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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배려 않는 '정의'는 오직 편향된 주장일뿐"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83)] 정의와 배려는 도덕의 양 날개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 2024-04-03 09:19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반 국민들은 정치권의 분열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삶이 팍팍한 현실에서 정의도 좋지만 배려하는 마음도 함께 하는 정치를 염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반 국민들은 정치권의 분열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삶이 팍팍한 현실에서 정의도 좋지만 배려하는 마음도 함께 하는 정치를 염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거대 정당뿐만 아니라 군소 정당까지도 정당의 차원에서 다른 정당이 얼마나 비도덕적인지를 홍보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리고 각 지역구의 후보자들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상대 후보자들이 얼마나 비도덕적인 인물인지를 과거의 언행(言行)을 캐내 공격하고 있다. 정치 지향성이 있는 사람들은 선거철이 아니더라도 기회만 있으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언사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바라는 공천을 따냈을지 모르지만 과거의 자극적인 언사에 발목이 잡혀 비도덕적이고 자격 미달이라는 공격을 받고 있다. 그중 소수는 원했던 공천을 받았지만 과거의 비도덕적 행위 때문에 취소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런 선거 운동의 결과 선거판은 완전히 진흙탕이 돼버리곤 한다. 이런 진흙탕 싸움 자체를 보기 싫은 사람들은 정치 자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이런 선거 운동의 밑바탕에는 도덕적 삶을 살았는지 여부가 사람들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함의(含意)가 있다는 의미다. 도덕(道德)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다. 외적 강제력을 갖는 법률과 달리 각자의 내면적 원리로서 작용하며 이런 의미에서 자신이 도덕적이라고 주장하고 상대가 비도덕적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양심이나 관습에 비추어볼 때 마땅히 지켜야 할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지역민들의 대표가 되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제일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심•관습 따른 도덕적 삶…모든 종교•철학, 그렇게 살기 권하고 중요시


도덕적 삶이 이처럼 소중하기 때문에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은 모두 도덕에 대해 언급하고 그렇게 살기를 권고하고 있다. 다만 종교에 따라 또는 철학적 입장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과연 도덕적인지에 대해서는 서로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실제로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대해 경험적으로 연구하는 심리학에서도 당연히 도덕에 관심이 있다. 다만 심리학에서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도덕적인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전혀 도덕적 관념이 없이 태어나는 인간이 어떤 발달 과정을 거치면서 도덕적 행동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동시에 도덕적 행동뿐만 아니라 도덕관에도 큰 관심이 있다. 이 연구 분야에 큰 족적(足跡)을 남긴 학자는 로런스 콜버그(Lawrence Kohlberg)다.

콜버그는 1927년 미국 뉴욕의 브롱스빌(Bronxville)의 부유한 유대계 독일인 사업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이스라엘의 건국을 위한 활동에 동참했다. 이 같은 경험은 이후 사회활동과 정의, 도덕성 발달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48년 시카고대학교에 입학했고, 1958년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예일대학교 조교수와 시카고대학교 교수를 거쳐 1968년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되었으며, 하버드대학교 내에 도덕교육연구센터를 설립해 1987년 삶을 마칠 때까지 도덕성 관련 연구에 매진했다.

콜버그는 정의(正義)를 바탕으로 하는 도덕관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기울여 도덕 발달 이론을 주창했다. 그는 도덕관이 6단계로 발달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높은 단계로 발달할수록 가족, 동료, 사회와 같이 더 넓은 관계망 안에서 타인의 관점과 입장을 고려하며, 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높은 단계 사회일수록 타인의 관점과 입장 고려해 합리적 판단으로 행동


그는 딜레마 상황에서의 의사결정과 판단에 주목하며 도덕적 행동의 근거가 되는 '도덕관'을 중시했다. 그에 따르면, 도덕관은 세 수준을 거치며 발달하고, 각 수준마다 두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도합 6단계를 거치며 발달한다. 첫째 수준은 전인습적(前因習的) 수준으로, 이때는 외부적 보상이나 처벌에 근거해 도덕적 판단을 한다. 이 수준은 다시 1단계인 타율적 도덕 단계와 2단계인 개인주의 단계로 나뉜다. 둘째 수준은 인습적(因習的) 수준으로, 보통 타인이나 관습 등의 외부 요인에 의해 규정된 도덕관을 내면화하는 시기다. 이 수준에서도 3단계인 대인간 기대 단계와 4단계인 사회 시스템 도덕 단계로 나뉜다. 마지막 수준은 후인습적(後因習的) 수준으로, 도덕적 가치를 완전히 내면화해 외부 기준이 필요 없는 시기다. 이 수준은 다시 5단계인 개인의 권리 및 사회 계약 단계와 6단계인 보편적 윤리적 원칙 단계로 나뉜다.

콜버그의 이론은 행동주의의 영향이 팽배한 당시의 심리학계에 도덕성 발달에 있어 인지 요인을 부각했다는 점에서 큰 함의가 있으나 문화적 편향성 및 성적 편향성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이론과 관련해 가장 쟁점이 되었던 주장 가운데 하나가 그의 이론이 남자 아동을 중심으로 개발됐다는 것이다. 그의 몇몇 초기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특히 연령이 증가하면서 남자들이 여자보다 도덕 판단 점수가 다소 높은 측면이 발견됐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차(性差)가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이고, 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다.

콜버그의 연구에서 나타난 성차에 대해 제일 먼저 강한 비판을 한 학자는 바로 그의 제자이자 하버드대학교의 동료인 캐럴 길리건(Carol Gilligan)이다. 1936년 미국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외동딸로 태어난 그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하버드 교육대학원에서 강의한 그는 뛰어난 연구 성과로 1997년 하버드대학교 최초의 여성학 교수직을 맡게 되었으며 2001년 학내에 여성학 센터를 설립하는 데 공헌했다.

길리건에 따르면, 콜버그의 도덕성 이론은 '정의적 관점(Justice Perspective)'을 기반으로 한다. 정의적 관점은 주로 보편적 원칙에 따라 개인의 권리와 의무, 정의와 규칙 등을 도덕적 원리로 강조하는 윤리적 관점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도덕적으로 성숙할수록 권리, 의무, 규칙, 정의 등의 가치를 중시한다. 그러나 길리건은 이런 콜버그의 모델이 남성중심적인 경험과 특성만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성은 도덕적 판단에서 남성과 지향하는 바가 다르며, 책임, 인간관계, 공감, 동정심, 상호 의존성, 유대, 특히 배려(配慮) 등 대인지향적인 행동을 올바른 행위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여성의 도덕적 특성을 바탕으로 하는 '배려윤리'를 주창해 '배려하는 인간'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상정했고, 배려의 관점에서 새로운 도덕성 발달 단계를 제시했다. 즉 여성의 도덕성 발달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려윤리(Ethic of Care)'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려윤리라는 새로운 기준은 권리와 의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보살피는 것을 도덕적인 가치 평가 기준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 따라 도덕성 발달 단계를 3단계로 새롭게 구성했다. 이 연구를 통해 길리건은 1996년 '타임'지에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양 '정의', 동양 '배려' 강조…이분법으로 구별될 수 없어


길리건의 '배려윤리'는 여성과 남성이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점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오히려 사회가 여성과 남성으로 하여금 다른 윤리적 태도를 보일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다르게 행동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의 이론은 이러한 성차별적 구조를 재생산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리건의 이론은 남성중심적인 연구 편향이 심한 심리학계에 여성의 관점에서 심리학을 비판하고 여성성을 축으로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콜버그의 이론은 성차(性差)뿐만 아니라 문화차(文化差)의 측면에서도 비판을 받는다. 다양한 문화에서의 도덕성 발달 연구 결과 일반적으로 개인주의적인 서구 문화에서는 '정의'를 강조하는 도덕성 발달이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문화에서는 오히려 상대방의 처지를 공감하고 고려하는 '배려'의 측면이 더욱 강조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즉 콜버그의 도덕성은 한 마디로 '서구-남성적' 편향이 강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정의'와 '배려'는 남성적 혹은 여성적 본질로 이분될 수 없고, 또한 서양과 동양의 특성으로 구별될 수도 없다. 다만 '도덕'이라는 삶의 기본적인 측면을 구성하는 두 가지 근원적인 요인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새가 양쪽 날개로 날 듯이 도덕은 정의와 배려의 양쪽 날개로 구성되어 있다.

선거 열기가 뜨거워질수록 '정의'를 기반으로 하는 도덕의 한쪽 면만을 강조하는 편향된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배려보다 정의와 공정을 기반으로 하는 대표적 직업인 '법조인' 출신이 유독 많은 평가를 받는 연유도 이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정의와 공정의 한쪽 날개로는 원활히 그리고 멀리 날 수 없다. 이제라도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도덕의 다른 쪽 날개도 중요하게 평가받는 풍토를 조성하면 '죽기 아니면 살기'의 살벌한 정치계에도 온기(溫氣)가 돌 수 있을 것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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