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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금리인하 vs 양적긴축(QT) 중단... 케인스의 눈물

제롬 파월 연준 의장뉴욕증시  금리인하+ 양적긴축(QT) 중단  케인스의 눈물이미지 확대보기
제롬 파월 연준 의장뉴욕증시 금리인하+ 양적긴축(QT) 중단 "케인스의 눈물"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인하에 이어 이번에는 양적긴축(QT·대차대조표 축소) 중단이라는 카드를 빼 들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향후 수개월 내에 연준의 보유자산을 줄이는 이른바 양적긴축을 종료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파월 의장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콘퍼런스 공개연설에서 "충분한 준비금 조건과 일치한다고 판단하는 수준보다 다소 높은 수준에 준비금이 도달했을 때 대차대조표 축소를 중단하겠다고 오래전부터 계획을 밝혀왔다"면서 "앞으로 몇 달 안에 그 시점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차대조표 축소라고 불리는 양적긴축은 연준이 보유 중인 채권을 매각하거나 만기 후 재투자하지 않는 식으로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면서 시중에 통화를 공급하는 양적완화(QE)의 반대 개념이다. 연준은 팬데믹 이후인 2022년 6월 양적긴축을 재개해 팬데믹 대응 등으로 다시 급증한 보유자산을 축소하는 작업을 해왔다. 양적긴축은 한마디로 통화량을 줄이는 것이다. 양적긴축의 중단은 더 이상 돈을 줄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금리인하로 시중에 유동성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양적긴축까지 중단하면 돈은 그만큼 더 늘어나게 된다.

요즈음 글로벌 금융시장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다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 현상을 보이고 있다. 뉴욕증시에서 나스닥 다우지수는 물론 국채·회사채 값, 금·은·원자재 값,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솔라나·카르다노 등 가상 암호화폐도 연일 요동치고 있다. 금리인하로 돈이 풀리면서 유동성 랠리가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이 와중에 양적긴축마저 중단하면 에브리싱 랠리는 더 폭발할 수 있다.

양적긴축이란 이른바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정도 이상으로 풀려난 돈을 다시 빨아들이는 것이다. 미국의 양적완화는 2008년부터 시작됐다. 그에 앞서 2007년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제 붕괴 상황을 맞았다. 초대형 금융기관들이 연이어 도산하면서 파산 상태에 직면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연준이 도입한 것이 바로 양적완화다. 연준이 그 돈으로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대거 사들였던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연준은 직접 금융시장에 나가 채권을 대규모로 사는 인위적 개입을 일절 하지 않았다. 중앙은행의 노골적인 직접 개입은 단기적 효과가 클 수 있어도 중장기적으로 시장을 근본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제해왔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0%로 내려도 시중에 유동성이 늘지 않았다. 경기가 워낙 침체해 무이자 자금을 쓸 수요마저 아예 말라버렸던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라고 일컫는다.

유동성 함정이란 케인스 경제학에서 처음 나온 개념이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통화를 주입해도 이자율을 떨어트리거나 통화정책을 강화할 수 없을 때의 상황을 뜻한다. 유동성 함정은 사람들이 미래의 디플레이션을 예상하거나 총수요가 부족할 때 또는 전쟁 때 주로 발생한다. 유동성 함정의 특징은 이자율이 0에 가깝거나 통화공급의 변동이 물가변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케인스파 경제학은 유동성 함정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금리의 인하 또는 통화량의 증가만으로 무너진 경제를 살릴 수 없다고 보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은 유동성 함정의 대표적 사례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케인스의 유효수요 이론이다. 양적완화라는 개념도 이때 처음 논의됐다.

이 양적완화를 가장 먼저 시행한 곳은 일본이었다. 일본은행은 경제가 장기적인 침체로 유동성 함정에 빠졌던 2001년 역사상 처음으로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기존의 정통 통화정책이 완전 마비된 상황에서 내린 고육지책이었다.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는 상당 기간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7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자 미국에서도 양적완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때 가장 앞장서 양적완화를 주창한 이가 바로 폴 크루그먼이다. 그는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위기 돌파의 새 가능성을 모색한 연구 공로로 그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크루그먼은 경제학파로는 네오 케인지언으로 분류된다. 경제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본격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적완화는 네오 케인지언의 사상을 담고 있다.

크루그먼의 양적완화(QE)는 중앙은행이 국채나 민간이 가지고 있는 일정 신용등급 이상의 채권을 매입해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을 늘리는 적극적인 통화정책이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해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의 규모를 대폭 늘려 나간다는 특징이 있다. 기존의 공개시장운영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책 효과가 이자율을 거치지 않고 바로 파급된다는 점이다. 양적완화가 시행되는 상황은 기준금리가 0이거나 극도로 낮아 통화량을 증가시켜도 더 이상 이자율이 낮아지지 않을 때다. 공개시장운영의 경우 국공채 매입 등의 방법을 통해 단기금리와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고, 지준 마감일에 맞춰 은행들의 현금 유동성을 조절하기도 한다.
양적완화를 한다고 해서 꼭 돈을 새로 찍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크루그먼의 양적완화는 연준의 자산 포트폴리오 재구성만으로 이루어진다. 기술적으로는 법정 지급준비율을 낮춰 은행이 신규 대출을 일으켜 파생되는 화폐를 늘리는 것과 동일하다. 양적완화는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정책이다. 실물경기 자체가 안 좋거나,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제를 촉진하려고 양적완화를 시행하면 바로 인플레이션 폭탄이 따라온다. 금융시장이 호황인데도 자꾸 양적완화를 시행하면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양적완화는 진작에 중단됐어야 했다. 실제로 연준은 2017년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양적긴축에 들어간 바 있다. 그러나 2019년 코로나가 터지자 다시 양적완화로 돌아갔다. 그 바람에 양적완화로 풀린 돈의 규모가 한때 8조9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 돈이 지금까지 시중에 유동성으로 흘러넘치고 있다. 2022년부터 다시 긴축으로 돌아섰지만 그 이전에 풀린 돈 가운데 6조6000억 원이 지금도 대차대조표 잔고로 남아있다. 유동성을 코로나 이전 상황으로 돌리려면 앞으로도 3조5000억 달러를 더 줄여야 한다. 그런데도 연준은 현 수준에서 양적긴축을 중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물가보다는 고용이 더 급하다는 논리다. 트럼프의 통화 증발(增發) 압력도 연준이 양적긴축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기준금리 인하와 함께 양적긴축마저 조기에 종료되면서 미국 달러 공급량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 뉴욕증시는 물론 코스닥·코스피·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금값·은값 등 모든 금융상품에 에브리싱 랠리를 몰고 온 유동성 잔치는 앞으로 판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거품 우려다. 유동성 장세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 양적완화 정책의 원조 격인 케인스도 과도한 통화량 증가를 조심하라고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다. 무덤 속의 케인스가 살아난다면 지금 연준이 서두르고 있는 양적긴축 중단에 대해 그 중단을 연기하라고 눈물로 호소할지도 모른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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