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절벽'에 직면한 미국 EV 산업, 'LFP·하이브리드'로 필사적 전략 수정
'EV 올인' GM·포드의 공장 유령화…'다중 경로' 택한 토요타의 역설적 승리
'EV 올인' GM·포드의 공장 유령화…'다중 경로' 택한 토요타의 역설적 승리
이미지 확대보기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280억 달러(약 40조 원)라는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미국의 제조업 부활을 꿈꿨던 '배터리 벨트'가 무너지고 있다. 연방 전기차(EV) 세금 공제가 폐지된 지 불과 6주 만에, 인디애나에서 켄터키, 미시간에 이르는 광대한 공장 지대는 건설 중단과 대량 해고, '유령 도시'의 그림자가 드리운 산업의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요 둔화'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의 준비 상태와 소비자 수용성을 무시한 채, 정부 보조금과 정치적 명분만으로 밀어붙인 급진적인 EV 전환 정책이 어떤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예고된 실패'다. 제너럴 모터스(GM)와 포드, 스텔란티스가 수조 원을 투자한 공장 문을 닫고 수천 명을 해고하는 동안, EV에 소극적이라 비판받던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공장이 완전 가동되는 역설이 펼쳐지고 있다.
14일(현지시각) 디트로이트 뉴스(The Detroit News) 보도에 따르면, 거대 자동차 3사는 EV 전환 약속을 공개적으로 유지하면서도, 물밑에서는 필사적으로 비(非)EV 제품으로 생산 라인을 전환하고 있다. 이는 정부 주도 산업 정책의 거품이 꺼지고 냉혹한 시장의 현실과 마주한 기업들의 처절한 생존 전략이다.
'ESS 전환' 고육지책…기가팩토리의 운명
이는 '성공적인 사업 다각화'가 아니다. 막대한 투자가 들어간 기가팩토리가 EV 수요 절벽에 부딪히자 '좌초 자산(stranded assets)'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에 불과하다. EV 배터리 생산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하는 것은 막대한 추가 비용과 공정 개편을 요구하며, 수익성 또한 보장할 수 없다. 오토포캐스트 솔루션즈의 콘래드 레이슨 수석 분석가도 이를 "좌초 자산을 막기 위한 방어적 조치"라고 분석했다.
미시간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아워 넥스트 에너지'의 16억 달러(약 2조 3000억 원)짜리 공장은 흙바닥만 드러낸 채 비어있고, 보그워너와 프로이덴베르크 등 부품사들도 연달아 공장 문을 닫고 수백 명을 해고했다. 켄터키주에 건설 중인 포드와 SK온의 '블루오벌 SK' 2공장 역시 텅 빈 뼈대만 남았다. 1공장에서 생산하는 F-150 라이트닝의 10월 판매량은 1500대에 불과, 사실상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결국 테네시주 '블루오벌 시티' 공장의 가동은 2027년으로 2년이나 연기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원 빅 뷰티풀 빌' 법안 통과로 7500달러(약 1091만 원)의 연방 세금 공제가 조기 종료된 9월 30일 이후, 미국 EV 시장은 10월 한 달 만에 판매량이 24% 급감하며 수직 낙하했다. 보조금이라는 인공호흡기가 떼어지자마자 산업 전체가 멈춰 선 것이다. GM은 즉각 디트로이트 '팩토리 제로'를 포함해 3400명 이상을 해고하고,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작 공장인 얼티엄 셀즈 1, 2공장의 가동을 동시에 중단시켰다.
LFP로의 선회와 토요타의 '선견지명'
이 거대한 붕괴 속에서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전략적 움직임이 포착된다. 첫째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로의 필사적인 선회다.
포드는 미시간주 마셜 공장 프로젝트 규모를 43%나 축소하면서도, 이 공장에서 LFP 배터리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은 유지했다. LFP 배터리는 SK온 등이 생산하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는 낮지만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이는 포드가 '고성능·고가' EV 전략을 사실상 포기하고, 보조금 없이도 팔릴 수 있는 '저가 보급형' EV 시장으로 전략을 전면 수정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그동안 NCM 중심의 고출력 배터리를 선호했던 미국 시장의 패러다임이 원가 경쟁력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둘째는 '토요타 하이브리드' 전략의 재평가다. EVXL의 논평에서 지적했듯이, GM과 포드가 EV에 '올인'하다가 막대한 손실을 보는 동안, 토요타는 노스캐롤라이나에 140억 달러(약 20조 원) 규모의 '하이브리드용' 배터리 공장을 가동하며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그동안 'EV 전환에 뒤처졌다'고 조롱받던 토요타의 '다중 경로(multi-pathway)' 전략이 시장의 냉정한 평가 앞에서 옳았음이 증명된 셈이다. 이는 단순한 하이브리드의 승리가 아니다. 충전 인프라 부족, 높은 가격, 소비자들의 주행거리 불안(Range Anxiety) 등 시장의 성숙도를 고려하지 않은 급진적 EV 강제 정책의 명백한 실패를 증명하는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숀 페인 의장은 "EV 시장은 여전히 성장 중"이라며 중국의 EV 수출을 근거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은 것이다. EVXL이 정확히 지적했듯, 중국 EV의 진짜 경쟁력은 베이징 정부가 나눠주는 7500달러(약 1091만 원)짜리 보조금이 아니다.
중국의 힘은 지난 10년간 정부의 치밀한 계획하에 구축한 광물 제련, 소재, 셀 생산에 이르는 압도적인 '수직 계열화 공급망'과 LFP 같은 '원가 경쟁력'에서 나온다. 미국이 막대한 세금으로 공장 부지(하드웨어)를 사는 데 급급할 때, 중국은 기술과 공급망(소프트웨어)을 장악했다.
결국, 280억 달러(약 40조 원)의 배터리 벨트 프로젝트는 '미국산(Made in America)'이라는 정치적 구호와 보조금만으로는 시장의 근본적인 수요를 창출할 수 없다는 비싼 교훈만 남겼다. 수천 명의 실직자와 '유령 공장'이라는 청구서는 고스란히 미국 납세자들의 몫이 되었다.
이미지 확대보기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280억 달러(약 40조 원)라는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미국의 제조업 부활을 꿈꿨던 '배터리 벨트'가 무너지고 있다. 연방 전기차(EV) 세금 공제가 폐지된 지 불과 6주 만에, 인디애나에서 켄터키, 미시간에 이르는 광대한 공장 지대는 건설 중단과 대량 해고, '유령 도시'의 그림자가 드리운 산업의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요 둔화'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의 준비 상태와 소비자 수용성을 무시한 채, 정부 보조금과 정치적 명분만으로 밀어붙인 급진적인 EV 전환 정책이 어떤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예고된 실패'다. 제너럴 모터스(GM)와 포드, 스텔란티스가 수조 원을 투자한 공장 문을 닫고 수천 명을 해고하는 동안, EV에 소극적이라 비판받던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공장이 완전 가동되는 역설이 펼쳐지고 있다.
14일(현지시각) 디트로이트 뉴스(The Detroit News) 보도에 따르면, 거대 자동차 3사는 EV 전환 약속을 공개적으로 유지하면서도, 물밑에서는 필사적으로 비(非)EV 제품으로 생산 라인을 전환하고 있다. 이는 정부 주도 산업 정책의 거품이 꺼지고 냉혹한 시장의 현실과 마주한 기업들의 처절한 생존 전략이다.
'ESS 전환' 고육지책…기가팩토리의 운명
붕괴의 진원지는 인디애나주 코코모다. 스텔란티스와 삼성SDI의 합작사 '스타플러스 에너지'는 당초 2800명을 고용해 EV 배터리를 양산할 계획이었지만, 현실은 참혹하다. 복귀한 근로자들은 EV 배터리가 아닌, 전력망 안정화나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에너지 저장 장치(ESS)용 배터리를 만들고 있다.
이는 '성공적인 사업 다각화'가 아니다. 막대한 투자가 들어간 기가팩토리가 EV 수요 절벽에 부딪히자 '좌초 자산(stranded assets)'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에 불과하다. EV 배터리 생산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하는 것은 막대한 추가 비용과 공정 개편을 요구하며, 수익성 또한 보장할 수 없다. 오토포캐스트 솔루션즈의 콘래드 레이슨 수석 분석가도 이를 "좌초 자산을 막기 위한 방어적 조치"라고 분석했다.
미시간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아워 넥스트 에너지'의 16억 달러(약 2조 3000억 원)짜리 공장은 흙바닥만 드러낸 채 비어있고, 보그워너와 프로이덴베르크 등 부품사들도 연달아 공장 문을 닫고 수백 명을 해고했다. 켄터키주에 건설 중인 포드와 SK온의 '블루오벌 SK' 2공장 역시 텅 빈 뼈대만 남았다. 1공장에서 생산하는 F-150 라이트닝의 10월 판매량은 1500대에 불과, 사실상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결국 테네시주 '블루오벌 시티' 공장의 가동은 2027년으로 2년이나 연기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원 빅 뷰티풀 빌' 법안 통과로 7500달러(약 1091만 원)의 연방 세금 공제가 조기 종료된 9월 30일 이후, 미국 EV 시장은 10월 한 달 만에 판매량이 24% 급감하며 수직 낙하했다. 보조금이라는 인공호흡기가 떼어지자마자 산업 전체가 멈춰 선 것이다. GM은 즉각 디트로이트 '팩토리 제로'를 포함해 3400명 이상을 해고하고,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작 공장인 얼티엄 셀즈 1, 2공장의 가동을 동시에 중단시켰다.
LFP로의 선회와 토요타의 '선견지명'
이 거대한 붕괴 속에서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전략적 움직임이 포착된다. 첫째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로의 필사적인 선회다.
포드는 미시간주 마셜 공장 프로젝트 규모를 43%나 축소하면서도, 이 공장에서 LFP 배터리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은 유지했다. LFP 배터리는 SK온 등이 생산하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는 낮지만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이는 포드가 '고성능·고가' EV 전략을 사실상 포기하고, 보조금 없이도 팔릴 수 있는 '저가 보급형' EV 시장으로 전략을 전면 수정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그동안 NCM 중심의 고출력 배터리를 선호했던 미국 시장의 패러다임이 원가 경쟁력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둘째는 '토요타 하이브리드' 전략의 재평가다. EVXL의 논평에서 지적했듯이, GM과 포드가 EV에 '올인'하다가 막대한 손실을 보는 동안, 토요타는 노스캐롤라이나에 140억 달러(약 20조 원) 규모의 '하이브리드용' 배터리 공장을 가동하며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그동안 'EV 전환에 뒤처졌다'고 조롱받던 토요타의 '다중 경로(multi-pathway)' 전략이 시장의 냉정한 평가 앞에서 옳았음이 증명된 셈이다. 이는 단순한 하이브리드의 승리가 아니다. 충전 인프라 부족, 높은 가격, 소비자들의 주행거리 불안(Range Anxiety) 등 시장의 성숙도를 고려하지 않은 급진적 EV 강제 정책의 명백한 실패를 증명하는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숀 페인 의장은 "EV 시장은 여전히 성장 중"이라며 중국의 EV 수출을 근거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은 것이다. EVXL이 정확히 지적했듯, 중국 EV의 진짜 경쟁력은 베이징 정부가 나눠주는 7500달러(약 1091만 원)짜리 보조금이 아니다.
중국의 힘은 지난 10년간 정부의 치밀한 계획하에 구축한 광물 제련, 소재, 셀 생산에 이르는 압도적인 '수직 계열화 공급망'과 LFP 같은 '원가 경쟁력'에서 나온다. 미국이 막대한 세금으로 공장 부지(하드웨어)를 사는 데 급급할 때, 중국은 기술과 공급망(소프트웨어)을 장악했다.
결국, 280억 달러(약 40조 원)의 배터리 벨트 프로젝트는 '미국산(Made in America)'이라는 정치적 구호와 보조금만으로는 시장의 근본적인 수요를 창출할 수 없다는 비싼 교훈만 남겼다. 수천 명의 실직자와 '유령 공장'이라는 청구서는 고스란히 미국 납세자들의 몫이 되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