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방위산업에 쓰이는 핵심 광물의 수출을 제한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국방 제조업체들이 공급망 혼란과 생산 지연, 비용 급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 중국산 희귀광물 수출 제한…가격 60배 치솟기도
WSJ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올해 초 희토류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했으며 지난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부 무역 양보에 합의한 뒤에도 군사용 목적의 광물에 대한 제한은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약 90%를 차지하며 제트기, 드론, 야간투시장비, 미사일 유도 시스템 등 방위장비에 필수적인 여러 광물도 사실상 독점 생산하고 있다.
미국 군수업체의 드론 부품 공급업체 한 곳은 중국 외 지역에서 자석을 구하려다 주문 납기를 최대 두 달까지 미룰 수밖에 없었고 다른 업체는 전투기 엔진 온도를 견디는 자석 제조에 쓰이는 사마륨 가격이 이전보다 60배 이상 치솟았다고 밝혔다. 이같은 가격 급등은 방위시스템 전체 비용을 끌어올리고 있다.
◇ “안보 재고까지 바닥”…방산업계 공급망 불안 커져
이탈리아 방산업체 레오나르도 산하 미국 방산기업 레오나르도 DRS의 빌 린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적외선 센서에 사용되는 저먼늄 재고가 이제 안전 비축 수준밖에 남지 않았다”며 “2025년 하반기에는 자재 흐름이 개선되지 않으면 제때 납품이 어렵다”고 밝혔다.
방위산업 분석업체 거비니에 따르면 미 국방부 무기체계에 쓰이는 부품 8만개 이상이 현재 중국의 수출 제한 대상인 핵심 광물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들 공급망의 거의 모든 과정이 중국 기업과 연결돼 있다.
드론 제조사들은 특히 취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자금과 공급망 노하우가 부족한 신생업체가 많고 사전에 자석이나 광물을 충분히 비축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 미 국방부도 대응 나섰지만…대체 공급처 확보는 ‘시일 필요’
미 국방부는 오는 2027년까지 중국산 희토류 자석을 방산용으로 구매하지 못하도록 방산업체에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대기업은 상당한 양의 자석을 비축했지만 다른 광물의 경우 몇 개월분 이상 확보한 업체는 드물다.
뉴햄프셔 소재 드론 추진 모터 제조업체 이프로펠드는 지난 5월 중국 공급업체로부터 제품 도면과 구매자 명단, 군사용 전용 여부를 묻는 서류를 요구받았고 정보 제출을 거부하자 공급이 중단돼 납품이 최대 두 달까지 지연됐다.
이 회사는 일본, 대만 등지에서 대체 자석을 확보하고 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와 오클라호마에 있는 미국 신생 자석업체들과도 계약을 체결했지만 이들로부터 실질적인 공급이 시작되는 시점은 연말 이후로 예상된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캐나다 업체에 위성용 저먼늄 생산 설비 구축을 위해 1400만 달러(약 193억 원)를 지원했고 지난달에는 미 대륙 내 최대 희토류 광산 운영사인 MP머티리얼스에 4억 달러(약 5520억 원)를 투자해 보통주로 전환 가능한 우선주를 취득했다. WSJ에 따르면 이 계약으로 국방부는 MP머티리얼스의 보통주 15%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 중국, 수출 심사 강화로 압박…미국 “직접 채굴 나서야”
중국은 희토류 수입업체들에 대해 최종 용도를 묻는 서류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제품 사진과 생산 라인 사진까지 요구하고 있다. WSJ는 “민간용은 승인해주지만 방산이나 항공우주용은 승인을 미루거나 거부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 안티모니(안티몬) 공급사인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안티모니는 호주에서 채굴한 55t의 안티몬을 멕시코 제련소로 보내려다 중국 닝보항을 경유하는 과정에서 3개월간 세관에 억류됐고 결국 다시 호주로 반송되는 조건으로만 통관이 허용됐다. 이후 해당 제품의 밀봉이 해제돼 오염 여부를 조사 중이다.
미국의 방산업체들이 본격적으로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지만 니콜라스 마이어스 피닉스 테일링스 CEO는 “광물 확보 없이는 어떤 노력도 무의미하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