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다크호스' 참전…한미반도체, 1000억 투자로 '초격차' 수성
장비 국산화율 20%의 '현실'…'반도체 초강대국' 향한 험난한 길
장비 국산화율 20%의 '현실'…'반도체 초강대국' 향한 험난한 길

가전과 디스플레이의 강자 LG전자는 새로운 도전자로 나섰다. LG는 이달 여러 칩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하이브리드 본더 개발 착수를 공식화했다. 과거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연구 수준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2028년까지 개발을 끝내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제시하며 시장의 '다크호스'가 될 것을 예고했다.
기존 강자는 기술을 한층 높여 시장 수성에 나선다. 현재 HBM 제조에 쓰이는 열압착(TC) 본더 시장에서 세계 점유율 90%를 차지하는 한미반도체는 차세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1000억 원을 들여 인천에 하이브리드 본더 전용 공장을 짓고, 내년부터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미 HBM 제조 관련 특허 120개를 확보한 한미반도체는 2030년까지 세계 10대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또한, 다른 국내 장비 제조업체와 힘을 합쳐 필름 증착과 세정 장비 개발에도 나서는 등 생태계 전반의 기술력을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
◇ 'HBM' 주도권 지키기…장비 시장 판도 바꾼다
두 회사의 행보는 폭발하듯 성장하는 HBM 시장을 겨냥한다. 프랑스 리서치 회사 욜(Yole)에 따르면, 세계 HBM 매출은 2030년 980억 달러(약 135조6810억 원)에 이르러 올해보다 3배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AI 같은 신기술에 꼭 필요한 이 메모리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HBM은 여러 개의 메모리 반도체를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용량과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린 제품으로, 이 쌓아 올리는 공정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면서 후공정 장비 기술이 반도체 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기존 TC 본더는 열과 압력으로 칩을 연결해 층수가 늘어날수록 반도체가 휘거나 열이 나는 위험이 커지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하이브리드 본더는 접착제 없이 칩을 바로 연결해 더 얇고 집적도 높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다. HBM 시장의 두 축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2026년과 2027년을 기점으로 하이브리드 본더를 양산 라인에 본격 도입할 전망이어서, 장비 시장의 지각변동도 예고됐다.
◇ 2% 점유율의 벽…'장비 독립' 갈 길 멀다
물론 한국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본 경제산업성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 점유율은 2%에 불과하며, 도쿄 일렉트론,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ASML 등 외국 기업 의존도가 높다. 한국 정부는 경제 안보 차원에서 2020년부터 해마다 1조 원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입하고 있지만, 장비마다 기술 격차가 뚜렷해 짧은 기간 안에 완전한 국산화를 이루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안기현 전무는 닛케이 아시아와 인터뷰에서 "국내 반도체 제조사가 쓰는 장비의 국산화율은 금액 기준으로 20% 정도"라고 진단했다. 그는 "(본더는) 구조가 비교적 단순해 국내 생산이 더 늘어날 수 있겠지만, 다른 공정에서는 일본과 미국이 월등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어 우리가 따라잡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당분간 외국에서 장비를 들여오는 구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한국 기업이 이끄는 HBM 시장의 성장이 국내 장비 생태계 전반의 체질을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한 국내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국내 장비 회사가 성장하면 물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워 협력과 개발이 더 쉬워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