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전기요금제 개편' 약속 어긴 한전, '내년 총선까지만…' 정부에 암묵적 동의?

11월까지 개편안 마련 공시해 놓고 이사회 안건 상정조차 못해..."논의는 했다" 궁색한 해명
"'인상 반대' 정부와 '인상 요구' 주주 사이 외줄타기 4월 총선까지 이어질 것" 업계 전망
2022년까지 인상 없다던 산업부 "내년 미세먼지 고농도 3월 지나면 인상 검토" 변화 시사

김철훈 기자

기사입력 : 2019-12-01 16:06

center
10월 11일 전남 나주시 한국전력 본사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김종갑 한전 사장이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6월 한국전력 이사회는 '주택용 전기요금 여름철 누진제 완화'를 승인하면서 "11월 말까지 전기요금체계 개편안을 마련해 내년 상반기 중에 정부 인가를 얻겠다"는 공시를 내고 주주와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당시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같은 한전 이사회의 공시를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승인에 따를 소액주주들의 배임 비난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한전의 공시 내용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달 28일 열린 이사회에서 전기요금 개편안은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이번에는 업계와 전문가들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전기요금 인상을 공론화하기 부담스러운 정부의 압력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정'과 함께 비판의 눈길을 보냈다.

이를 의식한 탓이었을까, 한전은 28일 이사회 다음날인 29일 또하나의 공시를 내놓았다. 28일 열린 이사회에서는 전기요금 개편 방향을 논의했고, 향후 전기사용 실태조사와 외부기관 용역결과를 감안해 계속 토의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안건으로 상정하진 않았지만 '논의는 했다'는 반박성 해명이었다.

그럼에도 이날 해명 공시에서 '논의를 했다'고 강조하는 한전 이사회는 언제 전기요금체계 개편안을 마련할 것인지 세부 시점을 밝히지 않은 채 '계속 논의해 나간다'는 점만 강변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6월 공시 내용의 이행은커녕 안전 상정조차 못한 이유치고는 '궁색한 변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전 이사회가 전기요금 인상을 반대하는 정부와 재무개선안, 즉 요금인상을 요구하는 주주들 사이에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게 외부의 시선이다.

더욱이 이런 한전의 외줄타기 행보는 일단 내년 4월 총선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1월 28일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겨울철 석탄발전소 일부를 가동정지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전기요금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설명자료에서 "정부는 국가기후환경회의의 국민제안을 수용해 미세먼지 대책의 하나로 겨울철 석탄발전을 일부 감축할 계획"이라며 "석탄발전 감축에 따른 요금조정 여부는 추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추후'라는 시기의 전제조건을 달았지만, 업계와 전문가들은 추후의 구체적 시점이 '내년 4월 총선 이후'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도 “미세먼지 고농도 기간인 내년 3월이 지나면 추가 비용을 보고 필요할 경우 전기요금 인상까지 검토하겠다”면서 “요금을 어떤 형태로 현실화할지 한전과 계속 협의하겠다”고 언급해 예상가능한 '추후 시점'을 암시했다.

한전으로서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오는 2022년까지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공언해 오던 산업부의 종전 입장에 비하면 미묘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한전도 전기요금 개편안을 마련해 내년 상반기까지 정부 인가를 받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 왔다.

결국 여론 악화를 피하기 위해 내년 4월까지 거론하지 않고, 총선 이후에 전기요금을 올리겠다는 정부여당의 정략적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문제는 이같은 정치권과 한전 이사회의 의도와 달리 내년 4월 이전에 국내외 주주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전 소액주주들은 지난 7월 한전 김종갑 사장을 포함한 이사진을 배임 혐의로 형사 고발했다.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9월 한전에 "2018년 적자를 낸 원인과 한국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전망을 보고하라"고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국제소송 관련 전문가들은 올해 말을 전후해 해외주주들의 ISD(투자자국가소송) 제기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더욱이 올해 한전은 지난해보다 실적이 악화될 가능성이 농후해 국내외 주주들의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한전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 3107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2697억 원 줄어든 규모이다.

올해 4분기 실적이 지난해와 같다면 올해 한전의 전체 영업이익은 지난해 2080억 원 손실보다 더 나빠진 4700억 원대 적자가 예상된다.

더욱이 올해 4분기(10~12월) 원전 가동률이 역대 4분기 최저 수준인 58%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은 한전의 입지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원전 가동률은 72.8%였다.

업계에 따르면, 원전 가동률이 1%포인트 낮아질 때마다 1900억 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전 가동률이 10%포인트 낮아지면 결국 2조 원 가까운 영업손실이 나는 구조이다.

반대로 전기요금을 1% 올리면 한전의 세전이익은 5000억 원 늘어난다. 전기요금을 4% 올리면 약 2조 원의 수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업계는 추정한다.

전기를 팔아 수익을 내는 한전이 생산원가를 낮추거나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한 쌓이는 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전기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귀결되고, 이 때문에 한전 경영진과 주주들은 전기요금체계 개편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한전은 공공성이 강한 공기업이지만 국내외 주식시장에 상장된 민간기업임을 감안하면 전기요금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원가 조정 측면이 아닌 총선·대선 같은 정치 일정에 맞춰 정부가 일방통행식 선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