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IT 기업들이 올해에만 24만 명 이상의 인력 감축을 진행, 지난해 대비 50% 가까이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의 감원 통계 분석 사이트 레이오프(Layoffs)는 올 1월부터 10월까지 세계 IT 기업 1106곳에서 총 24만6557명이 해고됐다고 추산했다.
지난해 같은 시기의 10만681명 대비 2배 이상(144.9%) 증가한 것은 물론, 11월과 12월 기록을 모두 더한 수치인 16만4969명과 비교해도 49.4% 높은 수치다.
지난 1년 동안 세계 5대 빅테크로 꼽히는 MAGMA(Microsoft, Apple, Google, Meta, Amazon) 중 애플을 제외한 네 곳 알파벳(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플랫폼스 모두 1만 명 이상 감원 조치를 취했다.
미국의 고객 관리 서비스 전문 제공사 세일즈포스와 컴퓨터·주변기기 제조사 델, 독일의 식품 배달 전문 기업 플링크와 네덜란드의 전자기기 제조사 필립스 등도 6000명 이상을 감원했다.
레이오프는 직원 보상 시스템 전문기업 컴프리헨시브(Comprehensive)의 로저 리(Roger Lee) 대표가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블룸버그 등의 자료를 토대로 운영하는 사이트다. 그는 "코로나 유행의 시작과 끝, 이에 따른 산업 전반의 변화가 인력 감축을 부르고 있다"며 "대기업은 물론 스타트업들도 영향을 받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올해 IT 업계 감원의 가장 큰 특징은 지난해에는 상대적으로 감원의 영향을 적게 받았던 하드웨어·데이터 등 전문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세일즈, 인적자원(HR) 분야 등에서도 지난해 대비 더욱 많은 규모의 감원이 이뤄졌다.
특히 하드웨어 분야에선 올해에만 총 2만3614명이 감원돼 지난해 3605명 대비 7배(655%) 넘는 인원이 감축됐다. 반면 운송이나 교육, 암호화폐 등 분야에선 지난해 대비 감원 수가 오히려 줄어드는 양상이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컨설팅사 잰코 어소시에이츠(Janco Associaties)의 보고서를 인용, 올 10월 미국 내 IT 직군 실업자 수가 11만7000명으로 전월 대비 1만1000명(10.4%)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전체 노동시장에는 한 달 동안 33만6000개의 일자리가 추가되는 등 고용 수요가 늘고 있으나, IT 분야의 실업률은 이에 역행하고 있다. 잰코 어소시에이츠는 이에 관해 "기업들이 클라우드·소프트웨어 등 IT 분야 예산을 삭감하는 형태로 비용 효율화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IT 업계에 부는 '감원 바람'이 올해를 넘어 내년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북미·유럽의 업계인들 중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으며, 경기 침체는 내년에 더욱 거세질 것'이라며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며 "업계 분위기가 이렇다면 인력 시장의 경색 역시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의 컨설팅 전문기업 테크오피디아(Techopedia)는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기존 인력을 일부 대체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의 발달로 감원 흐름이 계속될 것"이라며 "2024년에도 기술·컨설팅 서비스 분야를 중심으로 인력 감축이 이어질 전망"이라고 경고했다.
세계적인 IT 업계 감원 추세에 국내도 예외가 될 순 없었다. 해외 업체의 지사들은 물론 국내 기업들도 구조조정, 희망퇴직 등의 형태로 감원에 나섰다.
MAGMA 등 5대 빅테크의 국내 지사인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웹서비스(AWS) 코리아, 구글 코리아, 페이스북(메타)코리아 등도 권고사직, 구조조정 등 형태로 감원이 이뤄졌다. X(옛 트위터) 코리아 또한 PR 조직이 해체되는 등 감원 수순을 밟았다.
네이버의 해외 자회사 왓패드와 포시마크 등도 올 초 수십 명 규모의 감원 조치가 이뤄졌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카카오 계열사를 비롯해 숙박 플랫폼사 야놀자, 게임사 데브시스터즈 등은 희망퇴직이나 이에 준하는 정책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침체에 비교적 내성이 강해 '경기 방어주'로 꼽히는 통신사에도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LG유플러스(U+)는 지난달 들어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내부적으로는 "SK텔레콤이나 KT도 연말, 내년 초 안에 경영 효율화 조치를 취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하나증권은 KT 기업 분석 보고서에서 "올 8월 새로 김영섭 대표가 취임한 가운데 구조조정이 현실화된다면 올 4분기가 적기일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큰 업체들도 어려움을 겪는 만큼 벤처기업, 스타트업 등은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할 전망이다. 투자 등 자금 조달도 어려워진 만큼 "성장이 아닌 생존을 도모해야 할 때"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온다.
한국 스타트업 커뮤니티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스타트업 투자는 총 584건, 누적 투자 금액은 2조3226억원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998건, 7조3199억원 대비 건수는 41.5%, 액수는 68.3% 감소한 수치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