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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TSMC, 인텔 동맹 대신 美 독자 투자 택한 이유는?

'경영철학·기술 로드맵' 판이한 두 거인…협력 실효성 의문
230조원 美 투자로 공급망 재편…삼성·인텔과 격차 벌리기
사진=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글로벌 반도체 지형이 지정학 격랑 속에 요동치면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 TSMC의 미국 시장 전략이 시험대에 올랐다. 최근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경쟁사 인텔 투자설은 TSMC가 공식 부인하며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는 오히려 TSMC의 향후 행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됐다. IT전문매체 WCCF테크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TSMC가 인텔과 손을 잡는 '어색한 동맹' 대신 미국 내 독자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최근 시장에서는 TSMC가 '미국 반도체 제조'라는 대의에 동참하고자 인텔에 직접 투자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미국 정부의 강력한 반도체 공급망 재편 의지와 맞물려 나온 이 관측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으나, TSMC는 공식 성명을 통해 "파트너십이나 투자를 전혀 모색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으며 소문을 일축했다. 그러나 한 차례의 해프닝으로 끝난 이 소문은 역설적이게도 TSMC와 인텔의 협력 가능성에 내재된 구조의 한계와 불확실성을 명확히 드러냈다는 평가다. 저명한 분석가 궈밍치는 "TSMC는 인텔과 협력하기보다 미국 투자를 확대하는 데 집중해야 하며, 이것이 훨씬 우월한 조치"라고 단언했다. 그의 분석은 두 기업 사이 서로 다른 문화와 전략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섣부른 동맹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대변한다.

"TSMC 희생 안돼"…곳곳에 깔린 동맹의 암초


TSMC와 인텔의 파트너십이 성공하기 어려운 까닭은 두 기업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이다. 양사는 단순히 경쟁 관계를 넘어 경영 철학, 조직 문화, 인력 구조, 그리고 핵심인 기술 개발 로드맵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다른 DNA를 가지고 있다. 기술 설계, 공급망, 고객사 구조 등이 판이해 실제 합병이나 협력은 사실상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단순히 합의만으로 통합하기 힘든 근본적인 차이인 셈이다. 만약 양사의 협력이 성사된다면 순수한 사업 판단보다는 미국 내 기술 보호 정책 등 정치 동기가 강력하게 작용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의 회고록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분석가 댄 나이스테트에 따르면, 모리스 창은 회고록 2권에서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진출을 두고 "인텔에 행운을 빌지만, 그것이 TSMC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파운드리 사업의 본질을 꿰뚫는 이 발언은 양사 협력 시 발생할 수 있는 잠재 위험을 정확히 지적한다. 모리스 창이 우려한 '희생'이란 구체적으로 ▲기존 고객의 이탈 가능성 ▲치열한 경쟁에 따른 가격 하락 압박 ▲그리고 미국 정부의 자국 기업인 인텔에 대한 정책 편향 가능성 등을 모두 포함한다. 즉, TSMC가 미국 안에서 인텔과 손을 잡는 순간, 자사 핵심 경쟁력을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다.

'정공법' 택한 TSMC, 230조원 美 투자 승부수


이런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TSMC가 홀로 미국 투자를 확대하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TSMC는 2025년까지 기존 650억 달러에서 대폭 늘린 1650억 달러(약 230조 원) 규모의 대대적인 미국 투자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애리조나, 아이다호, 뉴욕 등에 5개의 신규 첨단 팹(Fab)을 건설하고, 첨단 패키징 및 테스트 시설과 대규모 R&D 센터를 새로 짓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투자는 트럼프 행정부 때 시작한 CHIPS 법안과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 차원 반도체 자립 정책에 힘입은 것으로, 2nm, 3nm 등 고급 공정 일부를 미국으로 옮겨 대만발 지정학 위험을 분산하려는 전략이다. TSMC가 미국에 대한 직접 투자를 대폭 늘리면, ▲대만에 집중된 생산 기지를 다변화해 지정학 위험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한, ▲주요 고객사인 미국 빅테크 기업들과 물리 거리를 좁혀 공급망 안정성을 높이고 고객 신뢰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다. 나아가, ▲미국 시장에서 같은 파운드리 경쟁을 벌이는 인텔과 삼성을 상대로 확실한 경쟁 우위를 점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이러한 독자 노선은 경쟁사와 불필요하게 얽히지 않고, 오롯이 TSMC의 기술력과 자본으로 미국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길로 평가받는다.

현재 TSMC는 인텔과의 파트너십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고 있으며, 단기적으로는 어떤 형태의 거래도 성사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변수는 남아있다. 미·중 기술 경쟁 심화와 대만 지정학 위험이 여전한 가운데,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은 TSMC와 대만 사이 생산 균형을 맞출 것을 요구하며 미국 내 생산 확대에 강한 관심을 드러냈다. 또한 미국 조달법 등 자국 내 제조 요구가 강해지는 흐름 속에서 독자 투자 전략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정치, 지정학 변수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선 TSMC의 다음 행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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