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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카산드라 예언

마이클 버리
마이클 버리.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마이클 버리. 사진=로이터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 신화의 중심축이다. 오늘날 서양 문명을 이룬 서사의 기초이기도 하다. 이 전쟁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부인 헬레네를 데려간 후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 도시를 상대로 벌인 것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비롯해 수많은 그리스 문학 작품을 통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트로이 전쟁이 기원전 13세기 또는 12세기에 실제로 벌어진 역사의 사건이었다고 믿었다.
트로이는 지금의 튀르키예 히사를리크 지역에 위치한 고대의 도시다. 기원전 3600년경부터 도시의 모습을 갖췄다. 청동기 시대에 트로이는 윌루사로 불렸다. 이후 철기문화를 꽃피운 히타이트 제국에 속해 있었다. 오랫동안 땅속에 파묻힌 트로이는 1871년 하인리히 슐리만과 프랭크 캘버트가 발굴했다. 그들은 무너진 도시의 폐허 아래에서 수많은 초기 정착지의 유적을 발견했다. 그 유적들은 트로이에 대한 고대의 많은 문학적 묘사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트로이 전쟁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그 역사성 여부는 여전히 미해결 과제다. 호메로스의 이야기들이 청동기 시대 미케네 그리스인들의 다양한 공성전과 원정에 대한 이야기들과 융합된 것일 수도 있다. 트로이 전쟁 이야기가 특정 역사적 충돌에서 비롯됐다고 믿는 이들은 대개 그 시기를 기원전 12세기나 11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제시한 기원전 1194년에서 1184년이 다수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쟁은 10년 이상 이어졌다. 대미를 장식한 것은 트로이의 목마였다. 그리스인들은 10년간의 성과 없는 포위 공격 끝에 오디세우스의 요청으로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오디세우스 등 엄선된 병력을 내부에 숨겼다. 그리스인들은 항해를 떠나는 척 위장했다.
트로이 사람들은 승리의 트로피로 목마를 그들의 도시로 끌어들였다. 목마 속의 그리스군은 말에서 기어나와 어둠을 틈타 항해한 나머지 그리스군을 위해 문을 열었다. 그리스인들이 도시에 침입해 파괴하고 전쟁이 끝났다. 이후 트로이 목마는 표적이 안전하게 보호된 요새나 장소로 적을 초대하게 만드는 모든 속임수나 책략을 의미하게 됐다. 사용자를 속여 의도적으로 실행하도록 하는 악성 컴퓨터 프로그램을 '트로이 목마'라고도 한다.

그리스의 속임수를 미리 간파한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카산드라(Cassandra)이다. 당시 트로이 사람들이 카산드라의 말을 믿었더라면 트로이는 결코 멸망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리스를 격파하면서 유럽의 지배자로 군림했을 것이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마지막 프리아모스 왕과 헤카베의 딸이다. 카산드라는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아폴론에게서 예언의 능력을 받았다. 카산드라의 미모에 반한 아폴론이 그녀를 유혹하려고 미끼로 준 것이다. 카산드라는 예언의 능력을 받은 다음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해 버렸다. 진노한 아폴론은 그녀의 입안에 침을 뱉었다. 그 뒤로 카산드라가 하는 예언을 더 이상 아무도 믿지 않았다.

트로이 전쟁 때 카산드라는 트로이 목마의 음모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목마를 도시 안으로 들여보내지 말라고 경고했다. 트로이군은 그러나 그녀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아폴론의 저주였다. 결과적으로 트로이 목마는 트로이 멸망의 단초가 되고 말았다. 패전 후 카산드라는 그리스에 포로로 잡혀갔다. 그리스의 영웅 아가멤논의 차지가 됐다. 이후 아가멤논이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애인인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당할 때,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카산드라는 이 사건도 미리 예언했으나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바람에 참사를 피할 수 없었다. 아폴론의 저주가 끝내 카산드라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것이다.

트로이 목마의 한을 품을 비운의 여인 카산드라가 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최근 뉴욕 증시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번에 카산드라 쇼크를 몰고 온 인물은 마이클 버리다. 그는 2007년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른 서브프라임 사태 때 뉴욕증시 붕괴를 예언하면서 거액의 공매도 베팅을 해 일약 금융 재벌이 된 전설의 인물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를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 '빅쇼트'의 실제 모델이 바로 마이클 버리다.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 것에 베팅해 미리 주식을 빌려 판 뒤, 더 낮은 가격에 되사 차익을 얻는 방식이다. 마이클 버리는 당시 수백 건의 모기지 계약서를 검토하면서 “대출 상당수가 결국 연체로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마이클 버리가 최근 자기의 엑스(X, 옛 트위터)의 아이디를 "카산드라 언체인드"로 바꾸면서 뉴욕증시가 긴장하고 있다. '언체인드(Unchained)'라는 표현은 속박에서 벗어난 예언자 또는 억압을 깨고 진실을 드러내는 존재로 해석할 수 있다. 아폴론의 저주가 풀린 카산드라의 예언이 왔다는 뜻이다. 마이클 버리가 전하는 카산드라의 예언은 한마디로 '인공지능(AI) 거품'이다. AI 관련주에 거품이 잔뜩 끼었으니 또 한번 빅쇼트를 할 타이밍이라는 예언이다.

마이클 버리가 약 500만 주 규모의 풋옵션을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폭락한 팔란티어.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마이클 버리가 약 500만 주 규모의 풋옵션을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폭락한 팔란티어. 사진=로이터

마이클 버리는 실제 행동에도 나섰다. 데이터 분석기업 팔란티어에 약 500만 주 규모의 풋옵션을 매입한 사실을 공개했다. AI 돌풍의 핵심인 엔비디아에도 비슷한 포지션을 취했다. 풋옵션은 주가가 내려갈수록 이익이 나는 파생상품이다. AI 대표 종목의 하락에 베팅한 셈이다. 마이클 버리의 풋옵션 이후 팔란티어 주가는 한때 급락했다. 엔비디아도 휘청했다. 요즈음 뉴욕증시를 뒤흔드는 AI 거품론은 마이클 버리가 카산드라의 이름으로 몰고 온 것이다.

마이클 버리가 정조준하고 있는 팔란티어의 주가수익비율(PER)은 한때 660배까지 치솟았다. 뉴욕증시에 가치투자 방법론을 처음 주창한 벤저민 그레이엄 박사와 그의 컬럼비아대학 MBA 제자 워런 버핏의 주장에 따르면 PER이 40이 넘어가면 일단 과열과 거품을 조심해야 한다. 여기에 비한다면 팔란티어는 가치투자론자들의 기준선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 PER 지수 이론은 AI처럼 새로 뜨는 사업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첨단 기술사업의 경우에는 초기 투자금이 많이 드는 반면, 이익의 회수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주가를 이익으로 나누어 구하는 PER 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AI 기술의 발전으로 앞으로 이익이 창출되면 PER 지수는 크게 떨어질 수 있다.

투자는 물론 대범해야 한다. 그래도 마이클 버리가 카산드라 예언까지 들고 나온 만큼 편안한 때에 위기를 생각하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의 교훈을 한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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