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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TSMC, AI 반도체 패키징 병목 해소 위해 '병렬 개발' 전략 공식화

AI·HPC 칩 수요 폭증, CoWoS 연 80% 성장 전망…기존 공정으론 한계
대만 생태계 성공 모델 미국 이전 추진…공급망 전체 고강도 협력 필수
세계 파운드리 1위 기업 TSMC가 폭증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병렬 개발' 전략을 공식화했다. TSMC는 공급망 전체의 협력을 바탕으로 대만의 성공적인 반도체 생태계 모델을 미국으로 확장해 패키징 병목 현상을 해결하고 시장 주도권을 지키겠다는 계획이다.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세계 파운드리 1위 기업 TSMC가 폭증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병렬 개발' 전략을 공식화했다. TSMC는 공급망 전체의 협력을 바탕으로 대만의 성공적인 반도체 생태계 모델을 미국으로 확장해 패키징 병목 현상을 해결하고 시장 주도권을 지키겠다는 계획이다.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 패권 경쟁이 후공정, 곧 '첨단 패키징'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AI 칩 수요를 생산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누가 더 빠르게 칩을 완성하느냐가 시장 주도권을 결정할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 세계 파운드리 1위 기업인 TSMC가 '병렬 개발'이라는 혁신 전략으로 기존 생산 공식의 한계를 정면 돌파하고 나섰다고 IT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가 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TSMC의 허쥔(Jun He) 어드밴스드 패키징 사업부 부사장은 9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세미콘 웨스트 2025' CEO 서밋 연설에서, AI 시대의 거대한 수요에 대응할 해법을 명확히 제시해 업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허 부사장은 먼저 AI 시장의 성장세가 TSMC의 생산 능력을 앞지르고 있는 현실을 인정했다. 그는 "TSMC가 비교적 짧은 시간에 CoWoS(Chip on Wafer on Substrate) 생산량을 빠르게 늘렸지만, 시장 수요는 여전히 극도로 빠듯하다"고 진단하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병목 현상이 심각함을 시사했다.

실제로 TSMC가 내놓은 시장 전망은 놀랍다. 허 부사장은 "시장 수요에 힘입어 TSMC의 CoWoS 생산 능력은 2022년부터 2026년까지 해마다 평균 80% 넘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차세대 패키징 기술인 3D SoIC(System on Integrated Chips)는 같은 기간 해마다 평균 100%를 웃도는 성장이 전망됐다. 이 수치는 AI 서버용 GPU와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탑재한 AI 고성능 컴퓨팅(HPC) 제품 시장의 성장 동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1년은 너무 길다"…속도전의 해법 '병렬 개발'


문제는 속도다. 엔비디아, AMD, 브로드컴 같은 주요 AI 칩 설계 업체들의 주문이 폭주하면서 고객사들은 하루라도 빨리 더 뛰어난 성능의 칩을 받길 원한다.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설계 완료(tape-out)부터 CoWoS 패키징까지 이어지는 전통 공정은 완료까지 최대 1년이 걸렸다. 허 부사장은 "이러한 시간은 오늘날 치열한 AI 기술 경쟁 속도를 더는 만족시킬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TSMC가 내놓은 해결책이 바로 '병렬 개발' 전략이다. 설계, 검증, 패키징, 생산 준비 단계를 차례로가 아니라 한꺼번에 진행하고 조율해 전체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식이다. 허 부사장은 이 전략으로 기존에 1년 가까이 걸리던 시간을 약 9개월로 단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여러 공정을 동시에 진행하고 긴밀하게 조율하려면 업무량과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허 부사장은 "이렇게 높은 업무 강도를 견디지 못하는 기업은 사실상 AI HPC 공급망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 전략이 설계 회사, 패키징 소재·장비 업체를 포함한 공급망 전체에 높은 수준의 혁신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성공 열쇠는 '생태계'…美 애리조나에 대만 모델 심는다


성공적인 병렬 개발을 위해서는 공급망 생태계 전체의 긴밀한 협력이 관건이다. 허 부사장은 이 전략이 대만 신주과학단지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기업들이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을 꼽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모여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이 효율 높은 협력의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협력 모델의 중요성은 TSMC의 미국 투자 전략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미국에서는 TSMC 혼자만 있어서는 이 모델을 똑같이 만들기가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며, "미국 안에서 효율 높은 개발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생태계 협력사들을 애리조나로 계속 유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첨단 패키징 기술 경쟁이 단순히 한 기업의 역량을 넘어 국가와 지역을 바탕으로 한 '생태계 대항전'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TSMC는 대만 타이중과 타이난, 일본 구마모토 등지로 첨단 패키징 라인 확대를 서두르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HPC 전용 패키징 단지' 구축까지 고려하며 시장 지배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AI 시대의 승패를 가를 첨단 패키징 전쟁에서 TSMC의 속도전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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