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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일본 무역협정, 자국 제조업 발목 잡다

미국 부품 없는 일본 차에 낮은 관세…'기울어진 운동장' 논란
가구마다 한 해 1300달러 부담 늘어…투자·고용도 함께 위축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 사진=로이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뉴욕타임스(NYT)의 폴 크루그먼 칼럼니스트가 최근 기고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대일 무역 협상이 자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어리석은 거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과 경제 데이터를 근거로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했다.
크루그먼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놀라울 정도로 급격하게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했다. 수십 년에 걸쳐 이룩한 낮은 무역 장벽 체제가 불과 몇 달 만에 1930년대 대공황기 악명 높았던 '스무트-홀리' 수준의 높은 관세 장벽으로 바뀌었다.

많은 기업은 이것이 일시적 현상일 것이라 기대했다. 다른 나라와 새로운 협상을 타결하면 관세가 다시 낮아지리라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일본과의 협정은 그러한 기대를 무너뜨렸다. 일본은 협정 타결 후에도 여전히 15%라는 높은 관세율을 적용받는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전 평균 관세율 1.6%와 비교하면 엄청난 수치다. 유럽연합(EU)과도 비슷한 수준의 협정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져, 대부분의 수입품에 15% 이상의 관세가 부과되는 것이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담을 외국이 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크루그먼은 실제 데이터가 정반대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그가 주목하는 지표는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추적하는 '수입 물가'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수입 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해야 하지만, 비연료 부문 수입 물가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 관세 부담의 거의 전부가 미국 측에 전가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부담은 미국 가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어, 2025년 기준 가구마다 한 해 평균 1300달러(약 179만9850원)의 추가 비용을 안겼다.

◇ 미국 부품 쓴 캐나다·멕시코산이 더 불리한 '관세의 역설'


관세 부담은 고스란히 미국 기업들이 지고 있다. 공급관리협회(ISM)의 제조업 보고서를 보면, 비용 상승을 체감하는 기업의 비율은 2022년 여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 지표는 역사적으로 몇 달 후의 인플레이션을 예고해왔다. 그동안 기업들은 관세가 곧 인하될 것이라는 기대로 비용 상승분을 흡수했지만, 고율 관세가 고착화되자 가격 인상을 통해 소비자에게 부담을 떠넘기기 시작했다.

미국 소비자의 피해가 예견되는 가운데, 정작 미국 제조업체들이 협정에 강하게 반발하는 데에는 더 복잡한 이유가 있다. 이번 협정이 트럼프 행정부의 다른 관세 정책과 맞물리면서, 무역 전쟁 이전보다 오히려 더 불리한 경쟁 환경을 만들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의 사례가 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캐나다와 멕시코산을 포함한 모든 수입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여기서 핵심은 캐나다와 멕시코산 자동차는 미국산 부품을 상당수 사용해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반면 일본 차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번 협정으로 일본 차는 15%의 관세만 적용받는다. 미국 부품이 더 많이 포함된 자동차가 오히려 더 높은 불이익을 보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동차 원가의 핵심 요소인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도 50%의 초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이 관세는 미국 내 생산에 더 큰 타격을 주지만, 일본 제조업체들은 이 관세마저 면제받아 시장의 공정성을 더욱 해친다.

◇ "전문성 없는 졸속 협상"…정치적 동기 의혹도


이처럼 상식에 어긋나는 협상이 타결된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이 있다고 크루그먼은 꼬집었다. CNBC가 공개한 사진 한 장은 당시의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속 트럼프 대통령 앞에는 일본의 대미 투자 약속 금액이 적힌 카드가 놓여 있다. 당초 4000억 달러(약 553조8000억 원)였던 숫자는 누군가 손으로 줄을 긋고 5000억 달러(약 692조2500억 원)로 고쳐 썼으며, 최종 발표에서는 5500억 달러(약 761조4750억 원)로 또다시 바뀌었다. 이 모습은 트럼프 대통령이 샤피펜으로 허리케인 예상 경로를 수정했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정책 혼선과 예측 불가능성은 미국 경제 전반에 더 깊은 상처를 냈다. 관세 장벽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길어지자 미국 내 기업들은 투자를 미루거나 중단했고, 이는 제조업 고용 부진으로 바로 이어졌다. 당초 기대했던 제조업 본국 회귀(리쇼어링) 효과는 없었고, 연장근무 등으로 일시적인 수치 개선이 있었을 뿐 실제로는 관세 충격으로 양질의 일자리는 늘지 않았다. 나아가 일관성 없는 관세 정책은 전 세계 공급망에 혼란을 일으켜 미국과 해외 기업 모두 장기적인 생산 및 투자 계획을 세우기 어렵게 만들었다.

크루그먼은 칼럼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일 무역 협상이 자국 제조업 보호라는 명분과 정반대로 미국 기업과 소비자에게 높은 비용과 왜곡된 인센티브만 안겼다고 비판했다. 정책의 졸속, 준비 부족, 정치적 동기가 빚어낸 이 협상이 경제적으로 볼 때 "정말 어리석은 거래"라는 혹평을 받는 이유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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