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7조서 11조로 'HBM 독주'…삼성, 18개월 공백 후 '뒤늦은 추격'
엔비디아 '인증'이 쓴 3사 3색 성적표…2026년 HBM4 '2차 대전' 예고
엔비디아 '인증'이 쓴 3사 3색 성적표…2026년 HBM4 '2차 대전' 예고
이미지 확대보기HBM 독주에 성공한 SK하이닉스는 2023년 -7조 원대 적자에서 2025년 분기 11조 원대 이익을 넘보는 '대반전'을 이뤘다. 반면 삼성전자는 18개월의 HBM 공백 끝에 뒤늦은 추격을 시작했고, 마이크론은 '미국 유일 HBM' 카드로 2위 자리에 부상했다.
2023년, 바닥은 같았다
출발점은 같았다. 2023년 SK하이닉스는 영업손실 -7조 7300억 원을 기록했다. 분기별로 1분기 -3조 4020억 원, 2분기 -2조 8820억 원, 3분기 -1조 7920억 원. 손실 폭은 줄었지만 반등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마이크론도 FY23(회계연도 2023년) 기준 영업손실 -57억 4500만 달러(약 8조 3600억 원), 순손실 -58억 3300만 달러(약 8조 4800억 원)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전사 매출 258조 9400억 원을 유지했으나, DS(반도체) 부문은 조 단위 적자를 반복하며 '슈퍼 사이클의 그림자'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 시기 시장의 관심은 재고 조정과 감산 규모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실적 바닥의 이면에서는 엔비디아 AI 가속기에 탑재될 HBM이라는 '새로운 축'이 태동하고 있었다. 2023년 재무제표에선 미미했던 이 변수가 1~2년 뒤 3사의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
SK하이닉스, -7조에서 11조로…HBM 독주가 궤적을 바꾸다
반전은 SK하이닉스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다. 2023년 4분기,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 3460억 원을 기록하며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다. 숫자만 보면 작은 회복이지만, 이 분기부터 엔비디아향 HBM3 공급이 본격화했다. 이후 실적 곡선은 HBM 출하량 그래프와 사실상 겹친다.
2024년 분기 영업이익 흐름은 계단형으로 상승했다. 1분기 2조 8860억 원, 2분기 5조 4690억 원, 3분기 7조 300억 원, 4분기 8조 800억 원. 연간 기준으로는 매출 66조 1930억 원, 영업이익 23조 4670억 원으로, 전년 -7조 원대 손실을 완벽히 뒤집었다.
2025년에는 'AI 슈퍼 사이클'이 수치로 증명된다. 1분기 영업이익은 7조 4410억 원, 2분기 9조 2130억 원, 3분기에는 11조 3800억 원까지 치솟는다. 분기 이익만으로 전통적인 메모리 호황기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주가는 이 변화를 선제적으로 반영했다. 2023년 말 97조 4000억 원이던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2024년 말 119조 8000억 원, 2025년 2분기 201조 6000억 원, 3분기 말에는 248조 5000억 원까지 불어났다.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2.5배 가까이 재평가된 셈이다. 투자자들이 본 것은 단순한 '메모리 반등'이 아닌, 엔비디아 AI 가속기 심장부에 독점적으로 편입된 HBM의 위력이었다.
삼성전자, '18개월 HBM 공백'이 남긴 상처
삼성전자의 그래프는 정반대의 흐름을 그렸다. 삼성은 여전히 매출과 설비 투자 1위였지만, HBM에서는 가장 뒤늦게 움직였다.
2025년 2분기 실적은 HBM 공백을 숫자로 입증한다. 이 분기 삼성전자는 전사 기준 영업이익 4조 7000억 원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은 9조 2130억 원이다. 문제는 구성이다. 하이닉스는 대부분이 메모리에서 나온 이익인 반면, 삼성은 DS 부문 영업이익이 4000억 원에 그쳤다. 메모리, 파운드리, 시스템 LSI를 모두 포함한 숫자다.
세계 1위 메모리 업체의 반도체 이익이, HBM에 집중한 경쟁사의 20분의 1 수준에 머문 것이다. 2024년 삼성 시가총액 흐름도 이를 반영했다. 2023년 말 519조 9000억 원이던 시총은 메모리 가격이 반등하던 2024년 말 354조 원까지 내려앉았다. 전통적인 업황 회복기에도 시장은 삼성에 프리미엄을 주지 않았다.
공백의 중심에는 HBM3E가 있었다. 삼성은 18개월 동안 엔비디아의 HBM3E 품질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 발열과 성능, 패키징 안정성 등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그 사이 엔비디아의 주력 AI 가속기에는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HBM이 탑재됐다. HBM 점유율은 2024년 3분기 SK하이닉스 53%, 삼성 35%, 마이크론 11%에서, 2025년 2분기에는 하이닉스 64%, 마이크론 21%, 삼성 15%로 재편됐다. 2위 자리를 지키던 삼성의 비중이 1년 만에 3위로 밀린 셈이다.
전환점은 2025년 9월에 찾아왔다. 삼성이 엔비디아의 HBM3E 품질 검증을 마침내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2025년 2분기 말 391조 5000억 원이던 시가총액은 3분기 말 546조 8000억 원으로 뛰었다. 3개월 남짓한 기간에 150조 원 넘게 급증한 것이다. 시장이 2026년 이후 삼성의 HBM 매출과 점유율을 선제적으로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년은 삼성에게 'HBM 공백의 대가'를 보여준 시간이었다. 이제 'HBM이 있을 때 얼마큼 회복할 수 있는지'를 증명할 구간으로 진입하고 있다.
마이크론, '美 유일 HBM' 카드로 2위 부상
마이크론은 이 구도에서 전략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출발점은 SK하이닉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FY23 기준 매출 155억 4000만 달러(약 22조 6000억 원), 영업손실 -57억 4500만 달러(약 8조 3600억 원). 그러나 2024년부터 실적 궤적이 정반대로 돌아섰다.
마이크론은 FY24에 매출 251억 1100만 달러(약 36조 5000억 원), 영업이익 13억 400만 달러(약 1조 8900억 원)를 기록하며 흑자로 전환했다. 분기별 영업이익도 2024년 1분기 1억 9100만 달러(약 2780억 원)에서 2분기 7억 1900만 달러(약 1조 원), 3분기 15억 2000만 달러(약 2조 2000억 원), 4분기 21억 7000만 달러(약 3조 1500억 원)로 가파르게 늘었다.
정점은 2025년 2분기(캘린더 기준)다. 매출 93억 100만 달러(약 13조 5000억 원), 영업이익 21억 6900만 달러(약 3조 1500억 원). 회사 역사상 최대 분기 매출이다. 같은 시기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64%, 마이크론 21%, 삼성 15%로 집계됐다. 삼성의 공백을 메우며 2위 자리를 꿰찬 구조다.
마이크론의 강점은 '미국 유일의 HBM 공급자'라는 지정학적 지위다. AI 인프라 투자 대부분을 담당하는 미국 빅테크 입장에서, 아시아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다. 시가총액은 2023년 말 942억 달러(약 137조 원)에서 2025년 9월 말 1839억 달러(약 267조 원)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엔비디아 인증이 '王'…HBM 점유율이 시총 좌우
세 회사의 숫자를 나란히 보면 공통된 패턴이 드러난다. 전통적인 D램·낸드 가격도 중요하지만, 실적과 시총을 설명하는 제1 변수는 HBM 점유율이 됐다.
SK하이닉스는 HBM3·HBM3E를 앞세워 2024~2025년 시장 지배력을 확보했고, 마이크론은 HBM3E 양산 안정화로 삼성의 자리를 일부 대체했다. 삼성은 전체 메모리 캐파(생산능력)와 브랜드 인지도에서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HBM이라는 핵심 성장 축에서 18개월간 이탈했던 대가를 실적과 시총으로 치렀다.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는 단순한 고객사를 넘어 '킹메이커' 역할을 했다. 어느 회사의 HBM이 엔비디아 차세대 GPU에 탑재되는지, 검증 통과 시점이 언제인지가 기업별 매출과 주가를 움직이는 직접적인 변수로 떠올랐다. 과거 업황 사이클에서 '가격'이 왕이었다면, AI 시대 메모리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의 인증'이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셈이다.
2026년 HBM4, 전장(戰場)은 다시 시작됐다
시장은 이미 다음 장(章)을 넘기고 있다. 2025년이 HBM3E 세대의 정점이라면, 2026년은 HBM4가 본격화하는 해다.
SK하이닉스는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선두 자리를 지키는 것이 목표다. 독주 구간에서 얻은 수익을 HBM4 연구개발과 패키징, TSV(실리콘 관통 전극) 공정 고도화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재투자했는지가 관건이다. 삼성은 HBM3E 인증을 계기로 뒤늦게 레이스에 합류했다. 파운드리와 메모리를 동시에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강점이다. HBM4 세대에서 얼마나 빠르게 수율을 끌어올리고 대형 고객을 확보하느냐가 2024년의 '저평가 구간'을 완전히 지울 수 있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마이크론은 '미국 내 HBM 생산'이라는 지정학적 이점을 안고 있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 정책과 빅테크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이 계속되는 한 이 타이틀은 유효하다. 2025년 HBM3E '완판' 경험을 바탕으로 생산 능력을 얼마나 확장할 수 있을지가 다음 성장의 관건이다.
지난 3년이 "HBM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가른 시간이었다면, 다가올 3년은 "HBM의 성능과 효율"을 두고 다시 판이 섞이는 시기가 될 것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세 회사의 실적표는 이제 메모리 가격 그래프만으로 읽히지 않는다. 각자의 HBM 로드맵이 얼마나 현실화되는지가 향후 3년간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지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