜯어고친 행태는 결코 당당한 세계 기축통화 당국의 자세가 아니다.

워시 의장의 절사평균 드라이브는 연준의 정책 신인도를 높이기는커녕, 통계 조작이라는 치명적인 불신의 덫을 놓았다. 통계를 마사지하여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이야말로, 지금 글로벌 금융시장이 직면한 가장 거대한 시스템 리스크다.
미국의 연준 역사상 최악의 의장으로 흔히들 아서 번즈를 거론한다. 전 세계를 끔찍한 고통에 빠졌던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바로 아서 번즈 연준 의장시절에 터졌다. 아서 번즈가 연준 물가통계 마사지의 원조이다. 케빈워시와 아서번즈의 행보가 놀랍도록 닮아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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