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정유시설 공격에 주유소 품귀…전동화차 4만3000→8만3000대
이미지 확대보기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으로 휘발유 공급난이 심해지면서 러시아 소비자들이 중국산 전기차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세계적인 산유국이라는 이점 때문에 전기차 전환이 더뎠던 러시아에서 주유소 대기 행렬과 연료 품귀가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6월 말 이후 러시아 전기차 시장이 두 배 이상 커졌으며 판매되는 전기차 대부분이 중국산이라고 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러시아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순수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를 포함한 전동화 차량 판매량은 지난해 1~8월 4만3000대에서 올해 같은 기간 8만3000대 이상으로 늘었다.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아브토스타트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순수전기차와 외부 충전으로 전기만으로도 주행할 수 있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의 러시아 신차시장 점유율은 11.5%까지 높아졌다.
연초 약 5%에서 두 배 이상으로 높아진 수준이다.
◇ 정유시설 공격에 주유소 절반 이상 연료 없어
러시아 전기차 수요가 급증한 직접적인 계기는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 공격에 따른 연료 공급난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6월 말부터 러시아 정유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을 강화했다.
NYT에 따르면 2일 러시아 전역에서 연료를 판매하고 있던 주유소는 전체의 46%에 불과했다. 모스크바에서는 53%, 동쪽의 주요 도시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는 27%만 연료를 판매하고 있었다.
모스크바의 상황은 지난 7월 초와 8월 중순 더욱 심각했다. 당시에는 주유소의 약 4분의 1에서만 연료를 구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 러시아 남부를 잇는 주요 도로의 주유소에는 차량들이 몰려 운전자들이 수시간씩 기다리는 상황도 나타났다.
러시아 정부는 공급난을 완화하기 위해 품질이 낮은 휘발유와 경유 판매도 허용했다.
그러나 일부 차량에서는 저품질 연료를 사용한 뒤 고장이 발생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모스크바에서 볼보 전문 정비소를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지난 8월 2주 동안 디젤 매연필터가 막힌 차량 15대를 수리했다”며 품질이 낮은 연료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 전기차 매장 재고 동나…중국 브랜드 급부상
연료난이 계속되면서 전기차 판매점에서는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중고 전기차 온라인 매물도 줄고 있다.
모스크바 북서부의 대형 자동차 판매단지에서 중국 차량을 기반으로 러시아에서 조립하는 전기차 브랜드 에볼루트의 한 관리자는 “판매할 재고가 남아 있지 않고 대기명단에도 이름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판매단지에는 40개가 넘는 자동차 판매점이 있다.
과거에는 서유럽과 일본, 한국 자동차 브랜드가 중심이었지만 현재 25곳 이상이 중국 브랜드 전시장으로 바뀌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자동차업체들이 현지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과거 서방 브랜드 차량을 생산하던 러시아 공장 상당수도 중국 자동차를 조립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러시아 자동차업계 전문가 세르게이 첼리코프도 7월 중국 GWM의 순수전기차 '오라 03 GT'를 구입했다.
그는 당시 여러 주유소를 돌아다녔지만 경유나 낮은 등급의 휘발유만 구할 수 있었다고 NYT에 말했다.
전기차 수요가 몰리면서 그가 차량을 구입한 지 며칠 만에 같은 모델의 가격이 약 2000달러(약 269만원) 올랐다고 한다.
◇ 충전소도 4년 새 5배 이상 늘어
러시아는 세계적인 석유 생산국이라는 특성 때문에 오랫동안 전기차 보급이 더뎠다.
저렴한 휘발유와 광대한 국토, 혹독한 겨울 날씨가 전기차와 충전망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2022년부터 급속충전소와 전력망 연결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지난 2023년에는 신축 건물에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갖추도록 관련 규정도 개정했다.
러시아의 공공 충전소는 2022년 1500곳 미만에서 올해 8000곳 이상으로 늘었다.
상당수 지역에서는 순수전기차에 자동차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모스크바 등 주요 도시에서는 전기차의 주차요금도 면제된다.
일반 차량은 일부 지역에서 시간당 최대 9.50달러(약 1만2800원)의 주차요금을 내야 한다.
러시아에서 생산된 전기차는 정부 보조금도 받을 수 있으며 대부분의 유료 고속도로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급격한 전기차 수요 증가로 충전 인프라 부족이라는 새로운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모스크바 시내에서는 충전소에도 대기 행렬이 생기기 시작했다.
러시아 최대 충전소 운영업체 푼크트E는 최근 몇 주 사이 충전 수요가 두 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회사는 추가 충전소 100곳의 건설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 전쟁이 러 자동차시장 전환 앞당겨
러시아의 전기차 확대는 세계적인 전동화 흐름과도 맞물리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해 세계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역대 최고인 29%에 이를 전망이다.
올해 전기차 판매가 증가한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 호주, 인도 등 90개국이 넘는다.
IEA는 최근의 에너지 위기가 전기차를 선택할 경제적 필요성을 더욱 강화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에서는 이런 흐름에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 공격이라는 특수한 요인이 더해졌다.
다만 전기차 가격이 여전히 높고 충전시설이 부족해 러시아 자동차시장이 단기간에 순수전기차 중심으로 완전히 전환될 가능성은 불확실하다.
첼리코프는 순수전기차의 점유율이 두 배로 높아졌지만 가격 부담 때문에 아직 러시아에서 일반적인 차량은 아니라며 앞으로는 하이브리드차의 시장점유율이 계속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NYT는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 국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영향이 주유소와 자동차 구매에까지 확산하고 있으며, 동시에 서방 자동차업체가 빠져나간 러시아 시장에서 중국 자동차업체의 입지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