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데이타·어페이서 등 9월 매출 사상 최고치…장기 호황 자신감
"2026년 상반기 극심한 공급난"…PC 생산라인 AI 서버용 전환 탓
"2026년 상반기 극심한 공급난"…PC 생산라인 AI 서버용 전환 탓

전 세계를 강타한 인공지능(AI) 개발 경쟁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AI 서버 증설에 나선 세계적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CSP)들의 수요가 폭증해 D램 가격 급등을 이끌면서, 본격적인 '대호황(슈퍼사이클)'의 서막이 올랐다고 IT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가 9일(현지시각) 평가했다. 특히 데이터센터와 생성형 AI 추론용 서버 수요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주요 메모리 기업들은 역대 최고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다. 시장에서는 곧 심각한 공급 부족 사태가 닥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9월 에이데이타(ADATA), 어페이서(Apacer), ESMT를 비롯한 대만의 주요 메모리 기업들은 일제히 사상 최고 수준의 월 매출을 발표하며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냈다. 틈새(Niche) D램과 표준 D램 제품의 가격이 동시에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린 결과다.
사이먼 첸 에이데이타 회장은 "2025년 8월 말부터 시장 상황이 급격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2025년 4분기는 거대한 메모리 강세장의 시작점일 뿐만 아니라, 심각한 공급 부족이 시작되는 때"라고 강조하며, 2026년까지 이어질 오랜 호황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역대급 실적'으로 증명된 시장 열기
실제 수치도 이를 증명한다. 메모리 모듈 제조사 에이데이타는 9월 한 달 동안 52억4400만 대만달러(약 2439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한 달 전보다 5.24%, 지난해 같은 달보다 61.18% 급증한 것으로, 월간 기준 역대 세 번째이자 약 19년 만의 최고 실적이다. 3분기 연결 매출 역시 144억8800만 대만달러(약 6739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19% 늘었다. 에이데이타의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371억7300만 대만달러(약 1조7292억 원)에 달해, 한 해를 통틀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 확실하다. 매출 구성을 살펴보면 D램이 59.62%로 절대 비중을 차지했고, SSD가 27.25%로 뒤를 이었다. 에이데이타는 앞으로 기업용 고용량 SSD와 AI 서버용 DDR5 메모리에 집중해 AI가 이끄는 시장 변화의 물결에 올라탄다는 전략이다.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페이서는 9월 매출 11억6500만 대만달러(약 541억 원)로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으며, 한 달 전보다 15.7%, 지난해 같은 달보다 88.6% 폭증했다. 이로써 석 달 연속 월 매출 10억 대만달러(약 465억 원)를 넘어섰다. 산업용 DDR4/DDR5 모듈과 기업용 SSD 주문 증가가 실적을 이끌었다.
수요는 폭증, 공급은 '꽁꽁'…구조적 불균형 심화
수요가 폭증하면서 공급 부족 현상은 이미 가시화했다. 첸 회장은 "2026년을 대비하는 거대 CSP들의 메모리 수요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며 "이들이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려고 미리 주문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원청 제조사들은 일부 제품의 견적 제시를 멈추고 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AI 응용 기술의 무게중심이 데이터 '훈련'에서 '추론'으로 옮겨가고 서버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기존에 PC와 스마트폰에 할당했던 생산 라인을 AI 서버용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28GB 이상 고용량 모듈은 수급이 극도로 제한된다. 이러한 공급 구조 변화는 2026년 상반기부터 시장의 극심한 공급난과 가격 폭등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특히 AI 가속기용 수요가 몰리는 DDR5와 HBM 제품군은 구조적인 공급 부족이 계속될 전망이다.
시장의 열기는 주력 제품군을 넘어 틈새시장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ESMT는 2분기부터 틈새 D램 가격이 오름세를 탔으며, DDR4의 가격 강세가 DDR3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동차와 산업용 기기 등에서 꾸준한 수요가 있는 틈새 D램 시장의 특성상, 4분기부터 본격적인 '가격 따라잡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ESMT의 9월 연결 매출은 13억800만 대만달러(약 608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 한 달 전보다 16% 이상 늘어 이런 기대감을 뒷받침했다.
플래시 메모리 시장 역시 수요가 강해지는 흐름이 뚜렷하다. 매크로닉스는 9월 연결 매출 29억300만 대만달러(약 1350억 원)를 기록, 한 달 전보다 13.5%, 지난해 같은 달보다 9.4% 성장했다. 3분기 일본 게임기 고객사의 계절 수요로 ROM 출하량이 늘어난 덕분이다. 동시에 클라우드 AI 시장 확대로 기존 생산 능력이 압박받고 주요 기업들이 공급을 중단하면서 고밀도 SLC 낸드 수요가 늘어난 점도 실적에 보탬이 됐다. 다만, 일부 노어(NOR) 플래시 가격이 반등 조짐을 보이고는 있으나 업계는 여전히 공급 구조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2025년 4분기를 기점으로 한 메모리 반도체 가격 반등은 단기 현상에 그치지 않고, AI 수요에 기반한 중장기 상승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모두 2026년 상반기까지 오름세가 이어질 전망이며, 업계는 이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D램 제조사들은 서버용과 HBM 중심으로 투자를 다시 시작하고, 모듈 업체들은 DDR5, PCIe 5.0 SSD 등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비중을 늘리고 있다. 수요처인 CSP들은 안정 물량을 확보하려고 여러 해 계약이나 선구매(헤징)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